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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 호평, 영화감독 윤가은(00사학)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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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0-11 09:50 조회15,2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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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연극은 잘 모르지만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멋진 영화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16년 전 봄 서강연극회 신입생 환영 모임. 배지와 명찰 달린 고등학교 교복이 아직 더 어울릴 법한 새내기의 똘망똘망한 목소리에 좌중의 눈길이 꽂혔다. ‘영화하고 싶어 연극반 들어왔다’는 이 엉뚱하면서도 당찬 소녀는 낮엔 역사를 공부하고 밤에는 무대와 부둥키는 주독야연(晝讀夜演)으로 4년을 보내고, 졸업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영화 속으로 본격적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하고 반쯤 변할 때 즈음, 깐깐한 영화인·냉정한 평단·변덕스런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는 한국 영화계 기대주로 발돋움했다. 올해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발견으로 첫손에 꼽히는 영화 ‘우리들’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윤가은(00 사학) 감독이다.

남들보다 좀 부족하게 산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는 아이 ‘선’, 따돌림 당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따돌림을 주도하는 무리에 합류하는 ‘지아’. 상처를 떠안은 동갑내기 열한 살 두 아이가 어울리다 부딪치고 뒤엉킨 끝에 상처를 보듬는 여름날 성장통을 잔잔하면서도 밀도 높은 영상에 담아낸 작품이다. 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를 시작으로 전 세계 10여 곳의 영화제에 줄줄이 초청됐고, 체코 즐린어린이청소년국제영화제에서는 대상·최우수주연상, 이스라엘 텔아비브국제어린이영화제에선 특별언급상을 받는 등 상복도 두둑하다. 지난 7월 20일 모교 캠퍼스에서 만난 윤 감독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라서 유치해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라며 “사람들이 다 나처럼 살았던 것 같다”라고 웃었다.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제 모습이 조금씩 투사돼 있어요. 초등학생 때는 ‘선’에 가까웠지만, 중·고생이 되면서는 ‘지아’나 ‘보라’(악질적으로 따돌림을 주도하는 아이)의 모습도 보였어요.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이 좋게 평가해주신 것도 캐릭터들 속에서 자기 모습이나, 옛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해서이지 않을까 해요.”

학교와 집, 그리고 그 사이 분식집·학원·골목길을 오가며 전개되는,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는 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어준 것은 연출자의 만듦새다. ‘연기’인지 ‘일상’인지 식별이 쉽지 않은 아이들의 자연스런 동작과 말을 이끌어내 버무린 연출솜씨만큼 돋보이는 것은 생생한 디테일. 시종일관 아이들의 키 높이에 맞춘 듯 근접해 움직이는 카메라는 교정에 울려 퍼지는 찌르르 매미울음, 아파트 재개발을 위해 둘러친 철거막의 두툼한 천, 피구공이 운동장 바닥을 튕길 때 피어오르는 흙먼지까지 주변 일상을 진득하게 담아낸다. ‘한예종’에서 이창동 감독 등 스승을 사사하며 다듬어간 솜씨이기도 하지만, 그런 영상미학을 습득한 기초체력은 사실 ‘서강연극회’와 ‘서강 사학’에서 차곡차곡 다진 것이라고 윤 감독은 말했다.

“서양사·동양사·한국사로 나뉘지 않고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며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권을 준 우리학교 사학과 시스템에 지금도 감사해요. 그 덕에 소수자의 역사나 미시사 등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은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학교를 떠나 활동하시는) 백승종 선생님의 미시사 수업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날 듯 해요. 그런 수업들을 통해 사물을 세밀하면서도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영화감독하러 연극반에 들어간’ 소녀에겐 확고한 롤 모델이 있었다. 서강연극회 출신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등 한국 영화사에 의미 있는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든 이정향(83 불문) 감독이다.

“사실은 연극반 문을 두드린 것도 이정향 선배님이 활동하셨다는 얘기를 들어서였거든요. 갓 들어온 신입생이 ‘영화감독 하고 싶어 왔다’니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런데도 선배들이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연기와 무대작업, 연출 등 가리지 않고 제 역할을 다했던 윤 감독은 “배우 경험은 연출자에게 시선과 생각 폭을 넓혀준다”라며 “그런 면에서 연극반 생활은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라고 말했다. 마침 윤 감독이 입학하던 2000년 봄, 서강연극회는 개교 40주년 동문합동공연 ‘뜻대로 하세요’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모처럼 60년대 학번 선배들까지 총출동한 터였다. 연습 뒤풀이가 열린 어느 봄날 저녁 호프집에서 선배들 손에 이끌려 이정향 감독 테이블에 앉던 첫 만남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때 우상이던 이정향 선배님은 지금도 중요한 일이 있으면 꼭 만나서 조언을 구하는 정신적인 지주세요. 그 때 하신 말씀이 ‘내가 연극반에서 활동하지 않았으면 영화를 하나도 몰랐을거야’라는 건데, 그 말을 지금 제가 똑같이 하고 있네요. 하하.”

윤 감독은 앞서 2013년 일곱살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 세상을 그린 단편 ‘콩나물’로 이름을 알렸다. 두 작품이 공교롭게 어린이·청소년들의 이야기다보니 특정 이미지로 굳혀지는 것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음. 어린이 캐릭터에 대해 특별히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그 분야에 특화되고 싶은 바람도 없어요. 다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구욕보다는 일상 속 익숙함에서 이야기를 찾으려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게 된 것 같아요.”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앞으로도 이 젊은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큰 줄기가 될 듯 하다.

“온가족이 함께 보고 감동받던 80~90년대 영화들에 대한 향수와 애착이 강해요. 월트디즈니의 홈 무비부터 그렘린·구니스·레이더스·내 사랑 컬리수·빅·스탠바이 미등 이런 영화들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 벅차거든요.”

“영화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방식도 지금보다 오히려 80~90년대 영화들이 세밀하고 따뜻했다”라는 윤 감독은 “그 시절 영화처럼 오래토록 기억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ET가 만들어진지 30년이 넘도록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냥 외계인이 나오는 공상과학영화가 아니라 부모님의 불화로 괴로워하는 주인공 엘리어트 등 또래 아이들의 고민을 세심하게 담았고, 그런 짜임새가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거든요. 저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윤가은 감독 영화 '우리들' 포스터>


<윤가은 감독 영화 '손님' 포스터>


<윤가은 감독 영화 '콩나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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