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그리고/찍어 여행기 낸 송영만(74정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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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8-29 12:15 조회13,9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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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는 ‘꿈의 지도’ 들고 지중해를 여행하다”
어른들이 말했다. ‘아이들이 조용하면 그건 십중팔구 사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그건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 듯하다. 오랫동안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학교의 몇몇 위원회 위원으로, 또 본업과 관련된 각종 단체와 협의회 등에서 대표와 임원을 맡아 정신없이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많은 동문들이 몹시 궁금해 하던 동문이 있었다.
“그 분 요즘 뭐하고 지낸대요?”
질문에 답하듯 궁금증의 주인공인 송영만(74 정외) 동문이 얼마 전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지중해 여행지도, 나를 기억하다』란 결코 짧지 않은 제목의 수상한 여행서 한 권을 들고서. 「어느 시간 여행자의 백 투더 퓨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표지를 보니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본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표까지 달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펴낸 모양이다.
요즘 같이 여행서가 범람하는 시대, 서점에 널린 여행 가이드북 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 키워드나 지역명만 넣어도 실시간으로 여행 정보가 우르르 쏟아지는 시대, 친절하게도 똑같은 여행 경험과 음식, 취향까지도 은근히 강요하는 내용들로 채워진 여행자들의 개인 블로그가 넘쳐나는 시대에 또 여행서라니. 2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며 남의 책만 500여권 내더니 드디어 심통이 났나보다 싶어 슬쩍 물어보았다. 어쩌다가 이런 책을 냈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연이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부터 지리부도를 끼고 살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엔 ‘지리 집착증’이 있었고 대학의 전공도 일찌감치 ‘지리학과’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입시 두달을 남기고 통학 시간조차 아껴 입시에 매진하겠다며 친구 다섯과 학교 앞에 공부방을 마련한 게 화근이었다. 고삐 풀린 혈기왕성한 망아지 다섯이 무엇을 했겠는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공부방에 늘어선 술병만큼 공부와 멀어졌고 다섯 모두 대학입시에서 낙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대학은 70년대의 혼란과 그 대학 특유의 빡빡한 학사관리, 짜디짠 소금 학점 덕분에 한 학기 더 다니고 졸업해야 했고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좋은 대학을 졸업한 덕분에 원하던 분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영어 잘 가르치는 학교 출신에 전공(당시 외교학과) 덕을 입은 때문인지 출판계에서 국제 교류 상임이사를 맡았고 해외 교류 업무를 5년 동안 맡은 바람에 유럽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부터 시작해 아마 35번 정도 유럽을 다녀온 것 같아요. 특히 2005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기획단장을 맡았을 땐 한 해 동안 예닐곱 번 유럽에 갔었던 것 같은데…. 물론 유럽에 그렇게 많이 다녀왔어도 업무차 갔었기 때문에 주로 프랑크푸르트나 런던, 파리, 볼로냐 등지를 오가는 게 거의 전부였다고 보면 돼요. 물론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나 ‘파주출판단지문화재단’ 일을 맡았을 때도 책 마을이 산재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가끔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지로만 갔었지요. 문명의 용광로 같은 지중해 여행은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쟁여놓을 수밖에 없었고요.”
안에 꼭꼭 쟁여져있던 꿈은 우연한 기회에 밖으로 나왔다. 출판사 한편의 책방에서 열었던 건축도시 특강과 지중해 특강을 위해 책방 한쪽 벽에 지중해 전도를 분필로 스케치해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에 힘입어 색동 분필과 크레파스로 책방 곳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벽에 ‘꿈의 지도’를 그리고 하나하나 꿈을 채색해 나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2013년, 국민연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걸 모아 2014년에 남프랑스로, 2015년엔 에게해, 크레타, 키클라데스제도로 항해에 나섰다. 어쭙잖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느낌도 적었다. 그러나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3월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 회장 임기 마친 것을 계기로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심 칠순쯤에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엮어볼 생각은 해봤지만 여행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일을 저질렀다.
“원고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정리하여 책을 만드는데 편집부 직원들이 어려워하더라고요. 젊은 그들의 정서와 잘 맞지도 않고 내용도 잘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출간된 책을 직원들의 부모님들이 보더니 공감하고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편집부 직원들이 아닌 그 부모님 세대들이 이해할 만한 내용인거지요.”
수줍게 내민 책에 보인 주위의 반응은 의외였다. 책을 본 파주의 비슷한 또래 출판사 사장들이 격려를 해줬고 조촐하게나마 여러 군데에서 출판 축하모임을 열어주었다. 책을 읽어 본 지인들은 “송영만이란 친구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언제 그림을 배웠느냐”라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사람은 본인이었다.
“내 안에 이런 끼가 숨어있는 줄 몰랐어요. 젊었을 땐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느라 미처 몰랐던 내 본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거지요.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자신 안에 꽁꽁 숨어있는 자기를 끄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자신을 잘 갈무리함과 동시에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책을 내면서 얻은 것은 숨겨진 재능만이 아니었다. 여행지도를 그릴 때마다 열리는 ‘기억의 창고’ 속에서 화석화된 추억의 파편들이 튀어나왔고, 슬프고 아렸던 사연들도, 질곡의 나날들도 때론 정겹고 곰삭은 맛으로, 때로는 희석된 너그러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행 지도를 그리면서 아픈 추억들과 가슴 시린 기억들과 화해하는 힐링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이 여행기는 따라서 그의 고백록이자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함께 추억하는 문화, 예술,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동시대를 보낸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그리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책 주문은 매주 몇 권씩 꾸준히 들어오는데 인터넷 서점을 통한 주문보다는 저 멀리 어느 지방 서점 같은 곳에서 주로 들어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젊은 세대보다는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세대, 공감할 수 있는 세대들이 이 책의 독자인 것 같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보다는 해외여행에 제한이 있었고 쉽게 가볼 수 없어서 지도를 펴놓고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펴며 자랐던 세대들, 팝송과 그림과 사진으로만 해외를 경험했던 그 세대들에게 이 책은 그들의 아쉬웠던 이야기가 담긴 것이다.
그런데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고 했던가. 이미 스무 번 정도 다녀온 일본의 여행기를 내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다음엔 다시 남프랑스에서 시작해 스페인 해안까지, 북아프리카 알제, 튀니스를 거쳐 벵가지, 알렉산드리아까지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을 탐방하고 두 권의 책을 더 펴낼 계획이다.
“그러다 보면 제 60대는 어느덧 다 지나가고 70대가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손발이 떨려 걷기도 여의치 않고, 눈도 침침해 운전대를 잡기 어려울 테니 여행은 더 이상 못 할 테고요. 제 여행기는 거기까지에요.”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출판사 책방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지중해 그림은 짙푸른 색이다. 그리고 그의 ‘꿈의 지도’는 이전보다 더 선명해졌다. 물론 남의 여행기가 올려진 블로그를 뒤지고, 웹서핑을 통해 마치 공장에서 기성품을 찍어내듯 동일한 장소, 남들이 가본 맛집을 찾아서 동일한 맛과 경험을 하고 인증샷을 올려야 제대로 된 여행을 한 듯, 마치 남의 여행경험을 검증하기 위해 간 듯한 여행을 해야만 안심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그의 여행담은 느리고 고루하기 짝이 없고 재미없는 ‘나이든 아저씨표’ 이야기이다.
어른들이 말했다. ‘아이들이 조용하면 그건 십중팔구 사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그건 비단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 듯하다. 오랫동안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학교의 몇몇 위원회 위원으로, 또 본업과 관련된 각종 단체와 협의회 등에서 대표와 임원을 맡아 정신없이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져서 많은 동문들이 몹시 궁금해 하던 동문이 있었다.
“그 분 요즘 뭐하고 지낸대요?”
질문에 답하듯 궁금증의 주인공인 송영만(74 정외) 동문이 얼마 전 책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지중해 여행지도, 나를 기억하다』란 결코 짧지 않은 제목의 수상한 여행서 한 권을 들고서. 「어느 시간 여행자의 백 투더 퓨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표지를 보니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본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표까지 달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펴낸 모양이다.
요즘 같이 여행서가 범람하는 시대, 서점에 널린 여행 가이드북 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에 키워드나 지역명만 넣어도 실시간으로 여행 정보가 우르르 쏟아지는 시대, 친절하게도 똑같은 여행 경험과 음식, 취향까지도 은근히 강요하는 내용들로 채워진 여행자들의 개인 블로그가 넘쳐나는 시대에 또 여행서라니. 2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며 남의 책만 500여권 내더니 드디어 심통이 났나보다 싶어 슬쩍 물어보았다. 어쩌다가 이런 책을 냈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연이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부터 지리부도를 끼고 살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엔 ‘지리 집착증’이 있었고 대학의 전공도 일찌감치 ‘지리학과’를 염두에 두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입시 두달을 남기고 통학 시간조차 아껴 입시에 매진하겠다며 친구 다섯과 학교 앞에 공부방을 마련한 게 화근이었다. 고삐 풀린 혈기왕성한 망아지 다섯이 무엇을 했겠는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공부방에 늘어선 술병만큼 공부와 멀어졌고 다섯 모두 대학입시에서 낙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대학은 70년대의 혼란과 그 대학 특유의 빡빡한 학사관리, 짜디짠 소금 학점 덕분에 한 학기 더 다니고 졸업해야 했고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좋은 대학을 졸업한 덕분에 원하던 분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영어 잘 가르치는 학교 출신에 전공(당시 외교학과) 덕을 입은 때문인지 출판계에서 국제 교류 상임이사를 맡았고 해외 교류 업무를 5년 동안 맡은 바람에 유럽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고 한다.
“1989년부터 시작해 아마 35번 정도 유럽을 다녀온 것 같아요. 특히 2005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기획단장을 맡았을 땐 한 해 동안 예닐곱 번 유럽에 갔었던 것 같은데…. 물론 유럽에 그렇게 많이 다녀왔어도 업무차 갔었기 때문에 주로 프랑크푸르트나 런던, 파리, 볼로냐 등지를 오가는 게 거의 전부였다고 보면 돼요. 물론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나 ‘파주출판단지문화재단’ 일을 맡았을 때도 책 마을이 산재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가끔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등지로만 갔었지요. 문명의 용광로 같은 지중해 여행은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쟁여놓을 수밖에 없었고요.”
안에 꼭꼭 쟁여져있던 꿈은 우연한 기회에 밖으로 나왔다. 출판사 한편의 책방에서 열었던 건축도시 특강과 지중해 특강을 위해 책방 한쪽 벽에 지중해 전도를 분필로 스케치해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에 힘입어 색동 분필과 크레파스로 책방 곳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출판사 벽에 ‘꿈의 지도’를 그리고 하나하나 꿈을 채색해 나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2013년, 국민연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걸 모아 2014년에 남프랑스로, 2015년엔 에게해, 크레타, 키클라데스제도로 항해에 나섰다. 어쭙잖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느낌도 적었다. 그러나 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3월 파주출판도시 입주기업협의회 회장 임기 마친 것을 계기로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심 칠순쯤에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엮어볼 생각은 해봤지만 여행기를 쓰겠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어찌어찌 용기를 내어 일을 저질렀다.
“원고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정리하여 책을 만드는데 편집부 직원들이 어려워하더라고요. 젊은 그들의 정서와 잘 맞지도 않고 내용도 잘 모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출간된 책을 직원들의 부모님들이 보더니 공감하고 좋아했다고 들었어요. 편집부 직원들이 아닌 그 부모님 세대들이 이해할 만한 내용인거지요.”
수줍게 내민 책에 보인 주위의 반응은 의외였다. 책을 본 파주의 비슷한 또래 출판사 사장들이 격려를 해줬고 조촐하게나마 여러 군데에서 출판 축하모임을 열어주었다. 책을 읽어 본 지인들은 “송영만이란 친구에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언제 그림을 배웠느냐”라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사람은 본인이었다.
“내 안에 이런 끼가 숨어있는 줄 몰랐어요. 젊었을 땐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느라 미처 몰랐던 내 본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거지요.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 자신 안에 꽁꽁 숨어있는 자기를 끄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자신을 잘 갈무리함과 동시에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책을 내면서 얻은 것은 숨겨진 재능만이 아니었다. 여행지도를 그릴 때마다 열리는 ‘기억의 창고’ 속에서 화석화된 추억의 파편들이 튀어나왔고, 슬프고 아렸던 사연들도, 질곡의 나날들도 때론 정겹고 곰삭은 맛으로, 때로는 희석된 너그러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행 지도를 그리면서 아픈 추억들과 가슴 시린 기억들과 화해하는 힐링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이 여행기는 따라서 그의 고백록이자 그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함께 추억하는 문화, 예술,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동시대를 보낸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그리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책 주문은 매주 몇 권씩 꾸준히 들어오는데 인터넷 서점을 통한 주문보다는 저 멀리 어느 지방 서점 같은 곳에서 주로 들어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젊은 세대보다는 어느 정도 나이가 지긋한 세대, 공감할 수 있는 세대들이 이 책의 독자인 것 같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보다는 해외여행에 제한이 있었고 쉽게 가볼 수 없어서 지도를 펴놓고 상상의 나래를 많이 펴며 자랐던 세대들, 팝송과 그림과 사진으로만 해외를 경험했던 그 세대들에게 이 책은 그들의 아쉬웠던 이야기가 담긴 것이다.
그런데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고 했던가. 이미 스무 번 정도 다녀온 일본의 여행기를 내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다음엔 다시 남프랑스에서 시작해 스페인 해안까지, 북아프리카 알제, 튀니스를 거쳐 벵가지, 알렉산드리아까지 지중해를 둘러싼 지역을 탐방하고 두 권의 책을 더 펴낼 계획이다.
“그러다 보면 제 60대는 어느덧 다 지나가고 70대가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손발이 떨려 걷기도 여의치 않고, 눈도 침침해 운전대를 잡기 어려울 테니 여행은 더 이상 못 할 테고요. 제 여행기는 거기까지에요.”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출판사 책방 한쪽 벽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지중해 그림은 짙푸른 색이다. 그리고 그의 ‘꿈의 지도’는 이전보다 더 선명해졌다. 물론 남의 여행기가 올려진 블로그를 뒤지고, 웹서핑을 통해 마치 공장에서 기성품을 찍어내듯 동일한 장소, 남들이 가본 맛집을 찾아서 동일한 맛과 경험을 하고 인증샷을 올려야 제대로 된 여행을 한 듯, 마치 남의 여행경험을 검증하기 위해 간 듯한 여행을 해야만 안심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그의 여행담은 느리고 고루하기 짝이 없고 재미없는 ‘나이든 아저씨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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