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행정가 안호상(79정외) 국립중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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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16 11:14 조회27,7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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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도 좋고 해금도 좋고… 국악기 다루면 훨씬 풍요롭습니다”
안호상 (79 정외)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문화예술관광부는 국립중앙극장 안호상 극장장의 임용기간을 이례적으로 2년 연장하면서, 안 극장장이 ‘국립중앙극장의 창작 역량 및 위상 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를 우리나라 예술행정, 예술경영 분야 개척자이자 최고 전문가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남산자락 고즈넉한 분위기의,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국립중앙극장 사무동의 극장장실에서 안호상(79 정외) 동문을 만났습니다.
국립중앙극장(이하 국립극장)의 정체성이랄까 성격이랄까, 그런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계십니까?
국립극장에 공연 관람하러 오신 적 있나요? (겸연쩍게 웃음 지으며 “없습니다”) 문화예술계에 있는 분이 아니라면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국립극장이라고 하면 옛것부터 떠올립니다. 오랜 기간 그 측면에 주안점을 둬왔고요. 하지만 저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것, 컨템퍼러리(contemporary)에 방점을 찍습니다. 한국적 표현 수단에 바탕을 두지만 오늘날 당대의 예술 및 감수성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한국인의 역사성, 전통적 예술성을 기반으로 하되 어디까지나 우리 시대의 정신과 메시지를 담아 새롭게 창작하는 겁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습니다. 새로운 레퍼토리로 예술적 갱신을 추구하는 국립극장으로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잡으신 새로운 방향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우수 공연작품을 바탕으로 ‘레퍼토리 시즌제’를 처음 도입하셨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8개 공연 모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초유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수준 높은 공연에 대한 수요 기반이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관건은 수요 기반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 어떻게 국립극장과 같은 곳으로 이끄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공연 시장을 대략 7000억 원 규모로 봅니다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고 성장세가 가파른 편에 속합니다. 영화나 게임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욕구는 창작에서나 수요에서나 강합니다. 창작 면에서 보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무대에 올리려는 욕구가 강해요.
정치외교학이라는 전공과 예술 분야는 잘 어울려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더구나 80년대 중반에는 예술행정이라는 분야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텐데요.
정치와 예술이 상통하는 면이 제법 있어요. 둘 다 박수를 먹고 산다는 점도 그렇고, 결국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라는 점, 때로는 파격과 변칙성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점도 그렇고요.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 때만해도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컸어요. 예술행정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대우에 합격해서 예비소집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해외건설 분야로 가고 싶었지만 인사 파트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뭘 짓고, 만들고 하는 분야를 좋아했습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과 과목에 자신이 없어서 문과를 간 경우지요. 건설 쪽이 아니면 대우 들어갈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신용보증기금에 지원해서 합격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술의 전당 공고를 본 겁니다. 버스도 없어서 교대 근처에서부터 한 겨울에 한참을 걸어가 시험을 쳤는데 상식시험은 예술상식문제여서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제가 바로크음악이 뭔지, 운보(김기창 화백), 난계(박연)가 누군지 몰랐는데 그런 문제가 나왔어요. ‘신용보증기금가야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합격됐어요.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일이라는 건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한다고들 생각했어요. 문화예술 수요나 수준에 비해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많았고 낭비 행정,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설계안도 나오기 전에 운영 요원으로 입사했습니다만 예술행정, 예술경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생소할 때라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요. 외국 문화예술기관에 질문도 참 많이 했고요.
초기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예술의 전당’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시대 상황이나 사회 변화와 맞아 떨어진 측면도 큽니다. 강남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에 수요층이 자리 잡았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지요. IMF 위기 이후로는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협찬과 후원이 더 늘어났습니다. IMF 위기 이후 가족, 가정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커진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가족 관객, 부부 관객이 전에 비해 크게 늘었으니까요.
예술인들이 대체로 고집이 세지 않습니까? 예술계라는 곳이 다양한 학연과 인맥이 얽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술인도 아니고, 예술 전공자도 아닌데다가 학교도 예술계에서는 동문을 찾기 힘든 곳을 나왔지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의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술기관이 지나치게 예술가 위주로 흐르지 않고 관객 중심, 예술 소비자 중심으로 균형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파벌이나 인맥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술에 대한 소양도 중요하지만 홍보, 마케팅, 기획, 예산 등 예술 자체 외적인 면들이 무척 중요해요.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기본과 원칙, 합리성을 지키려 노력해왔는데 예술인들이 그 점을 인정해주십니다. 제가 오페라 페스티벌에 오디션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반발이 심했어요. 제자들을 오디션에 보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했더니 200명 넘게 몰렸어요. 선발된 이후로도 정말 열심히 하더군요. 그렇게 한 2년을 계속했더니 결국 제자들을 오디션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안호상이 있어야 한다”라고 앞장서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고마울 따름이지요.
예술계의 히딩크 역할을 하신 셈이네요. 서강대 다니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대체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과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너도 정외과였냐?”라는 말도 들었지요. 장학금도 제법 받았고, 난곡 지역에서 야학 활동도 했습니다. 대학 다니면서부터 ‘나는 자율성을 갖추고 행동하는 하나의 인간이다’ 이런 자각이 들었지요. 서강이 그런 자각을 줬어요. 분위기도 자유로웠고,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다양한 선후배들과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도 두고두고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서강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입니다.
모교 서강은 어떤 학교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학교지요. 기본의 중요성을 체득시켜주는 학교가 서강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전반적인 학사운영에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원칙과 기본에 바탕을 둔 자유와 자율, 이게 서강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도 더 발전하려면 그런 특징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큰 흐름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고요.
인문학 전통이 강하다는 점도 특징이 되겠는데, 저는 모교의 그런 여러 가지 특징에서 큰 덕을 봤어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 기본과 원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거든요. 예술의 자율성과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예술행정과 기관운영에서는 분명한 원칙을 지켜야 하니까요.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자칫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는 사안들이 많은데, 원칙에 바탕을 둔 탈(脫)권위, 탈권위에 바탕을 둔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우리가 사는 오늘날은 ‘우리를 알아야 세계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관해 더 잘 알고, 또 더욱 깊이 알려고 노력합니다. 해외 나갈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거든요. 세계적인 흐름이 아시아에 주목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에 주목하는 흐름이 강해졌어요. 꼭 그래서만은 아닙니다만, 동문 여러분이 국악기 하나 정도를 배워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금도 좋고 해금도 좋고….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할까요,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할까요.
요즘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합니다만, 악기를 배운다거나 하는 문화예술 활동도 병행하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소양입니다. 예컨대 조선의 국가리더십은 예악(禮樂)이 핵심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을 역대 최고의 군주로 드는 이유도 예악을 진작시킨 리더십 때문이지요. 아! 중요한 걸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국립극장도 꼭 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봄이 무르익은 장충단 공원도 산책해보시고요.
안호상 (79 정외)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문화예술관광부는 국립중앙극장 안호상 극장장의 임용기간을 이례적으로 2년 연장하면서, 안 극장장이 ‘국립중앙극장의 창작 역량 및 위상 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를 우리나라 예술행정, 예술경영 분야 개척자이자 최고 전문가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남산자락 고즈넉한 분위기의,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국립중앙극장 사무동의 극장장실에서 안호상(79 정외) 동문을 만났습니다.
국립중앙극장(이하 국립극장)의 정체성이랄까 성격이랄까, 그런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계십니까?
국립극장에 공연 관람하러 오신 적 있나요? (겸연쩍게 웃음 지으며 “없습니다”) 문화예술계에 있는 분이 아니라면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국립극장이라고 하면 옛것부터 떠올립니다. 오랜 기간 그 측면에 주안점을 둬왔고요. 하지만 저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것, 컨템퍼러리(contemporary)에 방점을 찍습니다. 한국적 표현 수단에 바탕을 두지만 오늘날 당대의 예술 및 감수성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한국인의 역사성, 전통적 예술성을 기반으로 하되 어디까지나 우리 시대의 정신과 메시지를 담아 새롭게 창작하는 겁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습니다. 새로운 레퍼토리로 예술적 갱신을 추구하는 국립극장으로 보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잡으신 새로운 방향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국립극장 전속단체 우수 공연작품을 바탕으로 ‘레퍼토리 시즌제’를 처음 도입하셨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8개 공연 모두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초유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수준 높은 공연에 대한 수요 기반이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관건은 수요 기반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 어떻게 국립극장과 같은 곳으로 이끄느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공연 시장을 대략 7000억 원 규모로 봅니다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왔고 성장세가 가파른 편에 속합니다. 영화나 게임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욕구는 창작에서나 수요에서나 강합니다. 창작 면에서 보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무대에 올리려는 욕구가 강해요.
정치외교학이라는 전공과 예술 분야는 잘 어울려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더구나 80년대 중반에는 예술행정이라는 분야 자체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텐데요.
정치와 예술이 상통하는 면이 제법 있어요. 둘 다 박수를 먹고 산다는 점도 그렇고, 결국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라는 점, 때로는 파격과 변칙성이 필요할 때가 많다는 점도 그렇고요.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 때만해도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동기가 컸어요. 예술행정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대우에 합격해서 예비소집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해외건설 분야로 가고 싶었지만 인사 파트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뭘 짓고, 만들고 하는 분야를 좋아했습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과 과목에 자신이 없어서 문과를 간 경우지요. 건설 쪽이 아니면 대우 들어갈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신용보증기금에 지원해서 합격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술의 전당 공고를 본 겁니다. 버스도 없어서 교대 근처에서부터 한 겨울에 한참을 걸어가 시험을 쳤는데 상식시험은 예술상식문제여서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제가 바로크음악이 뭔지, 운보(김기창 화백), 난계(박연)가 누군지 몰랐는데 그런 문제가 나왔어요. ‘신용보증기금가야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합격됐어요.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일이라는 건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전당’이 얼마 가지 않아 망한다고들 생각했어요. 문화예술 수요나 수준에 비해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많았고 낭비 행정,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까지 들었습니다. 저는 설계안도 나오기 전에 운영 요원으로 입사했습니다만 예술행정, 예술경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생소할 때라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가르쳐줄 사람도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요. 외국 문화예술기관에 질문도 참 많이 했고요.
초기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예술의 전당’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시대 상황이나 사회 변화와 맞아 떨어진 측면도 큽니다. 강남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까운 곳에 수요층이 자리 잡았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지요. IMF 위기 이후로는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협찬과 후원이 더 늘어났습니다. IMF 위기 이후 가족, 가정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커진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가족 관객, 부부 관객이 전에 비해 크게 늘었으니까요.
예술인들이 대체로 고집이 세지 않습니까? 예술계라는 곳이 다양한 학연과 인맥이 얽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예술인도 아니고, 예술 전공자도 아닌데다가 학교도 예술계에서는 동문을 찾기 힘든 곳을 나왔지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점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의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술기관이 지나치게 예술가 위주로 흐르지 않고 관객 중심, 예술 소비자 중심으로 균형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파벌이나 인맥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일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술에 대한 소양도 중요하지만 홍보, 마케팅, 기획, 예산 등 예술 자체 외적인 면들이 무척 중요해요.
처음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기본과 원칙, 합리성을 지키려 노력해왔는데 예술인들이 그 점을 인정해주십니다. 제가 오페라 페스티벌에 오디션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는데 반발이 심했어요. 제자들을 오디션에 보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했더니 200명 넘게 몰렸어요. 선발된 이후로도 정말 열심히 하더군요. 그렇게 한 2년을 계속했더니 결국 제자들을 오디션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안호상이 있어야 한다”라고 앞장서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고마울 따름이지요.
예술계의 히딩크 역할을 하신 셈이네요. 서강대 다니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대체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과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너도 정외과였냐?”라는 말도 들었지요. 장학금도 제법 받았고, 난곡 지역에서 야학 활동도 했습니다. 대학 다니면서부터 ‘나는 자율성을 갖추고 행동하는 하나의 인간이다’ 이런 자각이 들었지요. 서강이 그런 자각을 줬어요. 분위기도 자유로웠고,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다양한 선후배들과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었던 것도 두고두고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서강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입니다.
모교 서강은 어떤 학교라고 생각하십니까?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학교지요. 기본의 중요성을 체득시켜주는 학교가 서강 말고 또 어디 있겠어요? 전반적인 학사운영에서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롭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원칙과 기본에 바탕을 둔 자유와 자율, 이게 서강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도 더 발전하려면 그런 특징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큰 흐름에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고요.
인문학 전통이 강하다는 점도 특징이 되겠는데, 저는 모교의 그런 여러 가지 특징에서 큰 덕을 봤어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면 기본과 원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거든요. 예술의 자율성과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예술행정과 기관운영에서는 분명한 원칙을 지켜야 하니까요.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자칫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는 사안들이 많은데, 원칙에 바탕을 둔 탈(脫)권위, 탈권위에 바탕을 둔 원칙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우리가 사는 오늘날은 ‘우리를 알아야 세계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관해 더 잘 알고, 또 더욱 깊이 알려고 노력합니다. 해외 나갈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거든요. 세계적인 흐름이 아시아에 주목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에 주목하는 흐름이 강해졌어요. 꼭 그래서만은 아닙니다만, 동문 여러분이 국악기 하나 정도를 배워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대금도 좋고 해금도 좋고….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할까요,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할까요.
요즘 많은 분들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합니다만, 악기를 배운다거나 하는 문화예술 활동도 병행하시면 좋겠습니다. 문화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소양입니다. 예컨대 조선의 국가리더십은 예악(禮樂)이 핵심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을 역대 최고의 군주로 드는 이유도 예악을 진작시킨 리더십 때문이지요. 아! 중요한 걸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국립극장도 꼭 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봄이 무르익은 장충단 공원도 산책해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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