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79 철학) 모교 철학과 교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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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5-06 10:59 조회23,2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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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정신의 근간은 인문정신
모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문학 강연을 통해 큰 인기를 모아온 최진석(79 철학) 동문. 최근 최 동문은 청년 인문·예술·과학 교육기관 건명원을 출범시켰습니다. 우리 시대 철학과 인문학의 의미와 가치, 인문학 공부의 본질,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 방향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최 동문의 생각과 만날 수 있었던 인터뷰는 그 자체로 ‘인문학 특강’이었습니다.
표정훈(이하 표) 중국 베이징대에서 1996년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최초의 중국 박사인데, 한중 수교가 이뤄진 게 1992년이니 당시만 해도 중국 유학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유학 당시 기억나는 일로 무엇이 있을까요?
최진석 저 혼자만 최초의 중국 박사가 아니었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이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 전공은 중국철학이지만 베이징대 박사과정 시험에서 서양철학과 중국철학 과목을 모두 치러야했습니다. 시험 결과에 베이징대 교수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중국 학생들보다, 서양철학 전공자들보다 서양철학 점수가 월등히 높게 나왔으니까요. 교수가 제게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런 시험 많이 쳐봤다”라고 답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모교 철학과는 동과 서를 넘나들며 폭넓게 그리고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박사과정 면접 볼 때는 교수가 저에게 “(당나라 유학생 출신) 최치원(857~?)의 후예냐?”라고 물었어요. 적대국이었던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상대로 한 최초의 면접이었으니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와 뉘앙스가 담긴 역사적(historic) 질문이었죠. 박사과정에서 연구하다보니 그 질문이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일종의 책임감이랄까요. 유구한역사를 지닌 한중 간 학문 교류에서 작지만 하나의 획을 긋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표 모교 철학과는 아무래도 서양철학이 강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건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가 궁금합니다.
최진석 사실 칸트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독일어도 열심히 했습니다. 독일로 유학 갈 생각이었으니까요. 한문과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4학년 때부터였어요. 어느 날 책꽂이에서 『장자』(莊子)가 눈에 들어왔어요. 펼쳐 읽는데 정말 재미있더군요. 오전 10시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 꼼짝 않고 읽었습니다. 솔직히 칸트를 공부할 때는 힘들었거든요. ‘머리를 쥐어짜면서 공부하는 기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장자』는 즐거웠어요. 즐겁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가 동양철학이고 『장자』이겠다 싶었습니다. 공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저는 알려는 공부를 하다가 즐기는 공부로 바꾼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늦게 시작한 한문과 동양철학 공부지만 진도가 빨랐습니다.
표 교수님은 EBS인문학특강을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문학, 동양철학을 통해서 만나오셨습니다. ‘섭외 1순위 강연자’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준비하신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진석 일부러 준비한 적은 없고요,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인연들을 통해서 인문학 강연을 시작하게 됐어요. 강연 할때 염두에 둔 원칙은 간단합니다. 소통이에요. 강연이라는게 강연하는 나부터 재미있어야 청중들도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강연이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비근한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없다면 정말로 아는 게 아닙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재미있어서 깊이 체화시킨 앎이어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 전문적인 철학을 책에 나오는 관념어, 개념어,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일상 언어를 가지고 주부, 직장인, 학생, 기업인 등 각계각층 사람들과 소통하는건 즐거운 일입니다. 제가 아는 지식을 가르친다기보다는 함께 즐기며 생각하는 소통의 자리가 바로 강연입니다.
표 인문학에 대한 욕구랄까, 수요랄까요. 그런 것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진석 인문학 텍스트와 씨름하고 인문학 지식을 쌓는것도 중요합니다만, 한 단계 더 나아가 구체적인 시대의식을 포착하고 현실과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사회, 어떤 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건 철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차원의 높은 수준과 시선을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들이 선진국인 까닭은 그런 수준과 시선에 있습니다. 선진국이란 ‘철학적 레벨에서 움직이는 나라’예요. 창조성, 창의성도 철학과 인문학, 예술의 차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현되기 어렵습니다. 학술 교류를 위해 중국에 자주 갑니다만, 중국은 단순히 고도경제성장을 하는 나라에서 더 나아가 철학적, 인문학적 차원에서도 빠르게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해보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그런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최진석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곧 인문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인문적으로 사람과 세상과 사태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문학 텍스트를 공부하고 철학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의 길을 펼친 사람들’을 보면서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길을 참고해서 ‘내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되자’는 것이죠. 철학사나 철학자, 인문학 텍스트는 내 생각과 내 삶의 레퍼런스이지 그 자체가 곧 내 생각과 삶의 텍스트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표 노장(老莊) 철학, 즉 도가(道家)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노자』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구절을 말씀해주신다면.
최진석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입니다. 저는 “멋대로 해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성립된 이념, 신념을 통해 세계와 관계합니다. 사실 그게 참 편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진위(眞僞) 논쟁에 쉽게 그리고 깊게 빠지곤 합니다. 이미 굳어져 익숙한 신념, 이념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하다보니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진영논리, 진위 싸움이 치열해집니다. 유위적 태도는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보는 모범생의 태도입니다. 이미 정해진 틀대로 보는 거죠. 반면 무위적 태도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만 ‘보여지는 대로’ 봅니다. 무위적 태도에서 비로소 새로운 틀을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어요. 모범생은 잘 따라 하기만 하거든요. 수양이니 공부니 하는 것도 결국 세계가 보여지는대로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 열심히 하다보면 자칫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틀에 따라서 봐야하는 대로만 보게 될 수 있어요. 오늘날 대학이 길러내야 할 인재상도, 무위적 태도로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면서 새로운 틀과 나름의 신념을 세울 줄 아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표 최근에 새로운 큰일을 펼치고 계십니다. 건명원(www.gunmyung.or.kr)이라는 청년 대상의 인문, 과학,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자 기관을 시작하셨습니다.
최진석 만 19세부터 29세 사이 1기생 30명을 선발해서 3월부터 10개월 간 교육하는데 900명이 지원했어요. 제가 원장을 맡았습니다만 모교 서동욱(90 철학) 교수를 비롯해서 김대식(카이스트 뇌과학), 배철현(서울대 종교학),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 교수 등도 참여했습니다. 매달 한 번 세계적인 학자를 초청해 특강을 하고 수료한 학생에게는 한 달간 원하는 일정대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교육비와 여행비는 전액 무료입니다. 건명원(建明苑)이라는 이름을 제가 지었습니다만 밝을 명(明)에는 해(日)와 달(月)이 함께 있지요. 겉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로 다른 둘을 상관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조망하는 큰 시선을 지향하자는 뜻입니다. 흔히 우리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미 드러나 있는 선진국의 길을 모방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길을 낼 수 없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까지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올 수 있었지만 안 보이던 새로운 길을 내자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의 소양을 융합적으로 바탕 삼아야 합니다. 철학과 인문학이 개인적 삶의 가치와 의미 차원에서 더 나아가 보편적 시대의식으로 심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건명원은 그런 소명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표 교수님에게 서강이 지니는 의미, 그리고 동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최진석 서강의 큰 특징은 개방성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가톨릭 예수회 학교라고 해서 특정 이념과 가치관을 강제하거나 주입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허용하고 또 포용하는 곳이 서강이니까요. 그런 개방성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학교에서 공부한 우리 동문들이 큰 자신감을 갖고 마이웨이(My Way)를 걸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더 탁월해지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꿈과 이상을 추구하다가도 졸업하고 생활하다보면 그런 게 사라지죠. 먹고 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삶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서강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강 정신의 중요한 근간이 바로 인문 정신이기도 하고요.
모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문학 강연을 통해 큰 인기를 모아온 최진석(79 철학) 동문. 최근 최 동문은 청년 인문·예술·과학 교육기관 건명원을 출범시켰습니다. 우리 시대 철학과 인문학의 의미와 가치, 인문학 공부의 본질,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미래 방향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최 동문의 생각과 만날 수 있었던 인터뷰는 그 자체로 ‘인문학 특강’이었습니다.
표정훈(이하 표) 중국 베이징대에서 1996년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최초의 중국 박사인데, 한중 수교가 이뤄진 게 1992년이니 당시만 해도 중국 유학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유학 당시 기억나는 일로 무엇이 있을까요?
최진석 저 혼자만 최초의 중국 박사가 아니었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이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 전공은 중국철학이지만 베이징대 박사과정 시험에서 서양철학과 중국철학 과목을 모두 치러야했습니다. 시험 결과에 베이징대 교수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중국 학생들보다, 서양철학 전공자들보다 서양철학 점수가 월등히 높게 나왔으니까요. 교수가 제게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이런 시험 많이 쳐봤다”라고 답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모교 철학과는 동과 서를 넘나들며 폭넓게 그리고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박사과정 면접 볼 때는 교수가 저에게 “(당나라 유학생 출신) 최치원(857~?)의 후예냐?”라고 물었어요. 적대국이었던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상대로 한 최초의 면접이었으니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와 뉘앙스가 담긴 역사적(historic) 질문이었죠. 박사과정에서 연구하다보니 그 질문이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일종의 책임감이랄까요. 유구한역사를 지닌 한중 간 학문 교류에서 작지만 하나의 획을 긋는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표 모교 철학과는 아무래도 서양철학이 강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여건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가 궁금합니다.
최진석 사실 칸트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독일어도 열심히 했습니다. 독일로 유학 갈 생각이었으니까요. 한문과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4학년 때부터였어요. 어느 날 책꽂이에서 『장자』(莊子)가 눈에 들어왔어요. 펼쳐 읽는데 정말 재미있더군요. 오전 10시부터 읽기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 꼼짝 않고 읽었습니다. 솔직히 칸트를 공부할 때는 힘들었거든요. ‘머리를 쥐어짜면서 공부하는 기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장자』는 즐거웠어요. 즐겁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공부가 동양철학이고 『장자』이겠다 싶었습니다. 공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저는 알려는 공부를 하다가 즐기는 공부로 바꾼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늦게 시작한 한문과 동양철학 공부지만 진도가 빨랐습니다.
표 교수님은 EBS인문학특강을 비롯한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문학, 동양철학을 통해서 만나오셨습니다. ‘섭외 1순위 강연자’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준비하신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최진석 일부러 준비한 적은 없고요,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인연들을 통해서 인문학 강연을 시작하게 됐어요. 강연 할때 염두에 둔 원칙은 간단합니다. 소통이에요. 강연이라는게 강연하는 나부터 재미있어야 청중들도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강연이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구체적이고 비근한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없다면 정말로 아는 게 아닙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내가 재미있어서 깊이 체화시킨 앎이어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 전문적인 철학을 책에 나오는 관념어, 개념어,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일상 언어를 가지고 주부, 직장인, 학생, 기업인 등 각계각층 사람들과 소통하는건 즐거운 일입니다. 제가 아는 지식을 가르친다기보다는 함께 즐기며 생각하는 소통의 자리가 바로 강연입니다.
표 인문학에 대한 욕구랄까, 수요랄까요. 그런 것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진석 인문학 텍스트와 씨름하고 인문학 지식을 쌓는것도 중요합니다만, 한 단계 더 나아가 구체적인 시대의식을 포착하고 현실과 만나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사회, 어떤 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건 철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차원의 높은 수준과 시선을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들이 선진국인 까닭은 그런 수준과 시선에 있습니다. 선진국이란 ‘철학적 레벨에서 움직이는 나라’예요. 창조성, 창의성도 철학과 인문학, 예술의 차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현되기 어렵습니다. 학술 교류를 위해 중국에 자주 갑니다만, 중국은 단순히 고도경제성장을 하는 나라에서 더 나아가 철학적, 인문학적 차원에서도 빠르게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해보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그런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최진석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곧 인문학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인문적으로 사람과 세상과 사태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문학 텍스트를 공부하고 철학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스스로 생각의 길을 펼친 사람들’을 보면서 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길을 참고해서 ‘내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되자’는 것이죠. 철학사나 철학자, 인문학 텍스트는 내 생각과 내 삶의 레퍼런스이지 그 자체가 곧 내 생각과 삶의 텍스트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표 노장(老莊) 철학, 즉 도가(道家)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노자』에서 특별히 생각나는 구절을 말씀해주신다면.
최진석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입니다. 저는 “멋대로 해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라고 풀이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성립된 이념, 신념을 통해 세계와 관계합니다. 사실 그게 참 편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진위(眞僞) 논쟁에 쉽게 그리고 깊게 빠지곤 합니다. 이미 굳어져 익숙한 신념, 이념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하다보니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는 진영논리, 진위 싸움이 치열해집니다. 유위적 태도는 세계를 ‘봐야하는 대로’ 보는 모범생의 태도입니다. 이미 정해진 틀대로 보는 거죠. 반면 무위적 태도는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만 ‘보여지는 대로’ 봅니다. 무위적 태도에서 비로소 새로운 틀을 생산하고 창조할 수 있어요. 모범생은 잘 따라 하기만 하거든요. 수양이니 공부니 하는 것도 결국 세계가 보여지는대로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공부 열심히 하다보면 자칫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틀에 따라서 봐야하는 대로만 보게 될 수 있어요. 오늘날 대학이 길러내야 할 인재상도, 무위적 태도로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면서 새로운 틀과 나름의 신념을 세울 줄 아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표 최근에 새로운 큰일을 펼치고 계십니다. 건명원(www.gunmyung.or.kr)이라는 청년 대상의 인문, 과학,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자 기관을 시작하셨습니다.
최진석 만 19세부터 29세 사이 1기생 30명을 선발해서 3월부터 10개월 간 교육하는데 900명이 지원했어요. 제가 원장을 맡았습니다만 모교 서동욱(90 철학) 교수를 비롯해서 김대식(카이스트 뇌과학), 배철현(서울대 종교학),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 교수 등도 참여했습니다. 매달 한 번 세계적인 학자를 초청해 특강을 하고 수료한 학생에게는 한 달간 원하는 일정대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교육비와 여행비는 전액 무료입니다. 건명원(建明苑)이라는 이름을 제가 지었습니다만 밝을 명(明)에는 해(日)와 달(月)이 함께 있지요. 겉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로 다른 둘을 상관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조망하는 큰 시선을 지향하자는 뜻입니다. 흔히 우리나라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미 드러나 있는 선진국의 길을 모방하는 것으로는 새로운 길을 낼 수 없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까지는 ‘하면 된다’ 정신으로 올 수 있었지만 안 보이던 새로운 길을 내자면 철학과 예술과 과학의 소양을 융합적으로 바탕 삼아야 합니다. 철학과 인문학이 개인적 삶의 가치와 의미 차원에서 더 나아가 보편적 시대의식으로 심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건명원은 그런 소명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표 교수님에게 서강이 지니는 의미, 그리고 동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최진석 서강의 큰 특징은 개방성과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가톨릭 예수회 학교라고 해서 특정 이념과 가치관을 강제하거나 주입하려 하지 않고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허용하고 또 포용하는 곳이 서강이니까요. 그런 개방성과 자신감으로 충만한 학교에서 공부한 우리 동문들이 큰 자신감을 갖고 마이웨이(My Way)를 걸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더 탁월해지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꿈과 이상을 추구하다가도 졸업하고 생활하다보면 그런 게 사라지죠. 먹고 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삶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서강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강 정신의 중요한 근간이 바로 인문 정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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