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015년, 문화·라이프스타일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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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1-08 09:51 조회23,9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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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족(自滿族), 대안족(代案族) 늘고
에피소드화 경향 뚜렷할 듯
표정훈(88 철학)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
문화·라이프스타일 경향을 전망한다는 것은 다양한 다른 영역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망한다는 뜻이다. 그물을 잡아당길 때 그물코 하나만 잡아당길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한 시대, 한 시기의 문화·라이프스타일은 그 시대 경제·정치·사회·심리 등 다른 영역들과 그물망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들과 완전히 독립되어 홀로 펼쳐지는 문화·라이프스타일은 없다. 그러니 2015년 문화·라이프스타일을 전망하자면 2015년의 경제·정치·사회·심리라는 총체적인 맥락을 함께 가늠해보아야 할 터인데 필자의 재주는 그렇게 하기에 턱 없이 모자라다. 이 점을 감안하고 또한 감수하면서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자기만족(self-contentment)으로서의 행복 추구다. 자기 처지를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의 기준을 따르고 남들이 가진 것을 따라 가지려는 추종적·추격적 행복 추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소비만 해도 그렇다. 명품으로 대표되는 과시 소비와 구별 짓기 소비 추구의 경향이 어느 정도 여전하긴 하지만, 소비하는 데 필수적인 재화(財貨)를 증식시킬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제한적이다. 소득도 부동산도 예금도 주식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크고 화려하고 비싼 것을 소비하려면 더 벌어야 하지만 더 벌 길이 막막하다면 선택은 ‘나대로’, ‘나름대로’, ‘나만의’ 만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테크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족의 테크놀로지가 그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해진다.
2000원 안팎의 ‘밥버거’로 점심을 먹고 1만 원 안팎의 디저트를 먹는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필요가 없다. 그가 디저트에서 얻는 만족감이 1만 원 값어치를 훨씬 더 넘기 때문이다. 디저트에서 1만 원 정도면 고급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반면, 1만 원짜리 점심 메뉴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자기만족 측면에서 볼 때 그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자기만족의 합리성을 추구할수록, 절대가격 수준이 중저가이면서 나름의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만족에 충실한 캐릭터를 스스로 자랑하여 뽐내는 자만(自慢)이 아니라 스스로, 나름대로 만족한다는 의미의 ‘자만족’(自滿族)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둘째, 대안적 삶(alternative life)의 추구다. 대안적 삶이라고 해서 ‘속세를 떠나는’ 수준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삶의 방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아가는 ‘제주도 이민’은 비록 삶의 무대와 방식을 크게 바꾸는 것이기는 해도, 펜션 운영이든 장사든 이윤 창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대안적 삶’의 추구라는 점에서 일종의 ‘저강도’(低强度) 대안에 속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른바 ‘땅콩집’으로 대표되는 내가 짓는 내 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선망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삶의 현장을 옮기거나 집을 짓는 ‘큰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추구하는 저강도 대안적 삶의 방식은 아주 많다. 옷이든 뭐든 가급적 새 제품은 사지 않고 대부분 중고 제품만 사는 사람, 집 사기를 단념하고 여행 다니는 것에 삶의 중심을 두는 사람, 내다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지인(知人)들이 먹기 위해 소규모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 등 찾아보면 나름의 대안적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자만족(自滿族)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김에 하나 더 만들면 바야흐로 ‘대안족’(代案族)이 늘어날 것이다.
셋째, 넓은 의미의 에피소드(episode)화 경향이다. 고대 희랍 연극에서 합창 사이에 끼워지는 대화를 에피소디온(epeisodion)이라고 한데서 유래한 에피소드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줄거리 사이에 끼어든 토막 이야기를 뜻하지만 그 뜻의 폭이 넓어서, 예컨대 드라마에서 각각 스토리의 완결성을 지닌 한 회를 일컫기도 하고 그냥 비교적 짧은 일화(逸話)를 말하기도 한다. 내러티브, 이른바 이야기 또는 서사(敍事)가 중요하다고 강조되곤 하는데 이제 그 내러티브라는 것도 길지 않은 에피소드 단위 또는 마디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것에서 가볍고 엷고 짧고 작은 것으로, 요컨대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로 가는 경향과도 궤를 같이 한다.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열풍을 일으킨 <미생>의 형식적 그리고 내용적(문화콘텐츠가 특히 그렇지만 뭐든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측면이 크다) 바탕의 하나가 바로 에피소드가 아닌가. 웹툰의 그 짧은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문화 상품의 대부분 또한 그러하다. 문화와 삶의 에피소드화가 곧 부정적 파편화가 아닐까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연체의 유장함과 간결체의 깔끔함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상 세 가지를 격언 형식으로 정리해보자.
‘당신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라. 그리하면 진정으로 만족할지니.’
‘같은 줄에 서서 앞서려 하기보다 다른 새 줄을 만들어라. 그리하면 앞설지니.’
‘긴 것은 악이고 짧은 것이 선이다. 자르고 끊어서 마디를 지어라. 그리하면 재미있어 질지니.’
에피소드화 경향 뚜렷할 듯
표정훈(88 철학) 한양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
문화·라이프스타일 경향을 전망한다는 것은 다양한 다른 영역들과의 관계 속에서 전망한다는 뜻이다. 그물을 잡아당길 때 그물코 하나만 잡아당길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한 시대, 한 시기의 문화·라이프스타일은 그 시대 경제·정치·사회·심리 등 다른 영역들과 그물망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들과 완전히 독립되어 홀로 펼쳐지는 문화·라이프스타일은 없다. 그러니 2015년 문화·라이프스타일을 전망하자면 2015년의 경제·정치·사회·심리라는 총체적인 맥락을 함께 가늠해보아야 할 터인데 필자의 재주는 그렇게 하기에 턱 없이 모자라다. 이 점을 감안하고 또한 감수하면서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자기만족(self-contentment)으로서의 행복 추구다. 자기 처지를 남들과 비교하며 남들의 기준을 따르고 남들이 가진 것을 따라 가지려는 추종적·추격적 행복 추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소비만 해도 그렇다. 명품으로 대표되는 과시 소비와 구별 짓기 소비 추구의 경향이 어느 정도 여전하긴 하지만, 소비하는 데 필수적인 재화(財貨)를 증식시킬 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제한적이다. 소득도 부동산도 예금도 주식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크고 화려하고 비싼 것을 소비하려면 더 벌어야 하지만 더 벌 길이 막막하다면 선택은 ‘나대로’, ‘나름대로’, ‘나만의’ 만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테크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족의 테크놀로지가 그에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해진다.
2000원 안팎의 ‘밥버거’로 점심을 먹고 1만 원 안팎의 디저트를 먹는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필요가 없다. 그가 디저트에서 얻는 만족감이 1만 원 값어치를 훨씬 더 넘기 때문이다. 디저트에서 1만 원 정도면 고급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반면, 1만 원짜리 점심 메뉴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자기만족 측면에서 볼 때 그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자기만족의 합리성을 추구할수록, 절대가격 수준이 중저가이면서 나름의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만족에 충실한 캐릭터를 스스로 자랑하여 뽐내는 자만(自慢)이 아니라 스스로, 나름대로 만족한다는 의미의 ‘자만족’(自滿族)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둘째, 대안적 삶(alternative life)의 추구다. 대안적 삶이라고 해서 ‘속세를 떠나는’ 수준의 전면적이고 획기적인 삶의 방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아가는 ‘제주도 이민’은 비록 삶의 무대와 방식을 크게 바꾸는 것이기는 해도, 펜션 운영이든 장사든 이윤 창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대안적 삶’의 추구라는 점에서 일종의 ‘저강도’(低强度) 대안에 속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른바 ‘땅콩집’으로 대표되는 내가 짓는 내 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선망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삶의 현장을 옮기거나 집을 짓는 ‘큰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추구하는 저강도 대안적 삶의 방식은 아주 많다. 옷이든 뭐든 가급적 새 제품은 사지 않고 대부분 중고 제품만 사는 사람, 집 사기를 단념하고 여행 다니는 것에 삶의 중심을 두는 사람, 내다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지인(知人)들이 먹기 위해 소규모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 등 찾아보면 나름의 대안적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자만족(自滿族)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김에 하나 더 만들면 바야흐로 ‘대안족’(代案族)이 늘어날 것이다.
셋째, 넓은 의미의 에피소드(episode)화 경향이다. 고대 희랍 연극에서 합창 사이에 끼워지는 대화를 에피소디온(epeisodion)이라고 한데서 유래한 에피소드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줄거리 사이에 끼어든 토막 이야기를 뜻하지만 그 뜻의 폭이 넓어서, 예컨대 드라마에서 각각 스토리의 완결성을 지닌 한 회를 일컫기도 하고 그냥 비교적 짧은 일화(逸話)를 말하기도 한다. 내러티브, 이른바 이야기 또는 서사(敍事)가 중요하다고 강조되곤 하는데 이제 그 내러티브라는 것도 길지 않은 에피소드 단위 또는 마디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것에서 가볍고 엷고 짧고 작은 것으로, 요컨대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로 가는 경향과도 궤를 같이 한다.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열풍을 일으킨 <미생>의 형식적 그리고 내용적(문화콘텐츠가 특히 그렇지만 뭐든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측면이 크다) 바탕의 하나가 바로 에피소드가 아닌가. 웹툰의 그 짧은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문화 상품의 대부분 또한 그러하다. 문화와 삶의 에피소드화가 곧 부정적 파편화가 아닐까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연체의 유장함과 간결체의 깔끔함 중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상 세 가지를 격언 형식으로 정리해보자.
‘당신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라. 그리하면 진정으로 만족할지니.’
‘같은 줄에 서서 앞서려 하기보다 다른 새 줄을 만들어라. 그리하면 앞설지니.’
‘긴 것은 악이고 짧은 것이 선이다. 자르고 끊어서 마디를 지어라. 그리하면 재미있어 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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