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서강농부들3 - 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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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2-15 10:07 조회19,6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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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
김주상(83 신방)
연봉은 매년 오르는데, 나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 어떤 기사에서 전직 엔지니어가 밝힌 귀농(歸農)의 이유다. 언젠가부터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강동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또 어떻게 살 지는 대부분 감감하다. 그래서 서강옛집이 나섰다. 문경, 평창, 아산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일구고 있는 서강농부들을 만났다. 서강농부들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귀농의 모든 것!
‘봉수산 산지기’는 어떻게 마을사람이 되었나?
충남 아산의 봉수산 기슭에 자리 잡은 송학리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곳이다. 김주상(83 신방) 동문은 이곳에서 ‘산지기’로 활동하며 토박이 대접을 받고 있다. 부여 촌놈 출신인 김 동문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은 2008~2009년 무렵이다. 2006년 송학리에 집을 얻고 학원강사로 일하다가 시골농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총무, 새마을지도자, 영농회장 등을 거치며 짧은 기간에 ‘마을사람’이 되었다. 가장 큰 계기는 2008년부터 2년간 이어진 명의이전소송이었다.
김주상 동문의 집에는 뜻 깊은 공로패가 있다. 마을재산을 지킨 공으로 송학리 주민들에게 받은 것이다. 마을재산은 일제시대에 불하받은 두 필지 5만 평의 땅을 말한다. 이땅은 그동안 4~5인의 이름으로 관리해 왔는데 2008년 마을회로 명의이전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기존 명의자 중 한 사람이 이전을 거부하며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2008년의 1심 재판에서는 마을이 지고 말았다. 마을재산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그걸 뒤집은 게 바로 김 동문이었다. 이듬해 1월 마을총무가 된 그는 밤을 새워가며 옛 장부들을 뒤진 끝에 화전민촌 시절의 수확 및 납세 자료를 찾아냈다. 마을에서는 새로운 증거로 항소했고 김 동문은 대전고법을 뻔질나게 드나든
끝에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노력은 김주상 동문이 송학리에 뿌리를 내리는 기회를 주었다. 그를 바라보는 토박이들의 인식이 달라지며 신뢰감이 높아졌다. 덕분에 김 동문은 마을 산지기가 되었다. 봉수산 호두나무를 관리하고 (임대를 통해) 고사리를 재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축사를 지어 토종닭과 흑돼지를 키우게 된 것도 주민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동문은 이제 완전히 마을에 섞였다. 손수 산길을 내는가 하면 연로한 어르신들의 논밭도 챙긴다. 상조회 멤버로 애경사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마을의 전통문화와 이웃사정에 누구보다 밝다. 그의 마을사랑은 자식들에게도 이어졌다. 진호, 지호 형제와 친구들이 대안학교 시절 만든 마을역사책〈송학골 도깨비〉가 아름다운재단 공모에 채택된 것이다.
<송학골 도깨비>에는 마을의 소소한 내력과 어르신들의 우여곡절 사연이 빼곡하다. 아이들이 직접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가운데는 이후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 그래서 고인의 자녀들에게는 이 책이 짠하고 애틋하다. 부모의 육성과 흔적이 담겼기 때문이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주민들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다.
현재 김 동문은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논농사, 밭농사는 물론이고 호두, 유정란, 흑돼지 등을 생산한다. 특히 시골농가 토종닭이 낳은 유정란은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늘고 있다. 유기농을 넘어 자연산에 가까운 호두와 산야초를 먹여서 키운 흑돼지도 인기다. 마을에서 얻은 기회를 잘 살려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송학골 작은농장 - 김주상 동문
품목 - 유정란, 흑돼지, 호두
전화 - O41-533-691O
휴대전화 - O11-9537-3579
<서강 농부들이 전하는 귀농 십계명>
1. 그냥 가라.
- 귀농은 결단이다. 머리 굴린다고 답 안 나온다. 살면서 만드는 거다.
2. 매사에 만족하라.
- 적게 벌고 적게 써라. 시골은 도시와 다르다. 대신 시골만의 기쁨이 있다.
3. 자신을 내려놓아라.
- 언제까지 잘난 체 하며 살 텐가? 남 가르치려 들지 말고 바보가 되어라.
4. 마을사람이 되어라.
- “동네사람 다 됐다”라는 말 들으면 성공이다. 내 부모 모시듯 어르신을 대하라.
5. 배우자를 섬겨라.
- 귀농은 부부 금슬을 돋운다. 최고의 응원군은 배우자다.
6. 자식은 기다려라
- 자식도 농작물과 다르지 않다. 그 생명력을 믿고 기다려라.
7. 차별화 된 아이템을 준비하라.
- 귀농 아이템은 희소가치가 있는가?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가?
8. 직거래고객 100명을 확보하라.
- 초보 농부는 직거래가 살 길이다. 단골고객 100명은 1000명의 가치가 있다.
9. 소비자를 작목반에 끌어들여라.
- 건강한 밥상은 생산자만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가 농사를 알아야 실현된다.
10. 최소 5년은 버텨라.
-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다. 5년만 버티면 인생이 편안해진다.
<아들과 감을 따는, 나무타기 선수급 김주상 동문>
<마을 뒷산 고사리밭에서>
<토종닭이 낳은 유정란을 검사하는 김주상 동문>
<마을뒷산 정자에서 기념촬영한 김주상 동문 부자와 취재온 동문들. 왼쪽부터 권경률(90 사학) 서강옛집 편집위원, 김주상 동문의 아들 김지호 군, 김주상 (83 신방) 동문, 이창섭(84 국문) 총동문회 사무국장, 표정훈(88 철학) 서강옛집 편집위원장>
<신방과 동문들을 비롯한 유정란 구매자들에게 택배로 보낼 계란을 정성스레 포장하는 김 동문>
김주상(83 신방)
연봉은 매년 오르는데, 나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전 어떤 기사에서 전직 엔지니어가 밝힌 귀농(歸農)의 이유다. 언젠가부터 귀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강동문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또 어떻게 살 지는 대부분 감감하다. 그래서 서강옛집이 나섰다. 문경, 평창, 아산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일구고 있는 서강농부들을 만났다. 서강농부들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귀농의 모든 것!
‘봉수산 산지기’는 어떻게 마을사람이 되었나?
충남 아산의 봉수산 기슭에 자리 잡은 송학리는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곳이다. 김주상(83 신방) 동문은 이곳에서 ‘산지기’로 활동하며 토박이 대접을 받고 있다. 부여 촌놈 출신인 김 동문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은 2008~2009년 무렵이다. 2006년 송학리에 집을 얻고 학원강사로 일하다가 시골농부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는 총무, 새마을지도자, 영농회장 등을 거치며 짧은 기간에 ‘마을사람’이 되었다. 가장 큰 계기는 2008년부터 2년간 이어진 명의이전소송이었다.
김주상 동문의 집에는 뜻 깊은 공로패가 있다. 마을재산을 지킨 공으로 송학리 주민들에게 받은 것이다. 마을재산은 일제시대에 불하받은 두 필지 5만 평의 땅을 말한다. 이땅은 그동안 4~5인의 이름으로 관리해 왔는데 2008년 마을회로 명의이전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기존 명의자 중 한 사람이 이전을 거부하며 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2008년의 1심 재판에서는 마을이 지고 말았다. 마을재산임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다. 그걸 뒤집은 게 바로 김 동문이었다. 이듬해 1월 마을총무가 된 그는 밤을 새워가며 옛 장부들을 뒤진 끝에 화전민촌 시절의 수확 및 납세 자료를 찾아냈다. 마을에서는 새로운 증거로 항소했고 김 동문은 대전고법을 뻔질나게 드나든
끝에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노력은 김주상 동문이 송학리에 뿌리를 내리는 기회를 주었다. 그를 바라보는 토박이들의 인식이 달라지며 신뢰감이 높아졌다. 덕분에 김 동문은 마을 산지기가 되었다. 봉수산 호두나무를 관리하고 (임대를 통해) 고사리를 재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축사를 지어 토종닭과 흑돼지를 키우게 된 것도 주민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동문은 이제 완전히 마을에 섞였다. 손수 산길을 내는가 하면 연로한 어르신들의 논밭도 챙긴다. 상조회 멤버로 애경사도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마을의 전통문화와 이웃사정에 누구보다 밝다. 그의 마을사랑은 자식들에게도 이어졌다. 진호, 지호 형제와 친구들이 대안학교 시절 만든 마을역사책〈송학골 도깨비〉가 아름다운재단 공모에 채택된 것이다.
<송학골 도깨비>에는 마을의 소소한 내력과 어르신들의 우여곡절 사연이 빼곡하다. 아이들이 직접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가운데는 이후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다. 그래서 고인의 자녀들에게는 이 책이 짠하고 애틋하다. 부모의 육성과 흔적이 담겼기 때문이다.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주민들에게 큰 선물을 준 셈이다.
현재 김 동문은 복합영농을 하고 있다. 논농사, 밭농사는 물론이고 호두, 유정란, 흑돼지 등을 생산한다. 특히 시골농가 토종닭이 낳은 유정란은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늘고 있다. 유기농을 넘어 자연산에 가까운 호두와 산야초를 먹여서 키운 흑돼지도 인기다. 마을에서 얻은 기회를 잘 살려 소중한 사람들의 건강한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송학골 작은농장 - 김주상 동문
품목 - 유정란, 흑돼지, 호두
전화 - O41-533-691O
휴대전화 - O11-9537-3579
<서강 농부들이 전하는 귀농 십계명>
1. 그냥 가라.
- 귀농은 결단이다. 머리 굴린다고 답 안 나온다. 살면서 만드는 거다.
2. 매사에 만족하라.
- 적게 벌고 적게 써라. 시골은 도시와 다르다. 대신 시골만의 기쁨이 있다.
3. 자신을 내려놓아라.
- 언제까지 잘난 체 하며 살 텐가? 남 가르치려 들지 말고 바보가 되어라.
4. 마을사람이 되어라.
- “동네사람 다 됐다”라는 말 들으면 성공이다. 내 부모 모시듯 어르신을 대하라.
5. 배우자를 섬겨라.
- 귀농은 부부 금슬을 돋운다. 최고의 응원군은 배우자다.
6. 자식은 기다려라
- 자식도 농작물과 다르지 않다. 그 생명력을 믿고 기다려라.
7. 차별화 된 아이템을 준비하라.
- 귀농 아이템은 희소가치가 있는가?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가?
8. 직거래고객 100명을 확보하라.
- 초보 농부는 직거래가 살 길이다. 단골고객 100명은 1000명의 가치가 있다.
9. 소비자를 작목반에 끌어들여라.
- 건강한 밥상은 생산자만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가 농사를 알아야 실현된다.
10. 최소 5년은 버텨라.
-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다. 5년만 버티면 인생이 편안해진다.
<아들과 감을 따는, 나무타기 선수급 김주상 동문>
<마을 뒷산 고사리밭에서>
<토종닭이 낳은 유정란을 검사하는 김주상 동문>
<마을뒷산 정자에서 기념촬영한 김주상 동문 부자와 취재온 동문들. 왼쪽부터 권경률(90 사학) 서강옛집 편집위원, 김주상 동문의 아들 김지호 군, 김주상 (83 신방) 동문, 이창섭(84 국문) 총동문회 사무국장, 표정훈(88 철학) 서강옛집 편집위원장>
<신방과 동문들을 비롯한 유정란 구매자들에게 택배로 보낼 계란을 정성스레 포장하는 김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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