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가득, 프라이스 신부 10주기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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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10-01 10:02 조회15,1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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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 위령미사가 ‘서강의 진정성이 오롯하게 담긴 모습’으로 거행됐습니다.
9월 28일 오전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안 예수회 사제 묘지에는 ‘화요가족’을 비롯한 동문 21명이 프라이스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위령미사를 드리려 모였습니다. 프라이스 신부(Basil M. Price. S.J. 한국명 배바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사랑하고, 서강을 반석에 올린 설립자 중 한 명입니다. 1923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 홀트 카운티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했고, 1957년 34세에 서강대학 설립 임무를 띠고 우리나라에 와 사학과 교수, 산업문제연구소 이사장, 예수회 한국지부장, 모교 총장보(補) 등을 맡았습니다. 서강대 발전에 헌신했으며, 대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4년 9월 29일 선종했습니다.
화요가족은 프라이스 신부를 따르는 동문들이 1976년 10월 결성한 모임입니다. 주로 화요일에 모여 화요가족(약칭 火家會)으로 불립니다. 회장은 정훈(70 신방) 동문이, 총무는 문영주(76 이화여대 심리학과) 씨가 맡아 40년 가까이 ‘건강한 모임’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위령미사는 김정택(71 철학) 재단이사장 신부와 염영섭 신부가 묘역 가운데 마련된 야외 제대(祭臺)에서 집전했습니다. 염 신부는 강론에서 프라이스 신부를 추억했습니다. “서강 창립자 동상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당시, 역사학자였던 신부님이 명쾌하게 정리해주셨기에 논란을 잠재웠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신부님은 처음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기에 개척자였지만 외부로 진출해 이름을 떨치기보다 학교 안에 산업문제연구소를 튼실히 세워 노동자 교육과 모임결성을 뒷받침했고, 마지막까지 연구소 건물 철거에 반대하셨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회상했습니다.
또 “미국회사의 기부금을 얻어 은평구 응암동에 사는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과 고아들의 학업을 도왔으며, 종이뒷면까지 사용하는 검박한 삶을 사셨고, 선물을 받으면 ‘잘 쓰겠다’고 하신 뒤 어려운 사람에게 건네셨다. 삶에서 올바름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연로한 뒤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 언덕배기가 힘에 부칠 때, BMW 같은 튼튼한 차가 있었으면 하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석한 동문들은 ‘신자들의 기도’를 통해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벗으로 서강대 발전을 위해 오롯이 일생을 바친 신부님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서강대가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미사를 마친 화요가족은 준비해온 음식으로 성찬을 차리고, 향을 피운 뒤 생전에 좋아하던 베일리스 술로 제주(祭酒)를 올리고 차례차례 산소에 절을 했습니다.
10주기 성묘에는 △김정택(71 철학) 신부 △오인숙(60 영문) 성공회 수녀사제 △염영섭 신부 △하문자(60 사학) △김미자(64 국문) △정훈(70 신방) △장의균(70 신방) 부부 △진영준(76 철학) △문영주(76 이화여대 심리학과) △현경자(77 영문) △김은래(77 영문) 부부 △이용규(언론대학원 6기) △남궁찬(언론대학원 6기) △정명숙(83 불문) △이창섭(84 국문) △윤영주(85 영문) △김은희(88 사학) △이경진(90 종교) △조성원(90 사학) 동문 등 21명이 참석했습니다.
일행은 묘역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오찬을 들었습니다. 각자 정성 들여 만든 연잎밥, 잡곡밥, 김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송편, 계란말이, 불고기, 고기완자, 해물완자, 닭강정, 케이준 치킨샐러드, 물김치, 파김치, 채소, 쌈 등을 모으니 금새 진수성찬을 이뤘습니다. 맛있는 점심에 구수한 입담이 오가는, 명화에서나 볼 법한 '풀밭 위의 식사'였습니다.
커피와 과일을 먹으며 진행한 식후행사는, 화요가족의 진가(眞價)를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이 가득했습니다. 프라이스 신부와의 인연, 추억, 에피소드를 각자 짧은 글로 작성해 돌려 읽는 ‘10주기 특별미션’을 실행했습니다. 성묘에 오지 못한 동문들의 글도 모였습니다.
“수도자로서 청빈한 삶을 가장 훌륭하게 살아오신 신부님은 삶의 멘토다”(김정택 신부)
“신부님은 ‘개종하라’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 십계명 중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는 7번째 계명을 보고 프라이스 신부님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오인숙 사제수녀)
“내게 신부님은 모서리 자른 메모장이다. 손안에 들어갈 정도의 일년치 달력노트였는데, 날짜가 지난 것은 모서리를 잘라놓아 바로 오늘로 펼 수 있었다. 이 모서리 자른 메모장은 옛날을 정확히 추억했다. 컴퓨터를 손안에 들고 다니는 요즘에도 신부님의 모서리 자른 메모장의 정확도를 따르지 못할 것 같다”(오인환, 70 화학)
“신부님은 하늘이 제게 주신 가장 커다란 선물이다. 화요일 저녁 7시, 사무실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기다리다 반기시던 그 모습, 그 목소리, 그 미소는 한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 자체였다”(문영주)
“스물여덟 결혼하던 해 갑작스레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신부님은 저희집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늘 살뜰히 안부를 챙겨주셨고, 사춘기로 힘들어 할 땐 위로를 해주셨어요. 제게 신부님은 사제, 스승을 넘어선 친정아버지셨습니다”(김은래)
“신부님은 나를 항상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거울이다. 물을 낭비하지 않는지, 이면지로 사용할 종이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지, 남에게 주어도 되는 물건을 쌓아두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도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현경자)
“낡은 크레도스 차를 운전할 때 조수석에서 기뻐하시던 신부님 모습이 떠오른다. 크레도스가 사도신경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가르쳐주셨다. 방한한 교황님도 영혼이라는 뜻의 소울 차를 타셨다. 검소하고 겸손한 두 분은 정말 닮았다”(남궁찬)
“compulsory(의무의, 필수의) 뜻을 설명하고자 셔츠 윗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나야말로 compulsory smoker라며 단어뜻을 각인시켜주신 신부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임정훈, 86 컴퓨터)
“신부님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첫 인연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주시기만 하셨다. 한국에 들어가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든든한 친정식구 같은 화요가족을 만들어주셨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셨다”(신현선, 87 컴퓨터)
“20~30대 빛나는 시간 10년 청춘의 길잡이였고, 멘토였다. 저녁식사로 바싹 구운 토스트 한쪽만 드셨는데,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이유가 탄 음식 때문인데 그때 드시지 못하게 말렸어야 했는데 자책하던 일이 떠오른다”(조성원)
“95년 서강펠로우 4명이 미국대사관 앞에서 비자를 발급받다가 1명이 출국 임박해서도 비자가 나오지 않자, 신부님이 학생 손목을 잡고 택시를 잡아타 미국대사관으로 달려가셨다고 들었다. 노구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걷기에도 불편한 신부님이 뛰어가시는 장면을 상상할 때마다 울림을 느낀다”(이현정, 92 영문)
추억의 글 작성과 낭독을 제안한 현경자 동문은 “화요가족 한 명 한 명의 기억 속에 살아계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모아보니 이렇게 더 큰 모습으로 다가오신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문자 동문은 “신부님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났는데, 늘 받기만 했고 해드린 게 없어 신부님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미국 오마하 시에 갔을 때 신부님의 동생을 만난 기억이 새롭다”며 고인을 회고했습니다. 하 동문은 이수조(60 경제) 동문과 캠퍼스커플을 이뤄 이경진 동문을 낳았고 이날 모녀가 함께 참석했습니다. 김은희 동문은 “화요가족 아닌 동문들이 참여한 것에 감사하며, 더욱 개방된 모습의 화요가족은 신부님도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집행부를 대표해서 문영주 총무는 “신부님처럼 마음이 소박한 분들이 함께 하는 이 모임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란다”고 말했고, 정훈 회장은 “신부님은 아무리 바쁘셔도 학생(사람)이 찾아오면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찾아온 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눈을 맞추면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셨다”면서 “소통하려면 귀담아 듣는 일부터 해야 하는데 신부님이 모범을 보이셨다”고 회고했습니다.
장의균 동문은 프라이스 신부와 절친했던 정일우 신부의 인연을 소개했습니다. “군 휴가를 나와서 명동성당 보좌신부로 있던 정 신부를 찾아갔는데, 사무실 벽에 애린여기(愛隣如己,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라) 휘호가 적힌 편액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휘호가 왜린여사(倭隣如巳, 일본은 이웃이지만 뱀과 같도다)로 보였다. 그래서 속으로 푸른 눈의 외국신부들도 나라 돌아가는 사정과 동북아 정세를 이해하고 있구나 여기면서 이런 생각을 건네자 정 신부가 껄껄 웃으면서 편액을 가져가 학생운동하는 데 보태라고 주셨다. 정 신부는 ‘하느님을 몰라도 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고 회상했습니다.
한편 화요가족은 이날 염영섭 신부와 오인숙 사제수녀께 각각 100만원을 후원하며, 두 사제가 봉사하는 일(제3세계 및 새터민 돕기)을 도왔습니다. 손글씨로 ‘염 신부님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실행에 프라이스 신부님의 오랜 뜻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수녀사제님의 싱그러운 젊음이 힘들어 하는 이웃들을 보듬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적은 봉투를 건넸습니다.
마침기도는 김정택 이사장신부가 맡아 “신부님이 바라던 삶이 화요가족으로 이어지고 이웃에 전해지고 있다”며 “오늘 빙그레 웃는 신부님의 얼굴이 떠오르고, 남을 돕는 삶을 가슴에 새기면서 늘 감사하게 살아가게 도와주시라”고 말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끝으로 염영섭 신부의 안내로 예수회 사제묘역에 안장된 채준호(78 국문) 초대 예수회 한국관구장 신부를 비롯한 사제 15명의 무덤을 일일이 둘러보며 헌화하고 고인들을 추모했습니다. 하문자, 김미자 동문은 선종한 사제들의 생전 모습과 인생 역정을 일일이 소개해주었습니다.
<추모 위령미사를 집전하는 김정택, 염영섭 신부. 남궁찬 동문(일어선 사람)이 미사자료를 인쇄해왔다>
<영성체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김정택 신부, 염영섭 신부, 오인숙 사제수녀, 조성원 동문>
<프라이스 신부 산소에 제주를 올리고 절하는 모습>
<왼쪽부터 김미자, 하문자 동문과 오인숙 사제수녀>
<진영준 동문(왼쪽)과 지인, 장의균 동문 부부(오른쪽)>
<산소 앞에 돗자리를 깔아 마련한 성찬. '풀밭 위의 식사'>
<식사를 마치고 진행한 특별행사. 프라이스 신부와 맺은 추억을 글로 써 돌아가며 읽는 낭독의 시간. 이경진 동문이 화요가족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모습>
<화요가족이 염영섭 신부와 오인숙 사제수녀께 드리는 '작은 정성'>
<마침기도에 앞서 소회를 말하는 김정택 신부>
<용인 천주교 공원 안에 마련된 예수회 묘역을 둘러보며 선종한 사제들을 추모하는 일행>
<프라이스 신부 산소 앞에 모여 고인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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