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총동문회 50년, 그 사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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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5-28 11:33 조회13,6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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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50주년에 돌아보는 50년 발자취
1964년 2월 창립 이후 다사다난 속에 꾸준히 발전해온 총동문회 50년 발자취를 주요 계기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총동문회 자세한 역사는 오는 6월 14일 기념식에서 공개, 배포될 책자에 수록되어 있다.<편집자>
독자적 활동 기반 마련에 힘쓴 60, 70년대
총동문회 역사는 첫 출발 1964년, 이후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시기, 1970년대 말~1987년, 1988년~2003년, 그리고 2004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시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가 기(起)라면 세 번째 시기는 승(承) 네 번째, 다섯 번째 시기가 전(轉)에 해당한다. 70년대 중후반까지 총동문회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동문 숫자도 많지 않았다. 재정 기반도 취약했다. 1973년 10월부터 ‘서강옛집’ 발간 지속성 확보와 동문회 운영 안정화를 위해 종신회비제를 도입하고, 1976년도 1학기부터 등록금과 함께 매 학기 동문회비를 받기 시작하여 ‘동문회의 독립적 활동 기반’을 다졌다.
<1982년 10월 열린 첫 번째 서강가족잔치>
1982년 10월에는 처음으로 ‘서강가족잔치’, 즉 홈커밍데이 행사가 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졌다. 1984년 7월에는 동문회원 자격을 대학원 졸업생까지 확대하는 안이 최종 확정됐다. 격월간 ‘서강옛집’을 월간으로 증간키로 한 것도 이 때였으며, 1985년 5월에는 우리나라 대학 동문회 가운데 처음으로 동문회 업무 전산화 시대를 열었다.
서강동문장학회 출범(1986), 동문회관 준공(2002)
80년대 중반은 동문회 역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서강동문장학회가 탄생한 것이다. 1985년 4월 정기총회에서 설립 추진이 결정된 이후 많은 동문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재단법인 서강동문장학회’가 1986년 9월 22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1985년 6월 모금 시작 후 1년 만에 약 1억 원, 2년 만에 약 2억 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1989년 총동문회는 동문록 발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9년 10월 중순까지 전체 동문 1만 5000명 가운데 1만 2000명의 현황을 파악했다. 현황 파악 80%는 대학 동문회들 중 초유의 일이었다.
1990년 4월 17일에는 개교 30주년 모교 방문의 날(홈커밍데이) 행사에서 알바트로스 상징탑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1990년에는 총동문회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업, 자랑스런 서강인상’이 시작되었다. 자랑스런 서강인 상은 명실상부하게 서강 최고의 영예로 자리 잡아 갔다. 한편 1991년 1월 17일 공표된 신년사에서 당시 이우진 회장은 동문장학회관 건립 의지를 밝혔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착공 2년 만인 2002년 10월 31일, 발의한 지 10년 만에 동문회관이 완공되었고 12월 23일 공식이 열렸다.
2005 신년하례식의 뜨거웠던 참여 열기
2004년 하반기부터 동문회는 대대적인 홈페이지 개편에 착수했다. 동문회 보유 정보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정리하면서 2005년 2월부터 전혀 새로운 홈페이지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2005년 초에는 많은 동문들이 깜짝 놀란 일이 일어났다. 1월 10일 서울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신년하례식에 동문 1300여 명이 참석했던 것. 참석 예상 동문 숫자의 3배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한편 1986년 1억 원 규모로 설립되어 20주년을 앞둔 서강동문장학회는 2005년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2005년도 2학기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재학생 60명에게 9702만 2000원을 전달했다. 이후 총동문회는 장학회 발전 방향을 기명(記名) 장학금 활성화로 정했다. 이에 따라 2010년 개교 50주년을 뜻 깊게 기념하는 차원에서 ‘후배사랑 장학금 50개 만들기’를 추진해 성과를 거두었다.
2007년 1월 25일에는 작지만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서강대학교 동문회’가 ‘서강대학교 총동문회’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동문회원 숫자는 2007년 당시 5만 3805명 규모였다. 수없이 많은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 큰 강을 이루었으니, 동문회가 큰 강물을 다 담을만한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의 표현이 바로 ‘총동문회’라는 이름이었다.
서로를 믿고 미래를 소망하며 사랑을 실천해 온 50년
2007년 2월 27일 개교 50주년을 향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개교 50주년 기념와인 선정식을 개최한 날이었다. 기념 와인 판매수익금은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장학금으로 조성됐고 지금도 장학금 조성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2010년 4월 17일 모교 교정에서 역사적인 개교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2010년 기준 동문 숫자는 처음으로 6만 명을 넘어 6만 1410명을 기록했다. 이제 서강대학교 총동문회가 5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미래 50년을 그려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 했다. 동문들은 서로를 진실로 믿었고 서강을 굳게 믿었다. 모교와 동문회가 발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믿음과 소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교에 대한 사랑, 후배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래서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역사는 사랑의 역사다. 모교 반세기와 총동문회 반세기를 넘어 100년 서강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역사는 이미 시작됐다.
글=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1964년 2월 창립 이후 다사다난 속에 꾸준히 발전해온 총동문회 50년 발자취를 주요 계기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총동문회 자세한 역사는 오는 6월 14일 기념식에서 공개, 배포될 책자에 수록되어 있다.<편집자>
독자적 활동 기반 마련에 힘쓴 60, 70년대
총동문회 역사는 첫 출발 1964년, 이후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시기, 1970년대 말~1987년, 1988년~2003년, 그리고 2004년부터 최근에 이르는 시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기가 기(起)라면 세 번째 시기는 승(承) 네 번째, 다섯 번째 시기가 전(轉)에 해당한다. 70년대 중후반까지 총동문회는 기반 마련에 힘썼다. 동문 숫자도 많지 않았다. 재정 기반도 취약했다. 1973년 10월부터 ‘서강옛집’ 발간 지속성 확보와 동문회 운영 안정화를 위해 종신회비제를 도입하고, 1976년도 1학기부터 등록금과 함께 매 학기 동문회비를 받기 시작하여 ‘동문회의 독립적 활동 기반’을 다졌다.
<1982년 10월 열린 첫 번째 서강가족잔치>
1982년 10월에는 처음으로 ‘서강가족잔치’, 즉 홈커밍데이 행사가 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졌다. 1984년 7월에는 동문회원 자격을 대학원 졸업생까지 확대하는 안이 최종 확정됐다. 격월간 ‘서강옛집’을 월간으로 증간키로 한 것도 이 때였으며, 1985년 5월에는 우리나라 대학 동문회 가운데 처음으로 동문회 업무 전산화 시대를 열었다.
서강동문장학회 출범(1986), 동문회관 준공(2002)
80년대 중반은 동문회 역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서강동문장학회가 탄생한 것이다. 1985년 4월 정기총회에서 설립 추진이 결정된 이후 많은 동문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재단법인 서강동문장학회’가 1986년 9월 22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1985년 6월 모금 시작 후 1년 만에 약 1억 원, 2년 만에 약 2억 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1989년 총동문회는 동문록 발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9년 10월 중순까지 전체 동문 1만 5000명 가운데 1만 2000명의 현황을 파악했다. 현황 파악 80%는 대학 동문회들 중 초유의 일이었다.
1990년 4월 17일에는 개교 30주년 모교 방문의 날(홈커밍데이) 행사에서 알바트로스 상징탑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1990년에는 총동문회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업, 자랑스런 서강인상’이 시작되었다. 자랑스런 서강인 상은 명실상부하게 서강 최고의 영예로 자리 잡아 갔다. 한편 1991년 1월 17일 공표된 신년사에서 당시 이우진 회장은 동문장학회관 건립 의지를 밝혔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착공 2년 만인 2002년 10월 31일, 발의한 지 10년 만에 동문회관이 완공되었고 12월 23일 공식이 열렸다.
2005 신년하례식의 뜨거웠던 참여 열기
2004년 하반기부터 동문회는 대대적인 홈페이지 개편에 착수했다. 동문회 보유 정보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정리하면서 2005년 2월부터 전혀 새로운 홈페이지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2005년 초에는 많은 동문들이 깜짝 놀란 일이 일어났다. 1월 10일 서울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신년하례식에 동문 1300여 명이 참석했던 것. 참석 예상 동문 숫자의 3배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한편 1986년 1억 원 규모로 설립되어 20주년을 앞둔 서강동문장학회는 2005년 어느 해보다 풍성했다. 2005년도 2학기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재학생 60명에게 9702만 2000원을 전달했다. 이후 총동문회는 장학회 발전 방향을 기명(記名) 장학금 활성화로 정했다. 이에 따라 2010년 개교 50주년을 뜻 깊게 기념하는 차원에서 ‘후배사랑 장학금 50개 만들기’를 추진해 성과를 거두었다.
2007년 1월 25일에는 작지만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서강대학교 동문회’가 ‘서강대학교 총동문회’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이다. 동문회원 숫자는 2007년 당시 5만 3805명 규모였다. 수없이 많은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 큰 강을 이루었으니, 동문회가 큰 강물을 다 담을만한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의 표현이 바로 ‘총동문회’라는 이름이었다.
서로를 믿고 미래를 소망하며 사랑을 실천해 온 50년
2007년 2월 27일 개교 50주년을 향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개교 50주년 기념와인 선정식을 개최한 날이었다. 기념 와인 판매수익금은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장학금으로 조성됐고 지금도 장학금 조성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2010년 4월 17일 모교 교정에서 역사적인 개교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2010년 기준 동문 숫자는 처음으로 6만 명을 넘어 6만 1410명을 기록했다. 이제 서강대학교 총동문회가 5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50년을 돌아보고 미래 50년을 그려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사랑이 제일이라 했다. 동문들은 서로를 진실로 믿었고 서강을 굳게 믿었다. 모교와 동문회가 발전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믿음과 소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모교에 대한 사랑, 후배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그래서 서강대학교 총동문회 역사는 사랑의 역사다. 모교 반세기와 총동문회 반세기를 넘어 100년 서강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역사는 이미 시작됐다.
글=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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