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79 철학) 철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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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2-07 15:40 조회8,5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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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말새몸짓 이사장·기본학교 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걷는다, 걸어야만 한다. 이 세상에 내던져진 이상 누구나 걷고, 걸을 수밖에 없다.”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걷는 사람’과 함께 남긴 말이다.
여기, 끊임없이 걸어가며 질문하는 철학자가 있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건명원 초대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함평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에서 새로운 배움의 장을 열어가고 있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다.
Q. 함평에서 지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글 쓰고, 산책하고, 묵상하고, 글 읽고, 특별한 낙이 있다면 세 달 전 집 안에 은목서라는 나무를 하나 심었는데, 그 나무의 향을 누리는 것이었으며, 뒤뜰을 정원으로 가꿔나갈 꿈에 부풀어있는 것이 요즘의 가장 분명한 행복이라 할 수 있겠네요.
Q. ‘왜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에 관한 질문보다, 이 물음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스무 살 때 꿈은 ‘죽기 전에 내가 왜 이 별에 왔다 가는지를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호한 꿈속에서 살다가 대학교수를 그만두기 1년 전부터 제가 나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명히 정해졌습니다.
“이 별에서 삶의 가치를 구현한다면, 대한민국 안에서 해야겠다. 나의 삶이 영위되는 가장 큰 공동체, 대한민국을 선도국으로 도약시키고 싶다.”
내가 사는 가장 큰 공동체인 이 나라를 지식 수입국에서 지식 생산국으로,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제 안에서 솟아났습니다. 꿈이 분명했기에 교수를 그만두는 것도, 기본학교를 세우는 것도 모두 망설임 없이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제 꿈을 이루는 디딤돌들입니다.
Q. 사단법인 ‘새말새몸짓’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립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한계에 도달한 생각과 태도들, 즉 ‘헌말헌몸짓’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태도인 ‘새말새몸짓’으로 한 단계 도약하자는 의미로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을 설립했습니다.
Q. 왜 꼭 대한민국 안에서 삶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시나요?
저는 세계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세계시민은 힙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매우 피상적이죠. 대한민국은 제 삶이 영위되는 공동체 중 가장 큰 공동체예요. 정치적인 자의식 없이 피상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제게 있어 구체성의 가장 큰 범위는 대한민국입니다.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의미하는 ‘아포리아(aporia)’라는 말이 있죠. 제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아포리아는 추격국가이자, 타국에서 생각을 받아서 살아가는 지식 수입국에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건너가야 할 때입니다.
Q. 철학과 관련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철학적 사유의 목적은 무엇이며, 지식인이란 누구인가요?
철학을 포함해서 모든 지식이나 학(學)은 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들입니다. 철학은 그 가운데 가장 추상적인(높은) 높이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죠. 철학은 공동체 전체가 직면한 한계, 즉 아포리아를 해결하려는 헌신에서 출현합니다.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은 그 아픔을 치료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거기에 헌신합니다. 공동체의 운명은 그런 지식인의 유무가 좌우합니다.
Q.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세상’이란 무엇인가요?
이 세계는 관계와 맥락, 네트워크들의 결합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인식하는 가치와 언어, 사물들의 존재 방식 자체가 관계입니다.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고 하죠, 관계 속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러한 관계론적 태도를 지니고 세상과 소통하고, 사물을 바라보세요. 이전과는 다르게 보일 겁니다. 그리고 탁월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선의 높이”입니다. 시선의 높이가 높을수록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능력과 영향력이 커집니다. 높은 시선으로 세계와 관계하십시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입니다.
세상은 대답의 결과가 아닌 질문의 결과로 존재합니다. 대답은 멈춰있는 상태에서 나오고, 질문은 이곳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건너가자’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해야 앞섭니다.
Q. 그렇다면,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는 건 무엇인가요?
높은 시선은 크게 세 가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는 야망, 또 하나는 지식욕, 다른 또 하나는 운동입니다. 여기서 야망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 직업을 통해서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 자신 안에서 진실하게 솟아나는 갈망이 야망입니다. 야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식욕이 생기고, 쌓은 지식은 야망에 의해서 지혜로 바뀝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자신을 중심에 놓고 나아가게 하는 내적인 동력은 운동으로 길러집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갈망하는지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물으십시오.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자신을 자신답게 만듭니다. 자신이 자신다운 사람만이 탁월해집니다.
Q.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롭다’는 말은 ‘지식이 많다’와 동치될 수 있을까요? 지혜와 지식의 차이가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혜는 다시 말해 지식의 승화이자 적용력입니다. 지혜보다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이 없는 지혜는 경박한 신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은 완고하기까지 해서, 때론 타인의 어떠한 말도 적대시합니다. 지식보다 지혜가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은 믿지 마십시오, 사기꾼일 확률이 높습니다(웃음). 지혜보다는 지식을 구하는 데에 집중하십시오. 야망이 있으면, 그 지식이 자연스럽게 지혜로 승화합니다. 결국 또 야망과 지식과 운동이네요.
Q.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대인에게 마음의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몸의 건강입니다. 요즘 신체의 건강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덕체보다 ‘체덕지’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으로 몸을 다스리는 것보다, 몸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인문과학예술학교 ‘건명원’의 초대원장을 맡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조예가 깊진 않아요. 그냥 좋아하죠. 문화예술 역시 철학과 동등한 차원, 혹은 더 높은 차원에서 지적인 활동입니다. 철학적 사고 능력만큼 예술의 감상 능력도 중요합니다. 감각적인 것에서 멀어질수록 더 지적인 활동이 되는데, 철학이나 예술은 본능적인 감각 혹은 쾌락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예술을 통해서 이전에 몰랐던 진실의 영역을 넓혀가고, 그 진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죠. 예술 또한 지적인 활동이기에, 예술을 진실하게 느끼고자 한다면 해당 예술 작품에 관한 최소한의 지적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미술로 예를 들어 들어볼까요. 원근법이 나오면서 인간은 더 진실에 가까워지죠. 원근법이 없이는 표현할 수 없었던 진실을 원근법으로는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큐비즘으로는 2차원 평면에다 3차원의 입체성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죠. 예술은 다 진실에 더 가까워가는 인간의 지적 여정입니다.
요즘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를 자주 듣습니다. ‘짐노페디’는 용맹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스파르타 젊은이들의 원시적 축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음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축제곡보다는 명상곡에 가깝습니다. 회화의 미니멀리즘과 큐비즘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알고 음악을 들으면, 아예 모르는 상태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것이 느껴질 겁니다. 곡의 제목과 음악적 표현 사이의 격차를 숙고하는 것, 그 거리의 의미를 지적으로 탐색하는 것이 높은 차원의 예술적 탐험입니다.
Q. 교수님께서 정치와 관련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정치’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요?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에 관한 교수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올바른 정치가 따로 정해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장치이자 도구입니다. 문제를 잘 해결하는 효율적인 정치와 비효율적인 정치가 존재할 뿐, 옳고 그름의 측면에서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은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는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피우지 못한 꽃이라고 해서, 꽃이 아닌 것은 아니죠. 정치는 한 나라가 피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되려 정치를 부정적으로 보고 외면하려는 태도가 우리 사회를 더 큰 나락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끄는 순간, 당신은 당신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플라톤의 이 말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현재 많은 학생들이 기성정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존재했던 내내 학생들과 기성정치의 대립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과거 대학에서 사회의 정치를 비판한 학생들이 사회로 나갔음에도 왜 대한민국의 정치는 나아지지 않았는가?”가 제가 던지고 싶은 근본적인 물음 중 하나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분명한 사람은 기성정치에 쉽게 물들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죠.
학생들이 비판하는 여의도 정치를 학생 사회가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몇십 년 전 기득권의 부패를 타도해야 한다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그들은 부패한 기득권이 되지 않았나. 함께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Q. 우리나라의 아포리아가 치유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점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는 정치의 실패라기보다는 교육의 실패입니다. 모든 것을 하기에 앞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간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국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고,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이들이 사회에 계속해서 공급되다 보니 국가의 기반도 자연스럽게 위태로워지는 것이죠.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적인 것들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수치심을 아는 것, 염치를 아는 것, 서로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 나 자신을 아는 것.
Q.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기본학교’ 또한 어떠한 마음으로 설립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본학교는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질을 양성하는 기관입니다. 다음으로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이 튼튼한 인재들을 기본학교에서 양성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지식 습득부터 글쓰기, 운동 등을 함께 하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철학의 비율은 60% 정도이고, 산업혁명이나 블록체인 등 첨단 기술의 문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함께 새벽 산을 오르며 일출을 보고, 육체를 단련하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본학교에서 공부하는 6개월 동안 많은 것이 바뀝니다.
Q. 새벽 등산을 하기 위해서라도, 함평에 꼭 방문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무엇일까요?
제 후배들인 학생들에게는 자유롭게 공부하고 원 없이 꿈꾸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서강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유로운 기풍이었습니다. 자신을 궁금해하세요.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사랑하십시오.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을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가야 하는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가며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이런 과정에서라야 큰 성취도 이뤄집니다. 삶은 설치된 궤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징검다리를 놓아가며 사는 것입니다.
이나윤(22 신방)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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