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문 특집-70~90년대 4인 유쾌한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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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9-10 16:11 조회26,5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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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은 시대에 앞서 여학생을 존중하고 배려했죠”
여대생, 여학우, 여학생. 같은 듯 다른 의미를 지닌 이 호칭은 여자대학생이 드물던 60, 70년대, 민주화운동 확산과 남녀평등 의식이 본격화되던 정치적 격변기 80년대, 그리고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던 90년대 이후의 여자대학생을 가리는 호칭이다. 남성의 직업이 화가, 과학자, 의사 등으로 표현될 때 여성의 경우 앞에 하나가 더 붙어 여류화가, 여성과학자, 여의사로 불린 것처럼 굳이 성(性)이 구분되는데다 사회현상이나 정치적인 변화까지 반영한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여자대학생의 호칭이 변해온 것처럼 사회의 축소판 중 하나인 서강에서 시대마다 여학생은 어떤 존재였고 어떤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보냈을까. 각 시대별로 서강에 다녔던 한징택(75 생명, 모교 생명과학과 교수) 김현경(83 사회,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박현주(92 영문, 교육전문가) 동문의 눈을 통해 서강 여학생들의 학창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사회 생각보다 전체 동문 중 여학생의 비율이 작아서 놀랐습니다. 소수였기에 대학생활에서 주눅 들진 않았을까요?
한징택(이하 한) 오히려 남학생들이 주눅 들었던 것 같아요. 고교평준화 이전이라 여학생들은 대부분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성적보다는 서강에 매력을 느끼고 기대하며 선택한 곳이라 매우 당당했었지요. 물론 대학시절에도 여학생들이 공부도 잘했고 서강대생이라는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한징택(75 생명)>
사회 대학 입학성적이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지만 교수님께서 입학하시던 1975년까지 70년대 학번 수석입학자들의 상당수가 여학생이더군요. 수석 입학자인 전성빈(71 영문), 장정숙(72 화학), 조화준(75 신방) 모두 여학생입니다.
김현경(이하 김)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동기 남학생들이 여학생 앞에서 많이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캠퍼스 커플일 경우에도 동기보다는 거의 선배들과 이루어진 걸 보면요.
박현주(이하 박) 제 친구들을 만나러 막걸리대로 유명한 K모 대학에 가면 느꼈던 건데, 그 학교 남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상남자’, ‘마초’ 같은 분위기를 많이 풍겼어요. 서강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학교에 가면 매우 당황스러웠을 정도예요.
김 예수회 교육기관인 학교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음주가 빈번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서강은 축제 때 외에는 교내 음주가 금지되었던 것도 마초적인 분위기를 누르는데 기여했고 신부님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어요.
한 물론 차별을 느끼는 때도 있었어요. 남학생들은 교련이나 병영집체훈련 같은 걸 하는데 여학생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받아도 할 말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학생회 조직이 군사조직인 학도호국단이라 여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학생부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김 저희 때는 학도호국단에서 학생회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요. 학생회 내에서 남자는 ‘정(正)’ 여자는 ‘부(副)’를 맡아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차별을 느꼈다면 그 부분은 서강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차이거나 사회적 인식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박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협의회가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없는 듯해도 총학생회 내에서 여학생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었던 것 같아요. 학생회비는 남학생과 동일하게 납부하는데 여학생협의회 예산이 적어서 일일찻집을 열던가 하여 예산을 충당했던 기억이 나요. 여학생 조직이 마치 들러리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김현경(83 사회)>
한 그래도 서강은 상대적으로 여학생을 존중해주는 문화였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역차별했다고나 할까요. 대표적인 게 도서관 내 여학생 휴게실이었는데 그곳은 쉬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그곳에 가면 전교의 여학생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교내 모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여학생 아지트였지요.
김 저희 때는 X관에도 휴게실이 있었어요. 여학생 화장실을 일종의 파우더룸으로 배려했다고 할까요. 요즘이야 흔한 일이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도였다고 봅니다. 남학생 화장실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화장실에 휴지를 비치한 일은 다른 학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배려였어요. 제가 사회학과 학생이라 주로 RA관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건물에 여자화장실이 4층 한 곳 밖에 없었어요. 학교 측에서 이 사실을 알고 1층 화장실 중 한 곳을 여자화장실로 바꿔주었는데요, 기존에 안 되던 것을 바꿔서라도 여학생들을 편리하게 해주려했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게 서강이라고 봅니다.
박 그 부분은 저도 동감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구 출신에 1남3녀 집안의 딸이에요. 그래서 늘 남자보다 밀리는 상황이 싫었고, 여자대학에는 정말 가기 싫었어요. 언니 추천으로 서강에 오게 되었는데 재미있게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무척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한 문제는 서강에서 차별을 별로 못 느끼고 당당하게 다녔던 게 오히려 사회 생활할 땐 장애로 다가왔다는 점이에요. 사회도 서강과 같을 거라 착각했던 거죠. 사회는 냉정했거든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남자인데 그 밑에서 일하며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준비가 안 되었던 것 이에요. 사회는 아직도 여성 차별이 심했는데 그걸 몰랐던거죠. 서강은 여성을 배려해도 사회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정명숙(83 불문)>
박 서강에서의 학창생활이 만족스럽긴 했지만 저도 점차 고학년이 되면서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생활동에서 능동적이고 거리낌이 없었는데 서강에서는 그러질 못했어요. 여자대학에선 성별에 따라 ‘정(正)’, ‘부(副)’를 누가 맡느냐의 고민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김 그 부분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지 우리 학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남녀공학에서 공부한 덕분에 사회 적응이 쉬웠고 남자 동료들과 일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어요. 남성에 대한 이해에 서강교육이 심어준 사람에 대한 ‘배려’ ‘존중’ 등의 가치가 더해져서 사회 생활하는데 큰 힘이 되었어요.
박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우수했지만 졸업후 동문회는 남자 중심이 되더군요. 여자 동문들은 동문회에도 잘 안 나오고 동문회 활동에도 소극적이더라고요. 남녀공학이라 그나마 동문회가 유지되지만 여자대학은 동문회가 잘 안된다더라고요. 대신 끼리끼리의 소모임은 잘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그런 걸 보면 ‘차별’ 보다는 ‘다름’의문제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회 과거 남성, 여성을 구분할 때의 ‘성’은 생물학적 의미의 성(Sex)이었습니다. 신체구조에 따라 사람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요소로 가르는 것이었지요. 여기에는 힘있는 남성과 약한 여성이라는 성적 차별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들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인 젠더(gender)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등한 남녀 관계를 내포하는 말인데요. 캠퍼스에서 여자대학생을 대하는 시각도 시대에 맞춰 생물학적 의미의 여성에서 사회적 의미의 여성으로 점차 변해왔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강은 이미 시대에 앞서서 젠더의 측면에서 여학생을 대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현주(92 영문)>
여학우들의 학창시절 이모저모 1 - 옷차림・호칭
한징택 학창 시절 여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치마 입고 옆구리에 교재 끼고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고 다녔어요. 특히 영문과 여학생을 비롯해 문과대 여학생들이 대부분 그런 모습이었지요. 저는 이공대 학생이라 실험도 많고 또 성격도 털털해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오히려 눈에 많이 띄는 편이었어요.
김현경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치마 입으면 오히려 화제였어요. “쟤 왜 저래? 무슨 일 있대?”하며 뒤에서 수군대거나 “너 무슨 일 생겼니?”가 일반적인 반응이었지요.
박현주 우리 때는 누가 뭘 입든 신경 쓰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인근 대학교 학생이라면 평범했을 차림임에도 서강에서는 멋을 부렸다고 평가받는 정도였어요.
김 서강의 여학생들은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화장도 하지 않았고 대체로 수수한 편이었어요.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이기에 종교적인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
한 박 그 부분에는 동감이에요. 시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서강의 여학생들은 정말 동시대 다른 대학교 여학생들에 비해 수수해요.
한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친하고 싶은 남자 선배에겐 ‘형’, 나머지는 ‘씨’라는 호칭을 붙였어요. 여자 선배는 ‘언니’나 ‘선배’라고 불렀고요.
김 저희는 무조건 선배에겐 ‘형’이라 불렀어요. 여자 선배에겐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남학생들은 여자 선배에게도 ‘형’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박 90년대 초반에는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여학생이 남자 선배에겐 ‘오빠’, 남학생이 여자 선배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등 성별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붙였어요.
여학우들의 학창시절 이모저모 2 - 단골술집・찻집
한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주로 가던 인근 유흥가라고 해봐야 ‘잉어집’, ‘막집’, ‘왕자다방’이 고작이었고 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어요.
김 ‘잉어집’은 저희 때도 간 적 있지만 주로 ‘막집’, ‘물레야’, ‘육교집’ 그리고 ‘서강다방’을 이용했어요. ‘동해횟집’도 있었지만 비싸서 학생 신분에 가긴 어려웠고 ‘청미’, ‘청록’ 등도 생맥주집이라 마찬가지였어요. 저희도 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어요.
박 ‘잉어집’은 처음 들어보고 ‘막집’은 기억해요. ‘동해횟집’은 취직한 선배들이 가끔 데려간 곳이고요. 저희 때는 특별히 가리지 않았어요. 생맥주도 많이 마셨어요.
여대생, 여학우, 여학생. 같은 듯 다른 의미를 지닌 이 호칭은 여자대학생이 드물던 60, 70년대, 민주화운동 확산과 남녀평등 의식이 본격화되던 정치적 격변기 80년대, 그리고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던 90년대 이후의 여자대학생을 가리는 호칭이다. 남성의 직업이 화가, 과학자, 의사 등으로 표현될 때 여성의 경우 앞에 하나가 더 붙어 여류화가, 여성과학자, 여의사로 불린 것처럼 굳이 성(性)이 구분되는데다 사회현상이나 정치적인 변화까지 반영한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여자대학생의 호칭이 변해온 것처럼 사회의 축소판 중 하나인 서강에서 시대마다 여학생은 어떤 존재였고 어떤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보냈을까. 각 시대별로 서강에 다녔던 한징택(75 생명, 모교 생명과학과 교수) 김현경(83 사회,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박현주(92 영문, 교육전문가) 동문의 눈을 통해 서강 여학생들의 학창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사회 생각보다 전체 동문 중 여학생의 비율이 작아서 놀랐습니다. 소수였기에 대학생활에서 주눅 들진 않았을까요?
한징택(이하 한) 오히려 남학생들이 주눅 들었던 것 같아요. 고교평준화 이전이라 여학생들은 대부분 소위 말하는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성적보다는 서강에 매력을 느끼고 기대하며 선택한 곳이라 매우 당당했었지요. 물론 대학시절에도 여학생들이 공부도 잘했고 서강대생이라는데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한징택(75 생명)>
사회 대학 입학성적이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지만 교수님께서 입학하시던 1975년까지 70년대 학번 수석입학자들의 상당수가 여학생이더군요. 수석 입학자인 전성빈(71 영문), 장정숙(72 화학), 조화준(75 신방) 모두 여학생입니다.
김현경(이하 김)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동기 남학생들이 여학생 앞에서 많이 주눅 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캠퍼스 커플일 경우에도 동기보다는 거의 선배들과 이루어진 걸 보면요.
박현주(이하 박) 제 친구들을 만나러 막걸리대로 유명한 K모 대학에 가면 느꼈던 건데, 그 학교 남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상남자’, ‘마초’ 같은 분위기를 많이 풍겼어요. 서강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학교에 가면 매우 당황스러웠을 정도예요.
김 예수회 교육기관인 학교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음주가 빈번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문제가 있는데 서강은 축제 때 외에는 교내 음주가 금지되었던 것도 마초적인 분위기를 누르는데 기여했고 신부님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어요.
한 물론 차별을 느끼는 때도 있었어요. 남학생들은 교련이나 병영집체훈련 같은 걸 하는데 여학생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별받아도 할 말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학생회 조직이 군사조직인 학도호국단이라 여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여학생부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김 저희 때는 학도호국단에서 학생회로 넘어가던 시기였어요. 학생회 내에서 남자는 ‘정(正)’ 여자는 ‘부(副)’를 맡아야 한다는 인식은 없었던 것 같은데 차별을 느꼈다면 그 부분은 서강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차이거나 사회적 인식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박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협의회가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없는 듯해도 총학생회 내에서 여학생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었던 것 같아요. 학생회비는 남학생과 동일하게 납부하는데 여학생협의회 예산이 적어서 일일찻집을 열던가 하여 예산을 충당했던 기억이 나요. 여학생 조직이 마치 들러리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김현경(83 사회)>
한 그래도 서강은 상대적으로 여학생을 존중해주는 문화였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역차별했다고나 할까요. 대표적인 게 도서관 내 여학생 휴게실이었는데 그곳은 쉬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그곳에 가면 전교의 여학생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교내 모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여학생 아지트였지요.
김 저희 때는 X관에도 휴게실이 있었어요. 여학생 화장실을 일종의 파우더룸으로 배려했다고 할까요. 요즘이야 흔한 일이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도였다고 봅니다. 남학생 화장실에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화장실에 휴지를 비치한 일은 다른 학교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배려였어요. 제가 사회학과 학생이라 주로 RA관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건물에 여자화장실이 4층 한 곳 밖에 없었어요. 학교 측에서 이 사실을 알고 1층 화장실 중 한 곳을 여자화장실로 바꿔주었는데요, 기존에 안 되던 것을 바꿔서라도 여학생들을 편리하게 해주려했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게 서강이라고 봅니다.
박 그 부분은 저도 동감합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구 출신에 1남3녀 집안의 딸이에요. 그래서 늘 남자보다 밀리는 상황이 싫었고, 여자대학에는 정말 가기 싫었어요. 언니 추천으로 서강에 오게 되었는데 재미있게 대학시절을 보냈어요. 무척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한 문제는 서강에서 차별을 별로 못 느끼고 당당하게 다녔던 게 오히려 사회 생활할 땐 장애로 다가왔다는 점이에요. 사회도 서강과 같을 거라 착각했던 거죠. 사회는 냉정했거든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남자인데 그 밑에서 일하며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준비가 안 되었던 것 이에요. 사회는 아직도 여성 차별이 심했는데 그걸 몰랐던거죠. 서강은 여성을 배려해도 사회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죠.
<정명숙(83 불문)>
박 서강에서의 학창생활이 만족스럽긴 했지만 저도 점차 고학년이 되면서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생활동에서 능동적이고 거리낌이 없었는데 서강에서는 그러질 못했어요. 여자대학에선 성별에 따라 ‘정(正)’, ‘부(副)’를 누가 맡느냐의 고민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김 그 부분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지 우리 학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히려 남녀공학에서 공부한 덕분에 사회 적응이 쉬웠고 남자 동료들과 일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어요. 남성에 대한 이해에 서강교육이 심어준 사람에 대한 ‘배려’ ‘존중’ 등의 가치가 더해져서 사회 생활하는데 큰 힘이 되었어요.
박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우수했지만 졸업후 동문회는 남자 중심이 되더군요. 여자 동문들은 동문회에도 잘 안 나오고 동문회 활동에도 소극적이더라고요. 남녀공학이라 그나마 동문회가 유지되지만 여자대학은 동문회가 잘 안된다더라고요. 대신 끼리끼리의 소모임은 잘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그런 걸 보면 ‘차별’ 보다는 ‘다름’의문제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회 과거 남성, 여성을 구분할 때의 ‘성’은 생물학적 의미의 성(Sex)이었습니다. 신체구조에 따라 사람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요소로 가르는 것이었지요. 여기에는 힘있는 남성과 약한 여성이라는 성적 차별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요인들을 중시하는 ‘사회적인 의미의 성’인 젠더(gender)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등한 남녀 관계를 내포하는 말인데요. 캠퍼스에서 여자대학생을 대하는 시각도 시대에 맞춰 생물학적 의미의 여성에서 사회적 의미의 여성으로 점차 변해왔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강은 이미 시대에 앞서서 젠더의 측면에서 여학생을 대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현주(92 영문)>
여학우들의 학창시절 이모저모 1 - 옷차림・호칭
한징택 학창 시절 여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치마 입고 옆구리에 교재 끼고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고 다녔어요. 특히 영문과 여학생을 비롯해 문과대 여학생들이 대부분 그런 모습이었지요. 저는 이공대 학생이라 실험도 많고 또 성격도 털털해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오히려 눈에 많이 띄는 편이었어요.
김현경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치마 입으면 오히려 화제였어요. “쟤 왜 저래? 무슨 일 있대?”하며 뒤에서 수군대거나 “너 무슨 일 생겼니?”가 일반적인 반응이었지요.
박현주 우리 때는 누가 뭘 입든 신경 쓰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인근 대학교 학생이라면 평범했을 차림임에도 서강에서는 멋을 부렸다고 평가받는 정도였어요.
김 서강의 여학생들은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화장도 하지 않았고 대체로 수수한 편이었어요.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이기에 종교적인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요.
한 박 그 부분에는 동감이에요. 시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서강의 여학생들은 정말 동시대 다른 대학교 여학생들에 비해 수수해요.
한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친하고 싶은 남자 선배에겐 ‘형’, 나머지는 ‘씨’라는 호칭을 붙였어요. 여자 선배는 ‘언니’나 ‘선배’라고 불렀고요.
김 저희는 무조건 선배에겐 ‘형’이라 불렀어요. 여자 선배에겐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남학생들은 여자 선배에게도 ‘형’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요.
박 90년대 초반에는 ‘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여학생이 남자 선배에겐 ‘오빠’, 남학생이 여자 선배에게 ‘누나’라고 부르는 등 성별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붙였어요.
여학우들의 학창시절 이모저모 2 - 단골술집・찻집
한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이 주로 가던 인근 유흥가라고 해봐야 ‘잉어집’, ‘막집’, ‘왕자다방’이 고작이었고 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어요.
김 ‘잉어집’은 저희 때도 간 적 있지만 주로 ‘막집’, ‘물레야’, ‘육교집’ 그리고 ‘서강다방’을 이용했어요. ‘동해횟집’도 있었지만 비싸서 학생 신분에 가긴 어려웠고 ‘청미’, ‘청록’ 등도 생맥주집이라 마찬가지였어요. 저희도 주로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어요.
박 ‘잉어집’은 처음 들어보고 ‘막집’은 기억해요. ‘동해횟집’은 취직한 선배들이 가끔 데려간 곳이고요. 저희 때는 특별히 가리지 않았어요. 생맥주도 많이 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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