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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 오대수와 오이디푸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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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18 조회14,8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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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 화제작인 영화 <올드 보이>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의 상호관련성은 매우 명백해 보인다. 그것은 우선‘오(이)디(푸)스’와‘오디스(오대수)’사이의 뻔한 유사성, 그리고 근친상간이라는 모티프의 사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은 너무 뚜렷해서 사실 이를 지적하는 것은 더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데 이 둘을 결합시키면서도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하는 것은 바로 최면술사의 존재다. <올드 보이>에 등장하는 최면술사는 어떤 점에서‘오이디푸스왕’의 비극적 운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면서 근친상간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대수 또한 최면술사의 프로그램을 따라 그와 같은 비극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최면술사는<오이디푸스왕>의‘운명’과 흡사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러한 운명이 부과한 도덕적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비극적 영웅이 되는 반면, 오대수는 자신의 (무)의식을 프로그래밍해서 근친상간을 저지르게 한 최면술사를 찾아가 부채청산을 요구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대수는 오이디푸스와 달라진다. 오대수는근친상간의 책임을 전적으로 최면술사에게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대수는 (무)의식적으로완벽한 무죄이자 전적으로 무고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들려오는 오대수와 그 딸의 교성이 관객을 불편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3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희생양으로서의 오대수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와 오대수의 차이는 단지 전자가‘니미럴’(니 에미를 할) 놈이고 후자가‘제길헐’(제 애기를 할) 놈인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죄를‘망각’하느냐 마느냐인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한 가지. “망각이 자유롭다면 과연 모든 것은 허용될까?” 지워버리고싶은 기억이 어찌 근친상간뿐이랴. 불편한기억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최면술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망각은 즐겁기만 한 것일까. 그런데 망각 후의 오대수의 ‘찡그린 웃음’ 은 왜 나를 괴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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