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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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8-02 13:42 조회9,1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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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반가운 만남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93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들이다. 배기원(93 경영)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 남택진(93 신방)·김민철(93 영문)·김대현(93 물리)·문희정(93 철학) 준비위원은 설레는 마음으로 동기들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어느덧 끈끈한 친구가 된 다섯 준비위원에게 홈커밍데이 준비 과정과, 93 동기들과 함께 한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어봤다.
▲ 왼쪽부터 김민철(93 영문), 김대현(93 물리), 문희정(93 철학), 남택진(93 신방), 배기원(93 경영) 동문.
Q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배기원: 두 아이의 아빠이고, 야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워크홀릭(Walkholic)이고, 철인 삼종 경기에 종종 출전합니다. 매니지먼트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남택진: 졸업 후 PD 생활을 20년 넘게 했습니다. 이후 영상 제작사를 창업해 방송, 신기술을 활용한 뉴미디어 콘텐츠 등 영상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문방송학과 최초의 여학생 과 회장이었습니다.
김민철: 졸업 후 선사에서 일하다가 여러 곳에서 근무 후, 지금은 물류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대현: 20년간 외국계 회사 여러 곳에서 근무했고, 최근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문희정: 저는 제주 MBC 아나운서로 방송을 시작해 지금은 국제정치평론가로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Q2.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배기원: 이왕 하는 홈커밍데이 행사면 직접 준비 과정에 참여해서 즐기자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직접 연락해 참여에 나섰고, 동문 선배님께 연락을 드려서 홈커밍데이 준비에 관해 자문했습니다.
남택진: 배기원 동문이 위원장으로 나선 것은 우리 준비위원들에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동문이 위원직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고, 준비 과정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어서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93학번 입학 30주년을 맞아 홈커밍데이가 열린다면 동기들을 만날 겸 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동문의 추천으로 준비위원장직 제의가 들어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민철: 저는 먼저 학교에서 연락받은 동기가 제게 바통을 넘겼습니다. 제안을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승낙해서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김대현: 저도 학교에서 연락 받은 친구의 제안으로 준비위원을 맡았고, 93 동기 준비위원들과 친분을 쌓으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희정: 저는 학교 다닐 때 과에서 좀 아싸(아웃사이더)였어요. 과 친구들보다는 도서관 근로 장학생에 매몰된 삶을 살았는데,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제대로 못 맺은 관계를 이렇게라도 만회하기 위해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3. 입학 30주년 홈커밍데이라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준비하면서 마음이 어떠신가요?
배기원: 1999년 졸업 후 모교 캠퍼스를 찾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변모한 캠퍼스에 어리둥절하기도 했고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로욜라 도서관은 반가웠습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93학번 동기들도 그럴 거예요.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 즐거운 일이 많습니다.
남택진: 저는 콘텐츠 기획 분과를 맡아 홈커밍데이를 준비 중입니다. 30주년 영상 제작을 위해서 93학번 과거 영상을 꼭 확보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영상을 찾는 게 조금 귀찮으시더라도 선배들이 기뻐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서강TV 후배님들이 찾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밥을 사겠습니다. (웃음)
김민철: 서강 동문들이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입학 30년 후에 모여 동문들이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이 학교 소식으로 알려진다면 후배들에게 자긍심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강이 소수지만 그 힘은 메이저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김대현: 저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서 재밌고, 이것이 일하는 동력이 됩니다. 처음의 어색함을 금방 깨고 빨리 친해졌고, 저희끼리 93학번 동문 골프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입니다.
저희는 홈커밍데이 이후 펠로우십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동문들이 만남을 이어가도록 돕고자 합니다. 동문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기초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문희정: 설레는 맘 반, 부담감 반입니다. 다행히 홈커밍데이에 참여할 수 있는 처지여서 다행스럽고 동기 친구들과 만나는 게 설레고 즐겁습니다. 되도록 많은 친구가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잘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많습니다.
Q4. 준비위원회에서는 홈커밍데이가 어떤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시나요?
배기원: 지음(知音), 이음, 다음 이 세 키워드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지음입니다. 저는 가까운 93학번 동기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홈커밍데이에서 동문들이 서로를 정말 잘 알아주는 친구들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다음으로 이음입니다.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음입니다. 저희는 펠로우십을 통해 비슷한 관심사가 있는 동문끼리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홈커밍이 동문들을 펠로우십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장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희정: 저희가 계속 얘기하는 게 어떻게든 후배들에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다시 학교를 방문하고 친구들을 만나 그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고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것만큼, 홈커밍데이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5. 홈커밍데이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인가요?
배기원: 홈커밍합창단의 꽁떼(con te, 그대와 함께) 앙상블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강인만의 친근함과 친밀감을 드러낼 수 있는 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서강93 30주년 홈커밍을 축하하며 각계 동문으로부터 자선 경매 목적으로 출품 기부를 받고 있습니다. 당일 행사장에서 자선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 전액을 총동문회와 모교 이름으로 기부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93학번 동기들이 청년서강을 기억할 수 있는 조촐한 가든파티가 청년광장에서 열립니다. 초가을 저녁, 청년광장으로 초대합니다.
Q6.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이 궁금합니다. 준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김민철: 학과 대화방에 홈커밍 관련 공지를 하면 큰 반응이 없다는 점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전 인원에게 개별 연락을 취하고 있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고 있습니다.
김대현: 물리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동기 대부분 지방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어 홈커밍데이를 위해 서울까지 올라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남택진: 참여 독려와 더불어 참가비에 대한 공지를 동기들에게 어떻게 부담되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가 지금 제 고민입니다.
문희정: 홍보 동영상이 매주 금요일마다 새롭게 나오고 있고 과별로 확보된 연락처로 한 번씩은 다 연락을 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초대장 발송과 함께 참여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인데 아직 생각보다 좀 잠잠해서 걱정입니다. 저희 과 친구 중에서 연락처가 없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서 어떻게 연락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입니다.
저에게는 서강에서의 생활이 정말 즐거웠고, 늘 그리운 학교이지만 다른 친구들의 학교에 대한 감정은 다 다를 테니 홈커밍데이 행사에 참여하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좀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다행히 다들 기억하고 반겨줘서 감동이었습니다.
배기원: 학교 행사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한 동기들이 모이는 자리이므로, 행사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 선입견이 어렵기도 합니다.
또 준비위원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개별 연락을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거절하는 동문도 있습니다. 물론 거절은 당연합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준비위원끼리 돈독해지고 있습니다. (웃음)
콘텐츠 기획은 물론 협찬지원, 미디어홍보, 펠로우쉽 등 여섯 개 전 분과에서 진척이 있습니다(7.26 기준). 이제부터는 문화공연분과가 행사 당일을 준비하는 데 여러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준비위원들에게는 행사 당일의 흥행 성공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학과 준비위원 친구들과 함께 홈커밍을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Q7. 학교에 입학하신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습니다. 각자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배기원: 지극히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학사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으면서 격려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늘 주위엔 비범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연애도 공부도.
남택진: 93학번 신문방송학과에는 여성 씨름단으로 불리는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저도 포함이 되어있었는데, 덩치도 있고 남자 동기들이 기죽어 사는 여학생들을 다른 동문들이 씨름단으로 불렀습니다. 신방과 여성 씨름단을 보고 싶으시면 9월 16일 홈커밍데이에 와주세요.
김민철: 저는 심각하고 진지한 학생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운동권이 결집한 동아리인 국제경제연구회 출신입니다. 반미정서로 콜라도 마시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족과 조국을 위해 살아야 하므로 연애도 하면 안 된다고 여겨서, 여자를 좋아하면 죄책감도 느꼈습니다. 지금은 제일 아쉬운 것이 연애입니다.
김대현: 저는 학창 시절 하면 술 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1학년 때는 하루 빼고 모두 술을 마셨습니다. 제가 소속되었던 서강학보에서는 편집장이 원고료를 다 가지고 있다가 매일 함께 술을 먹었습니다.
문희정: 저는 과 활동보다는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많았는데, 좀 더 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Q8. 93학번 동기들과 있었던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요?
배기원: 경영학과 동기들과 강촌, 남이섬 등에 MT를 갔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3학년 때로 기억되는데, 경영학과 친구들과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했던 일도요. 일주가 목표였는데, 반은 자전거로 나머지는 버스로 여행했습니다. 다시 함께 자전거 페달을 밟을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남택진: 동해횟집에서 예전에 회덮밥이 3,500원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는 굉장히 비쌌는데, 회덮밥을 시키면 홍합이 무제한이었습니다. 그래서 회덮밥을 시키고 홍합을 안주로 계속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사장님이 제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시나 봅니다. (웃음) 동해횟집이나 노고산 숯불갈비 사장님이 아직도 얼굴을 기억해 주신다는 게 정겹습니다.
김대현: 안주를 시키지 않고 깍두기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소주 한 잔을 다 먹어야 깍두기 한 점을 먹을 수 있도록 했었습니다.
김민철: 1학년 농활이 기억납니다. 저는 고향이 경북 청도라 골수 TK여서, 국제경제연구회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과 정치 이야기로 많이 싸웠습니다. 이후 농활에 갔는데, 선배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저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면 한번 생각을 고쳐도 되지 않을까 싶어 농활을 기점으로 정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의 인생에서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문희정: 고향이 부산이어서 오리엔테이션을 앞두고 상경했는데, 당시 짐이 좀 많아 과 친구들 3명이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줬습니다. 제가 깜박하고 몇 호차에 탑승했는지를 알려주지 않아서 3명이 플랫폼에 띄엄띄엄 서 있다가 저를 발견하고는 달려오더라고요. 그때 눈물이 핑 돌 만큼 고맙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 친구들이 함께 위로해준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집안 사정으로 휴학을 했는데 친구들과 학교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참 크더라고요. 그래서 그해 크리스마스 때 모든 과 동기들에게 엽서를 보냈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Q9. 93학번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기원: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김민철: 30년 전 우리는 청년서강이었는데, 50대인 지금도 여전히 청년의 범주 안에 듭니다. 홈커밍데이에서 제2의 청년을 함께 즐겨봅시다.
문희정: 30년 만에 스무 살의 나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그때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었는지, 그렇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고 있어. 근데 정작 스무 살의 나보다는 스무 살의 너희들이 먼저 떠오르더라고. 키가 컸는지 말랐는지 머리 모양이 어땠는지 웃을 때 얼굴이 어땠는지 목소리까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 스무 살의 문희정은 어떤 사람이었어? 비록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왠지 너희들을 다시 만나면 그냥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라 사랑 동기 사랑! 93들아 보고 싶다!
차의진(20 신방)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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