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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명강의 - ⑨정양모 종교학과 명예교수‘ 신약성서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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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6-14 13:33 조회10,9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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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와 전공을 넘어 꼭 듣고 졸업해야 할 강의가 있었다. 종교학과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신 정양모 신부님의 강의에는 개신교와 천주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불교나 종교가 없는 학생도 많았다. 신부님은 당시 ‘역사의 예수’와 그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역설하셨다. 매 시간 강의를 듣고 나오면, 생각할 주제가 머리에 자리를 틀었다. 학생들끼리 토론할 주제가 하나쯤 꼭 있었다. 80~90년대 젊은이들은 솔밭과 삼민광장에서, 학교 주변 선술집에서, 자연스레 ‘예수’와 ‘역사’에 대해 생각과 느낌과 말을 섞었다.

신부님은 학과와 전공을 넘어 일부 학생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당시 경영학과 1학년생이던 필자도 하비에르관(X관) 대형 강의실을 꽉 채운 학생들 가운데 앉아 있었다. 신부님 강의를 듣고 ‘충격을 먹은’ 다음 차례는 종교학과 강의를 ‘더 많이’ 듣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종교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대학원에 와서 보니 다양한 출신의 선후배가 많았다. 요즘 말로 하면, 신부님에 ‘꽂힌’ 학생들이었다(그런 강의는 노력해서 되는 것일까?).

졸업 이후 유학지로 선택한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는 하필이면 정양모 신부님이 학위를 마친 곳이었다. ‘참 공부 잘했던 한국학생’이라는 인상을 심어 놓고 오신 선배님 덕에, 필자 같은 미련한 후배도 몇 가지 음덕을 입었다. 70년대 신부님이 처음 안착하신 분도회 수도원 건너편에 90년대 필자의 자취방이 있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유서 깊은 그곳을 찾았고, 안셀름 그륀 신부님과 때때로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곤 했다.

세상과 교회와 성경에 대해 거침없으셨던 신부님의 기개는 강의의 덤이었다. 필자 같은 불성실한 학생의 기억에도, 한계를 두지 않고 탐구하는 서릿발 같은 연구태도와 성실하고 엄격했던 글쓰기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생생하다. 신부님은 강의 중간에, 잠시 창밖의 먼 하늘에 시선을 걸치고, 약간의 미소를 보여주시곤 하셨다. 꿰뚫어보시는 듯한 눈매에 은은히 번지는 득도의 미소. 신부님은 어린 저희들에게 통찰을 전해주셨다.


주원준(87 경영)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정양모 교수는 누구인가
정양모(77세) 신부는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에서 성서학(신약)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건신학대학과 전남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경북 청송 천주교회 주임신부를 역임했다. 독일어, 프랑스어, 희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에 능통하고, 1978년 모교 교수로 취임한 이래 1998년 퇴직해서 명예교수로 추대되기까지 많은 후학을 길렀다. 모교 종교신학연구소장과 종교학과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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