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사통팔달, 오인숙(60영문) 수녀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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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3-02-18 11:36 조회18,81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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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숙(60 영문) 대한성공회 수녀사제가 <조선일보>의 2013년 신년기획 '행복노트'에 '카카오톡'을 소재로 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오 동문은 "나에게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또 나 자신이 위로 받는 소중한 도구다. 특히 '카톡' 메시지가 그렇다"라며 사람들과의 교류가 주는 즐거움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시간을 내서 상대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은, 미세한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도의 순간이기도 하다"라며 "카톡 메시지도, 손님들과 차를 대접하며 나누는 대화도, 어쩌면 내게는 늘 기도와 동의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래에 오 동문의 허락을 얻어 글을 전재합니다. 또 조선일보 온라인 사이트의 관련글을 링크합니다.
(*위 사진은 조선일보에 실린, 카톡 화면을 보여주는 오 동문의 모습입니다.)
"카톡 편지 왔습니다" ... 그것 또한 나의 기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딩동' 하는 경쾌한 알림음, 혹은 짧은 진동.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며 수녀원 앞 우편함을 열어보는 듯 설렘. 편지나 전화가 아니라, 스마트폰 '카카오톡' 메시지 얘기다. 늘 세상 사람들과 얘기 주고받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몇 년 전 친구가 휴대전화를 가져다준 덕분이다. 친구는 1년 전 아예 스마트폰으로 바꿔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하지만, 나에게 이 폰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또 나 자신이 위로 받는 소중한 도구다. 특히 '카톡' 메시지가 그렇다.
새해 첫날 이런 기도글을 받았다. "새해에는 나무가 되게 하소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조용히 쉴 그늘을 내 주는 넉넉한 나무이게 하소서. 새해에는 강물이 되게 하소서. 지치고 목마른 이들을 적셔줄 강물이게 하소서. 새해에는 보석이 되게 하소서. 단련의 아픔까지 품는 진실한 사랑을 주소서. 그리하여 진흙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우리로 만들어 주소서…."
새 희망을 주는 참 아름다운 바람이고 기도다. 좋은 글은 카톡 친구들에게 단체로 재전송한다. 답을 받을 때면 내 기분도 좋아진다. "보석 같은 새해 글! 열심히 살겠습니다 수녀님!" "이 글을 되새기며 하루 지낼게요. 감사해요!" "새해에는 나무로 강물로 보석으로 살겠습니다." 카톡 메시지는 편지지로 곱게 접은 종이 비행기 같다. 아름다운 글과 동영상을 품고 허공을 날아 다른 이의 편지함을 두드린다.
나 역시 암 투병 경험이 있어, 환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특히 공을 들인다. 오래 투병 중인 환자 분에게 "힘내세요. 사랑과 평화의 손길이 세포마다 강건히 치유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고 보내 본다. 요즘은 몸 상태가 많이 좋아진 걸까. 금세 "감사합니다 수녀님!" 하고 또 '딩동' 편지가 온다. 주고받는 마음이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 내게도 그 사람에게도 "세포마다 강건하게 할" 치유의 힘을 발휘할 것만 같다.
늘 받아보는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도 언제나 새 희망을 준다. "인생살이를 신나게 하려면 탁 트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가 마치 등산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세요…." 매일 수십 명에게 스님 편지를 전달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기뻐하는 열린 마음을 확인하니 또 즐겁다.
사실, 나는 신은 늘 사소해 보이는 사건과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믿고 있다. 그건 카톡뿐 아니라 차 한잔 나누는 짧은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초의 일이다. 이곳저곳에 짧은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그날도 원고 마감이 코앞이었다. 간신히 시간을 내서 글을 쓰려 할 때였다. 약속도 없이 낯선 손님이 수녀원을 찾아왔다는 기별이 왔다. 속으로 투덜투덜하며 맞으러 간 나는 깜짝 놀랐다. 60년대 영국 유학 때 만났던, 유일하게 집으로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셨던 신사 분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된 두 딸과 손녀까지 함께! 세월은 반세기나 흘렀지만, 대화는 엊그제 만난 친구처럼 정다웠다. 바쁘다고 그냥 돌려보냈다면 서로 다시 못 만난 채 지구를 떠날 뻔했다!
동네 구두 수선 아저씨가 찾아온 일도 있었다. 부인과 함께 아는 집 결혼식에 다녀오다 수녀원에 들렀다고 했다. 차를 마시며 친해졌고, 그 집의 온 가족과도 친해졌다. 얼마 전엔 그 딸의 결혼식에서 영국인 신랑의 인사를 통역해줬다. 만남을 통해 누리는 소박한 기쁨은 이렇게 스스로 가지를 치고 열매를 맺는다.
늘 시간에 쫓긴다면서, 느긋이 물 끓이고 차를 대접하는 건 귀찮지 않으냐고 묻는 이도 있다. 손수 해보라! 쫓기는 마음은 차를 끓이는 동안 사라진다.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까 즐거운 상념에 빠질 때면 바쁜 생각도 잊는다. 그 차를 함께 마시는 동안, 메시지가 오가는 동안, 모두 기쁨으로 충만하다.
자신의 시간을 내서 상대와 마음을 나누는 순간은, 미세한 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도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카톡 메시지도, 손님들과 차를 대접하며 나누는 대화도, 어쩌면 내게는 늘 기도와 동의어다.
[조선일보] "카톡 편지 왔습니다" ... 그것 또한 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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