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팡 개발 남궁훈(91경영) 게임고교 설립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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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1-21 09:46 조회22,1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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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훈(91 경영) 동문은 게임으로 자수성가한 대한민국 대표 벤처 사업가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평소 즐기던 PC통신 서비스를 운영하던 삼성SDS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인터넷 게임 사이트 한게임을 창업한 뒤 10년 동안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CJ인터넷(현 CJ E&M 넷마블) 대표를 거쳐 올해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에 취임했습니다. 요즘 인기 몰이에 나선 모바일 게임 ‘캔디팡’이 남궁 동문의 작품입니다. 남궁 동문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게임을 즐기는 시대를 구현한 셈입니다.
재미있게 일하며 사는 게 인생
친화력 있는 성격과 넉살 덕분에 모교에서의 학창 시절 출발은 청춘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았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선배와 동기들과 술 마시는 게 너무 좋아서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창 술마시다보니 주변지인들이 대부분 학생운동권이라는 것을 알게 돼 마음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제 성향은 스키부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이끄는데 지인들은 모두 ‘경영대 역사학회’에 가입해서 활동했거든요. 운동권 친구들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했지만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스키부도, 역사학회도 참여하지 못했죠.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대중의 삶을 경험하겠다는 마음에 택시 운전대를 잡았어요. 학점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표상을 잡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택시 운전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주는 가스 충전비는 항상부족했고, 수입으로는 사납금은 물론 세차비도 충당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밥 먹을 시간도 없고, 길도 잘 모르니까 더 힘들었어요. 야간 피크 타임 때 취객이 구토라도 하면 암담했죠. 제가 토한 것도 한번 안 치워 봤는데 말입니다.”
돈 버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톡톡히 깨닫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사 가이드로 아르바이트를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습니다. 가이드로 동행해 여행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이다, 제트스키를 공짜로 타며 놀다 오니까 월급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인생 계획을 세웠고 결국 게임 업계에서 자리를 찾았습니다.
새로운 꿈 실현하러 교육대학원 진학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남궁 동문이지만 2011년 CJ인터넷에서 그만둘 때 게임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임이 발전하면서 엄연한 대한민국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았는데 아직 부정적인 인식도 많고 인력 수급도 못 따라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게임 업계를 보면 오래 전 ‘만화책 화형식’ 장면이 떠오릅니다.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뒀다면 요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훨씬 일찍 만들어져서 한류에 기여했을 겁니다. 게임 산업도 화형식에 처해지지 않도록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에서 ‘GA(game master 또는 game manager)’나 ‘QA(Quality Assurance)’ 직군에는 굳이 대졸자까지 필요 없습니다. 요즘 고교 졸업자를 적극 채용하자는 분위기가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고졸자는 주유소,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게임 인력을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인력 양성 기관은 부족한 상태인데 말이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직장다운 직장에서 일할 기회도 주고 우리나라 게임 산업 문화를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춘 게임 고등학교 설립이 목표입니다.”
목표를 정하면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남궁 동문이지만 무작정 학교를 만들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준비하는 게낫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 모교 교육대학원 42기로 입학해 교육공학·교육행정융합 전공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2학기는 예정된 해외 출장 업무가 너무 많은 탓에 휴학해야 했지만 모교에서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라고 합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처음에는 학교만 세우면 사회에서 고마워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한다는 취지로 학교를 세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교육학 개론’ 수업 도중 교육 철학과 관련한 내용을 배우다가 ‘교육자는 단순히 기부를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힘든 일에 나서는 것이다’라는 대목에 가슴이 움직였습니다. 큰 사명감을 갖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쳤죠. 사업은 잘 안될 경우 접으면 그만이지만, 학교는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까요.”
서강다움이 드러난 학교 운영이 목표
그런데 서강에서 배웠다는 자체로 지금은 서강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남궁 동문이지만 학창 시절 독후감 쓰는 것은 정말 싫었다고 합니다. 계절수업으로 재수강했을 정도입니다.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싫던 독후감이 나중에 사고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인문학적인 교양과 인성교육이 성인을 바꿀수 있나 싶었는데 제가 영향을 받았으니 말다했죠. 명확히 표현하지는 못하겠는데 ‘서강 느낌’이란 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서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서강만의 독특함이라고 할까요? 제가 운영할 학교에도 이러한 학풍을 세우고 싶습니다. 인품과 문화가 있는 학교를 꼭 만들 겁니다. 인품도 교육하면 된다는 걸 서강에서 깨쳤으니까요.”
참, 이제는 게임 업계에서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남궁 동문의 빡빡머리는 대학 4학년 때부터 빠지기 시작한 머리 모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한동안 콤플렉스였지만 아예 밀고 나니 오히려 당당해졌다고 합니다. 장차 게임 학교를 설립하고 남궁 동문이 단상에 올라 전교생 월례 조회에 나설 때 화끈한 태양이 ‘번쩍’ 빛나길 기대합니다.
재미있게 일하며 사는 게 인생
친화력 있는 성격과 넉살 덕분에 모교에서의 학창 시절 출발은 청춘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았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선배와 동기들과 술 마시는 게 너무 좋아서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한창 술마시다보니 주변지인들이 대부분 학생운동권이라는 것을 알게 돼 마음이 복잡해졌다고 합니다.
“제 성향은 스키부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이끄는데 지인들은 모두 ‘경영대 역사학회’에 가입해서 활동했거든요. 운동권 친구들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했지만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스키부도, 역사학회도 참여하지 못했죠. 소속감을 갖지 못하고 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대중의 삶을 경험하겠다는 마음에 택시 운전대를 잡았어요. 학점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표상을 잡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택시 운전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어요. 회사에서 주는 가스 충전비는 항상부족했고, 수입으로는 사납금은 물론 세차비도 충당하기 어려웠으니까요. 밥 먹을 시간도 없고, 길도 잘 모르니까 더 힘들었어요. 야간 피크 타임 때 취객이 구토라도 하면 암담했죠. 제가 토한 것도 한번 안 치워 봤는데 말입니다.”
돈 버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톡톡히 깨닫고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행사 가이드로 아르바이트를 전환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었습니다. 가이드로 동행해 여행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이다, 제트스키를 공짜로 타며 놀다 오니까 월급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인생 계획을 세웠고 결국 게임 업계에서 자리를 찾았습니다.
새로운 꿈 실현하러 교육대학원 진학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남궁 동문이지만 2011년 CJ인터넷에서 그만둘 때 게임 학교를 세우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게임이 발전하면서 엄연한 대한민국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았는데 아직 부정적인 인식도 많고 인력 수급도 못 따라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게임 업계를 보면 오래 전 ‘만화책 화형식’ 장면이 떠오릅니다.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거뒀다면 요즘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훨씬 일찍 만들어져서 한류에 기여했을 겁니다. 게임 산업도 화형식에 처해지지 않도록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게임 업계에서 ‘GA(game master 또는 game manager)’나 ‘QA(Quality Assurance)’ 직군에는 굳이 대졸자까지 필요 없습니다. 요즘 고교 졸업자를 적극 채용하자는 분위기가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고졸자는 주유소,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게임 인력을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인력 양성 기관은 부족한 상태인데 말이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직장다운 직장에서 일할 기회도 주고 우리나라 게임 산업 문화를 튼튼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갖춘 게임 고등학교 설립이 목표입니다.”
목표를 정하면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남궁 동문이지만 무작정 학교를 만들기보다 내실을 다지고 준비하는 게낫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 모교 교육대학원 42기로 입학해 교육공학·교육행정융합 전공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비록 2학기는 예정된 해외 출장 업무가 너무 많은 탓에 휴학해야 했지만 모교에서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라고 합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처음에는 학교만 세우면 사회에서 고마워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한다는 취지로 학교를 세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교육학 개론’ 수업 도중 교육 철학과 관련한 내용을 배우다가 ‘교육자는 단순히 기부를 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고 힘든 일에 나서는 것이다’라는 대목에 가슴이 움직였습니다. 큰 사명감을 갖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미쳤죠. 사업은 잘 안될 경우 접으면 그만이지만, 학교는 쉽게 그만둘 수 없으니까요.”
서강다움이 드러난 학교 운영이 목표
그런데 서강에서 배웠다는 자체로 지금은 서강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남궁 동문이지만 학창 시절 독후감 쓰는 것은 정말 싫었다고 합니다. 계절수업으로 재수강했을 정도입니다.
“참 신기한 게 그렇게 싫던 독후감이 나중에 사고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인문학적인 교양과 인성교육이 성인을 바꿀수 있나 싶었는데 제가 영향을 받았으니 말다했죠. 명확히 표현하지는 못하겠는데 ‘서강 느낌’이란 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서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서강만의 독특함이라고 할까요? 제가 운영할 학교에도 이러한 학풍을 세우고 싶습니다. 인품과 문화가 있는 학교를 꼭 만들 겁니다. 인품도 교육하면 된다는 걸 서강에서 깨쳤으니까요.”
참, 이제는 게임 업계에서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남궁 동문의 빡빡머리는 대학 4학년 때부터 빠지기 시작한 머리 모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한동안 콤플렉스였지만 아예 밀고 나니 오히려 당당해졌다고 합니다. 장차 게임 학교를 설립하고 남궁 동문이 단상에 올라 전교생 월례 조회에 나설 때 화끈한 태양이 ‘번쩍’ 빛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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