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명강의]이재선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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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10-22 09:36 조회15,0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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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론 강의에서 이재선 선생님을 처음뵈었다. 수강생이 적지 않았다. 국어국문학과 학생만 이 강의를 듣는 게 아니었다. 인문대학은 물론, 타 단과대 학생도 강의실을 차지했다. 막이 오르길 기다리는 관객처럼 강의를 기다렸다. 선생님 강의는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에게만 유명한 게 아니었으니 서강의 문청들은 선생님 강의를 당연하듯 거쳤다.
현대와 고전의 경계를 오간 것은 물론, 박학다식과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전범(典範)이 바로 선생님 강의였다. 어린 제자는 놀라웠다. 문학적 주제론, 러시아형식주의, 구조주의, 정신분석비평 등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읽는 눈을 확 뜨게 해주셨다. 이런게 공부의 개안이구나 싶었다. 국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개척하신 선생님은 영어 이론서는 기본이고 독일어, 중국어 이론서도 부지런히 구해 읽으셨다. 학자의 해외 체류가 흔하지 않던 시절, 안식년에 하버드-옌칭 연구소에서도 수학하셨다.
공부를 더 해 보겠노라는 생각으로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선생님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졌지만 그 인연은 편안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늘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그 긴장은 바로 당신의 학문에서 오는, 그러니까당신의 쉼 없는 공부가 만들어내는 긴장이었다.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대충이 없었다. 읽어야 할 텍스트와 과제 양이 만만치 않았으나 선생님 강의는 휴강이란 게 없었다. 솔선수범하시며 제자들을 학자로 키워주신 선생님이다.
박사학위를 어렵사리 취득하고 지방 사립대학 전임 교수로 채용된 미련한 제자에게 선생님께서는 “지방의 사무라이가 되지 말라”라고 충고해주셨다. 딴 데 한 눈 팔지 말고 공부에 몰두하라는 말씀이셨다. 그러나 미련한 제자는 선생님 충고만 생각하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두 해 전, 선생님께서 ‘이광수의 지적편력’이라는 저서를 보내 주셨다. 책은 이광수의 지적 편력이 아니라 선생님의 지적 편력이었다. 정년하신 선생님의 역작을 받아든 제자는 선생님께서 여전히 안녕하시구나 싶은 생각에 기쁘면서도 미련한 제자의 공부를 채근하는 것 같아 마음이 크게 송구스러웠다. 선생님의 존재는 이렇게도 무겁고 깊은 것이다.
양진오(85 국문)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재선 교수는 누구인가
이재선(76세)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는 1969년 모교 부임 이후 2002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33년 동안 서강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현대소설이론을 전공한 문학평론가이자 학자로서 한국문학 실증적 연구와 미학 분석 및 통시적 연구를 통한 체계 정립 등에 힘썼다. 저서로 ‘한국단편소설연구’‘, 한국현대소설사’,‘ 한국문학의 주제론’ 등이 있다. 한국일보사 한국출판문화사 저작 수상 대상과 한국문예진흥원 대한민국 문학상 평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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