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자의 신뢰에서 더 나은 사회로, 출판인 김학원(81 국문) 동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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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10 23:53 조회2,3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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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신뢰, 그리고 더 나은 사회로
출판인,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 김학원(81 국문) 동문의 이야기
바야흐로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일상에서 챗지피티를 돌리는 데 익숙해졌고,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손쉽게 접하며 수많은 선택지를 누린다. 그리고 여전히 인문학은, 보이진 않으나 인간이 스스로 사유하고 삶에서 주어지는 선택지 중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적지않은 영향력을 가진다. 그리하여 내재된 인문과 교양은 인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들여 인문학적 사고와 심도있는 성찰을 유도하는 텍스트를 접하려 노력하지만, 이를 부담으로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긴 호흡의 텍스트들로 구성된 ‘책'은 결국 독자 개인과 사회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가 있다.
어느덧 33년째 베테랑 출판인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대표, 김학원 동문(국문 81) 동문을 만나봤다.
▲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대표 김학원 동문
Q1. 안녕하세요, 김학원 동문님. 서강대학교 총동문회와는 2018 년 이후 오래간만에 뵙게 되었습니다. 서강 가족들에게 선배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저 자신을 “서강을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가장 오래 다닌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네요. 저는 1981년도에 입학했고, 1995년도에 졸업해 약 14년 동안 서강에 있었습니다. 당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학내 시위, 민주화 운동 등 여러 사건으로 세 번의 수감생활을 거쳤고, 구속과 제적을 반복하는 동안 노동단체에서 편집인으로 일하곤 했습니다. 주로 학술지, 잡지의 편집인으로 일했는데, 여전히 고졸 신분이었기에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선 졸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다행히 민주화 운동 관련 제적자의 복교 조치가 허락되어 32살 즈음 복학을 했죠.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며 공부한 결과, 95년도에 첫 아이를 품에 안고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Q2. 편집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많은 이들이 원래부터 국문학에 뜻이 있었냐고 질문하곤 합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저는 국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중요성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뛰어넘을 만큼 책에 관한 열정은 없었죠. 이 분야로 들어서게 된 계기도 정말 사소했습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으로 겪은 세 번의 수감생활이 언제나 발목을 잡았습니다. 세 번 출소한 사람을 받아줄 기업은 어디에도 없었죠. 그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노동 단체에서 책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월간지, 개간지, 팜플렛을 제작하고 배포하는 일을 가리지 않고 했죠. 당시 빚이 조금 있었는데, 한 출판사에서 자신의 회사에서 2년간 일을 하면 빚을 갚아주겠다고 제의하더군요. 그 때의 전 하늘이 노란색으로 보였기에, 하늘을 제 색깔로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2년 만에 빚을 모두 갚게 되었습니다. 성과가 좋았기에 편집자로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운이 좋게도 길을 선택한 지 2년 만에 편집주간이 되었습니다.
Q3. 어떤 계기로 휴머니스트를 설립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2001년 5월 8일 창립 후 23주년을 맞이한 출판사 휴머니스트
저는 출판사에서 8년 정도 일하고 39살을 눈 앞에 둔 시점에 휴머니스트를 창업했습니다. 휴머니스트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시대적 흐름과 관련이 있는데요, 당시 2000년도에 접어들고 세기가 바뀌며 전국적으로 세상이 바뀐 듯한 분위기였죠. 당시 제게는 출판인으로서 나아가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이를 온전히 펼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대표라는 포지션이 생기니 어떤 목적지로 나아가야 할지가 분명해지더군요. 그 길로 마포 철길방에 작은 월세방을 얻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휴머니스트 창립 초기 사진 자료)
Q4. 휴머니스트를 설립한 뒤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휴머니스트를 처음 설립하고 난 뒤에는 첫 책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제가 가진 생각, 방향성, 선장으로서의 가치와 철학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2000년 동안의 문명의 장벽을 깨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 세상의 다양한 갈등들이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었거든요. 분단과 휴전, 남성과 여성, 종교와 종교, 단일민족과 외국인, 세대갈등, 이데올로기와 여러 종류의 차별이 공존하는 곳이 우리 사회라고 생각했기에 이 땅에서 장벽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는 담론을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대담’ 시리즈였습니다. '서로의 장벽을 깨는 대담을 해보자', 그러기 위해선 열린 대화와 청취가 필요했고, 서로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인종에 귀를 기울이고, 남과 북은 서로에 귀를 기울이고, 쉽게 말해 ‘공존의 대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 첫번째는 문과와 이과의 대담이었습니다. 최재천 교수와 도정일 교수의 2년 반 동안의 대화를 엮어서 내었고, 그 다음에는 한국과 일본의 장벽을 깨기 위해 동양철학자와 서양철학자의 대화를 엮었습니다. 길고 도전적인 프로젝트였고,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기에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만큼 팔릴까? 에 대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 책으로 휴머니스트를 알릴 수 있었습니다.
▲ 휴머니스트의 '대담' 시리즈, (왼쪽부터)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 오만과 편견
Q5. 휴머니스트는 지난 20여 년 동안 1,800여 종의 책을 출간한 ‘웰메이드 인문교양서를 만드는 출판사 그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표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신념이 있을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신뢰입니다. 저자와 독자에 대한 신뢰가 1순위입니다. 유튜브 시대가 열리면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정보, 내러티브가 많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용, 재인용이 수없이 반복되고 오리지널리티는 상실되었죠. 출판 업계 역시 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출판은 원천소스를 분명히 밝히고 자신이 창조한 오리지널리티를 밝히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책 자체가 지닌 컨텐츠, 내러티브에 대한 차별적 신뢰도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그것이 출판 업계가 뉴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휴머니스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휴머니스트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독자와의 신뢰였기 때문입니다.
Q6. 어쩌면 동문 님께서 해오신 출판 작업은, 한 권의 책을 얻는 것보다 사람을 얻는 과정에 더 밀접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교류하며 겪으셨던 가장 기억나는 순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기획하고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현재까지도 전무후무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의자놀이 프로젝트’입니다. 2012년에 <의자놀이>를 출간한 뒤 저자인 공지영 작가와 함께한 프로젝트인데요, 2009년에 쌍용자동차에서 2646명을 한 번에 해고한 사건이 있었죠. 이는 당시 2646명에 대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77일 간의 파업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자살했고, 이는 참사와도 같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작가, 출판사가 결합을 해서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공지영 작가가 쌍용자동차 사건을 주제로 쓴 책을 매개로 전국적인 콘서트를 열였습니다. 수많은 예술인과 가수, 연예인이 참여했고, 여러분이 잘 아시는 들국화, 강산에도 이 프로젝트에 합류해 전국을 책과 함께 누볐습니다. 작가는 책을 쓰고, 출판사는 전액 수익금을 내고, 가수와 연예인은 자신의 재능을 통해 하나의 사회적 문제를 알리는 대규모 재능 기부 프로젝트였죠. 그 노력 덕에 책은 10만 부 이상 나갈 수 있었고, 많은 국민들도 쌍용자동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행렬 멈추자는 메시지와, 유족들에게는 모금한 3억 5천만원을 기부해 생계와 학비를 지원할 수 있었죠.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출판이 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시대의 아픔과 희노애락을 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며 우리 사회를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했던, 중요한 프로젝트였죠.
▲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휴머니스트 출판)
(클릭하시면 휴머니스트의 '의자놀이' 책과 그 프로젝트 소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Q7. 수많은 책들을 접하고 출간해 온 전문 출판인이자 전문 편집자의 입장에서 '좋은 책'을 판단하는 기준과 가치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휴머니스트의 독자 분들께 바라는 바가 있다면?
좋은 책을 판단하는 첫 번째는 아까 언급했듯이 신뢰입니다. 쓰는 과정과 만드는 과정에서 독자와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독자를 일깨울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독자가 읽고 그 책의 팔로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삶을 이끌며 성장하게 해주어야 하죠.
독자를 저자로 만들어주는 책, 단순히 읽는데 머무르지 않고 책에서 얻은 생각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을 내보이고 싶습니다. ‘독자에서 시작해서 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휴머니스트의 독자 분들께 바라는 바입니다.
Q8. 앞으로 동문님의 개인적인 목표와, 휴머니스트 출판 그룹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70대 이후에 인생의 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한번 쯤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 됐던 간에, 어떤 삶을 살던 간에, 저자로 살건, 화가로 살건 간에 특정 시점에 저 스스로를 해방하고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열어가고 싶습니다.
또 휴머니스트는 AI 시대에 걸맞게 성장해 나가며 시대가 요구하는 출판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해 나갈지 아직도 많은 물음들이 남아 있습니다.
Q9. 벌써 2024년 9월입니다. 곧 가을 날씨에 접어들 텐데요. 가을, 하면 독서의 계절이지 않습니까? 수많은 인문서와 고전, 스테디셀러들을 접해 오셨을 동문 님의 인생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또 서강 가족들에게 이번 가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휴머니스트의 책을 한 권 골라 주신다면?
우선 비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내면의 불안을 지닌 현대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학원 동문의 추천 :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클릭하시면 휴머니스트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책 소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어니스트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유명한 고전이지만, 은근히 읽지 않은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올해에만 이 책을 세 번 읽었는데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는 감동과 울림이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꼭 서강 동문이기도 한 황유원 시인의 번역본으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위대한 고전이 황유원 동문의 번역을 만나 더욱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죠.
▲ 김학원 동문의 추천 : 어니스트 허밍웨이 <노인과 바다>, 황유원(01 종교) 동문 번역
(클릭하시면 휴머니스트의 '노인과 바다' 책 소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독자의 신뢰'를 답했다.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정보로 넘치는 세상 속에서 책은 오리지널리티를 본질로서 확보하고 독자의 신뢰를 얻으며, 나아가 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팔로워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인 리더로서의 저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는 확장되면서 현 사회를 비추고 더 나은 사회로 변화하는 첫 발걸음에, '좋은 책'이 있다고 말한다.
짧지만 핵심이 담긴 그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나에게 있어 '좋은 책'에 대한 내러티브를 형성하고, 그에 대한 철학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투 끝에 잡아들인 청새치를 다 빼앗겼어도 다시 고기잡이를 약속하고 사자 꿈을 꾸는 산티아고 노인처럼, 우선 책장을 넘기고 읽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원하는 것을 단번에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정독의 과정에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에 대한 안목이 생길 것이며 이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독서로 이어지면서 더더욱 명료해질 것이다. 김학원 동문이 서강 가족들에게 추천하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어니스트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부터 펼쳐 보는 것은 어떨까.
▲ '좋은 책'을 출판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출판인 김학원 동문
이나윤(신방 22) 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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