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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오래된 지금, 내가 만난 김의기 김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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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7-10 15:37 조회21,3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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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의기 열사가 1980년 찍은 졸업사진. 그해 8월 졸업 예정이었다.>

오래된 얘기다. 김의기는 1980년 떠났다. 그러니까 32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살아있는 얘기다. 요즘같은 대명천지에도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많다. 불의에 저항한 희생과 죽음으로써라도 알리고자 했던 처절함이, 살아서 남아있는 자의 허망함과 겹쳐 예나 지금이나 꿈틀거리는 얘기인 건 마찬가지다.

지난 5월 30일, 나는 오후 5시까지 초조했다. 김의기 추모식이 열린다고 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맞을지? 맞다면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이름이 무엇이었지? 1976년 나는 TBC TV의 신참 다큐PD로 입사했었다. 제작비를 지급하는 창구에 미스김이라고만 불린 여직원이 있었다. 선배들 제작비까지 타드리느라고 들락거리다가 미스김과 얼굴을 익히자 “서강대 나오셨다면서요? 제 동생도 거기 지금 다녀요.”하는 소릴 들었다. 얼마 후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형제가 많은데 그 동생이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하게 된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선 미스김이 세어서 주는 돈이 더 귀하게 느껴졌다.

1980년 5월, 광주엔 통신과 소식이 끊겼다. 명색이 언론사에서 이른바 취재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무실엔 항상 동시에 출근해서 함께 근무하는 보안사와 정보부 요원이 두 명 있었다. 그들은 80년 이전부터 상근했었는데 5월 이후엔 아예 착검한 공수부대원들까지 주둔해서 정문을 지켜줬다. 기사내용과 프로그램 콘텐츠는 시청 검열반의 도장을 받아야했다. 그 효과는 컸다. 왜? 광주에선 무서운 일이 났다는데 신문은 깨끗했고 TV 브라운관엔 뭔 일 있었냐는 듯이 여전히 쇼와 드라마들이 웃고 까불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여드는 분위기에서 무얼 알 수 없었다. 따라서 80년 5월 30일 어떤 대학생이 기독교 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드리는글”을 뿌리며 투신, 죽었다는 사건을 제대로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방송사 여직원 한 사람이 숨죽여 흐느끼더라는 소문을 따로 들었을 뿐이었다. 실은 내코도 석자였다. 몇 명인지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죽임을 당했다는데 언론사에서 모른 채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직원들(거의 다 선배였지만) 겨우 오시게 하여, 편성제작국에서 기습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를 글로 썼는데 타이프라이터까지 연루시키면 위험할 듯하여 내가 손글씨로 문장을 작성한 뒤 복사해서 언론사들에 돌렸었다. 그 보답은 당연히 강제해직이었다. (오늘 이 사건을 논하자는 게 아니고 어떤 대학생의 무참한 죽음을 바로 추적하지 못한 형편을 말함이다.)

그 후 놀았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을 정도로 어둡던 시기였다. 더구나 방송사엔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하니 취재원에도 닿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는데, 바람결에 그 대학생이 서강대생이었다는 사실, 그 누나가 동양방송국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했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미스김이 아닌가도 했다. 나 같은 자들이 여럿 쫓겨나는 걸 현직 사람들에게 목도하게 한 효과 역시 컸다. 왜? 80년 7월 (주)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30명을 강제해직시킨 전두환 장군의 국보위는 11월 30일 아예 TBC를 없애버리는 데에 아무 거스를게 없었고 그 작업을 주도한 보안사 준위 이상재를 국민들은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기 때문이다. 아참, 전 장군도 대통령으로 뽑혔다. “국풍81”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춤추며 노래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아, 대한민국이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오래된 얘기인가? 지금 얘기이다.

스산하게 80년대가 지나갔다. 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했다. 87년 7월 연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목숨을 잃었다. 군사정권이 마지못해 직선제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일찍이 80년 5월 30일에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외치며 아무도 모르고 있던 광주의거와 그 참사를 알리고자 했던 서강대생 김의기의 선각정신을 나는 새삼 전율을 느끼며 곱씹게 되었다. 조직도 없이, 성깔도 없다는 서강대생이, 그렇게도 일찍이...

그래서 올해 5월 30일 32주기에 총동문회의 공식대표로 참석하고자 자원했었다. 의기의 누님 두 분이 오신다는 소식이 더 초조하게 했다. 5시 직전 성당 앞에 두 아주머니가 신부님과 서 계셨다. 맞았다. 작은 누나 얼굴이 30여년 간 바뀌지 않았다. 새삼 이름을 물으니 김주숙이라고 했다. 전혀 기대를 하지 못했을 그녀도 덥썩 내 손을 잡으며 “이게 몇 년 만이냐, 근데 여긴 웬일이냐?”하고 물었다. 웬일이긴...


<故김의기 동문의 작은누나 김주숙>

오래된 얘기가 지금 살아있다. 의기는 당시 4학년 졸업반, 더구나 가을 학기 졸업예정이라고 했다. “의기는 2월에 졸업한다고 했었어요. 2월이 돼서도 안하기에 왜 안하냐고 물으니까, 저보다 가난한 친구에게 등록금을 주어서 자기는 가을에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여섯 형제들 중 유일한 대학생이었다. 빈부 격차의 의미, 가난이 무엇인지, 모두 오래된 지금 이야기이다. 그는 광주를 외쳤지만 전라도와는 멀었다. 경북 영주군 부석면 출신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때, 경상도 군인들을 보냈다는 둥, 광주에선 경상도 번호판 차엔 기름도 안 팔았다는 둥... 허망한 헛소문들, 이렇게 해서 지금 어찌 남북 통일을 연습할 수 있을까?

감사한다. 의기 기념비를 모르는, 아니 이 가슴 아프고도 자랑스런 사건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그래도 후배 학생들이 84년 작은 비석을 세웠었다. 85년 당국에 의해 철거됐었지만 88년 기념비를 제작하고 다시 97년 얼굴 동상을 조각하여 2006년 지금의 의기촌을 조성함으로써 바로소 의기(義氣)가 숨 쉬도록 해주었다. 신부님들이 올해부터 정식으로 추모미사를 드려주시기로 했으니 가족 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 정신을 경건히 다잡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

이번이 32주년인데 올해 기념제는 민주동우회와 2005학번에서 맡았단다. 1976학번 선배님과도 세월을 뛰어넘어 어깨동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동안 의기 얼굴은 판화로 제작하다 보니 역시 투사형이었는데, 올해 새로 캐리커처로 그리니까 다정하게 방긋 웃는 얼굴이 되어 신세대 후배들에게도 다가간다고 한다. 글을 쓰며 사실 확인을 위해 뒤졌는데 박종철과 이한열은 자료가 가득했으나, 김의기는 당시 알려질 수 없어서인지 몇 줄 뿐이다. 김의기 사건이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가? 행위 시기, 자발적 의지 여부, 조직도 진영도 없던 독자성...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료가 부족해 부산에 사는 누나와 오늘 통화했다. 누구 가족이라고 이름도 내지 못했던 사람이다. “당시엔 우리 의기가 졸업반이어서 더 원통했고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참으로 가슴 아팠었지요. 지금 생각해주는 친구들을 보니 이젠 자랑스러워요. 학교에서도 명예졸업장을 주셨으니, 우리집에 엄연히 대학졸업생이 있는 거지요?”

김주숙 누나는 목사님과 결혼하였다.


정 훈(70 신방)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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