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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 절터에서 문화답사 전통 되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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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6-05 09:36 조회18,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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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은 사학과의 답사 전통이 졸업동문들에게서 되살아나 가족동반 추억의 역사여행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답사여행은 6월 2~3일 이틀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전나무숲길과 경기도 영릉, 신륵사, 고달사 절터(址)로 이어져 사학과만의 특별한 추억을 되살렸습니다. 참석자들은 최병찬(73 사학), 이정수(81 사학) 동문과 가족, 김정기(84 사학), 이창섭(84 국문), 박찬희(88 사학), 조경식(88 사학) 동문 그리고 답사여행의 궂은일을 도맡는 최윤식(85 사학)-김수정(86 수학) 동문 부부와 자녀 등 11명이었습니다.

 

이들은 1박2일간 서울을 기준으로 동쪽에 터잡은 주요 문화유적을 두루 섭렵하고, 귀농해 오골계를 키우는 동문과 반가운 재회를 했습니다. 경기도 여주 고달사(高達寺) 터를 비롯한 몇몇 장소는 20,30년 전 학창시절 답사 때 찾았던 추억 가득한 유적지였고, 두텁게 쌓인 세월의 더께를 느꼈습니다. 일행은 그곳 절터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옛 기억을 회고했습니다.

 

첫째 날은 강원도 탐방이었습니다. 토요일 오전 8시30분 동문회관에 모여 20인승 버스로 출발했습니다. 오대산의 월정사(月精寺)와 그 말사(末寺)이자 이웃한 상원사(上院寺)를 찾았습니다. 화재와 전란으로 중창을 거듭한 월정사에는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적광전(寂光殿)과 고려 초기 작품인 팔각 구층석탑(국보 48호, 높이 15.2m)이 돋보였습니다.

 

경내에 건립한 성보박물관에서는 △석조 보살좌상(보물 139호) △목조 문수동자 좌상(국보 221호) △상원사 동종(국보 36호)을 관람했습니다. 동종은 신라 성덕왕(725년) 때 주조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범종(梵鐘)이며, 종 표면에 구름 위 하늘을 날면서 옷깃을 흩날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비천상이 아름답게 양각됐습니다.

 

유물해설은 도자기를 전공했고 박물관 학예사를 지낸 박찬희 동문이 맡아, 수시로 묻는 온갖 궁금증을 충분히 해소해줄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박 동문은 “오대산은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 신앙의 발생지로, 중국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고 역시 문수신앙의 성지로 불린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오대산(五臺山)이란 이름을 붙인 까닭은 동대(東臺) 관음암, 서대 수정암(또는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중대 사자암 등 다섯 암자를 아우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행은 일주문부터 월정사 입구까지 조성한 천년 전나무 길을 거꾸로 걸었고, 가슴속을 상쾌하게 뚫는 숲향을 한껏 들이마셨습니다.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 아래 위치한 상원사까지는 더 올라야 했습니다. 상원사로 오르는 도중 전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부도(浮屠 고승들의 사리를 안치한 탑) 22기를 보았고, 신설골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섶다리를 밟고 건너보기도 했습니다.

 

전통사찰 상원사는 고승을 많이 배출한 절이었습니다. 자장, 한암, 탄허, 만화 스님이 대표적인 수행자였습니다. 문수전(文殊殿) 계단 아래엔 특이하게도 고양이 석상(石像) 1쌍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선시대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려 할 때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옷자락을 물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는데, 곧 법당 안에 숨어 있는 자객이 발각됐다는 일화를 기려 세운 것입니다.

 

또한 영산전(靈山殿) 앞마당에는 심하게 파손돼 탑신(塔身)과 층수도 알 수 없게 된 석탑이 고졸한 모습으로 천년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기단과 탑신에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구름, 용, 연꽃이 조각돼 있었고, 양각된 문양을 만져보는 내내 탑에 얽힌 사연에 궁금증만 더했습니다.

 

갑자기 산등성에 비구름이 몰려들었고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자 서둘러 하산을 결정했습니다. 비로봉 정상으로 더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적멸보궁(寂滅寶宮) 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뤘습니다. 1박하기로 정한, 귀농한 김정기 동문의 집으로 가려고 버스에 오르자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김 동문은 강원도 평창 계곡에서 ‘닭치는 농부’(www.silky.kr)로 유명했습니다. 김 동문이 키우는 오골계는 한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특이한 닭입니다. 보통 오골계와 다르게 깃털이 흰색이며, 마치 봉황처럼 머리 위에 깃털이 봉긋 솟아나 백봉(白鳳) 오골계라 불립니다. 김 동문은 천연사료, 효소사료를 먹인 백봉 오골계를 건강한 먹거리(LOHAS 제품)로 키워 도농 간 직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신세진 흙집 또한 김 동문이 손수 지었습니다. 늘 마음처럼 살고 싶은 집이란 뜻에서 연심재(然心齋)라 이름붙인 흙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푹 삶은 오골계 백숙과 장작불 돌판에 구운 삼결살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조경식 동문이 장작을 팼고, 그 덕에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비추는 달빛을 조명삼아 야외에서 벌인 ‘장작불 삼겹살 파티’는 운치를 더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6시, 일찍 기상해 TV를 시청했습니다. 때맞춰 KBS 2TV에 방영된 ‘싱싱 일요일’에 김 동문이 백봉 오골계를 키우는 주인공으로 등장, 그의 성실한 귀농생활이 전파를 탔습니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TV프로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오골계와 초란을 주문하는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김 동문의 농장 부근에는 산야초로 효소를 담그는 농부가 거주하는데, 그분은 이주영(82 사학) 동문의 부친으로 목회자(목사) 생활을 마치고 귀농했고, 왕래하며 김 동문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둘째 날 답사는 귀경길에 맞춰 여주 일대를 돌아보았습니다. 먼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를 합장한 무덤인 영릉(英陵)을 찾았습니다. 금천교, 홍살문(紅箭門)을 굽이돌아 정자각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해설을 경청했습니다. 유년을 여주에서 살았던 박찬희 동문은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감 넘치게 영릉을 ‘해설’했습니다.

 

박 동문은 “북성산(北城山)에서 흐른 지맥이 왕대리를 지나 영릉 터로 이어지는데 풍수지리상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며 “세종의 능을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덕에 조선이 100년간 더 명맥을 연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일행은, 중요 문화재가 많아 볼 것이 수두룩한 신륵사(神勒寺)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극락보전과 아미타삼존상, 다층석탑, 구룡루(九龍樓), 조사당(祖師堂), 명부전 시왕상(冥府殿 十王像), 고려말 승려 나옹의 사리를 모신 부도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多層塼塔) 등을 두루 살폈습니다.

 

그러나 신륵사 맞은편 강변을 보고서는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강폭이 넓어지자 수상레포츠 소리만 요란했고, 맞은편 강기슭은 모래사장이 간 곳 없고 온통 콘크리트 더미로 변한데다 거대한 호텔이 완공을 앞두고 군림하듯 버텨선 풍광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마지막 목적지인 고달사지(高達寺址)에 도착한 때는 땡볕 따가운 오후 2시 넘은, 한나절이었습니다. ‘지혜의 눈’ 혜목산(慧目山) 자락에 자리한 고달사 절터는 면적이 4만㎡ 넘었습니다. “우와, 엄청나다, 정말 장관이다” 하는 소리가 절로 새나왔습니다. 1998년 발굴이 시작돼 현재 6차 발굴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신라 경덕왕(764년) 때 창건됐는데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철불(鐵佛)이 올려 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石佛座) △우여곡절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쌍사자 석등을 바치고 있는 화사석(火舍石)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 △석조(石槽) 등이었습니다.

 

일행은 기억을 되살려 절터 뒤편 언덕 위로 올랐습니다. 국보 4호인 승탑(僧塔)과 이 탑의 카피본(cpoy本)에 해당하는 원종대사혜진탑과 조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높이 3.4m 승탑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고려시대 초기 양식을 띤 승탑에는 선녀, 연꽃, 코끼리, 거북, 용, 구름 무늬와 사천왕상을 새겼는데 솜씨가 웅혼하고 담대했으며,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했습니다.

 

답사를 마친 일행은 고달사 터 입구의 수령 600년의 고목 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언제 폐사됐는지조차 불분명한 고달사의 찬란하던 옛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혜목산이 병풍처럼 감싸안은 아늑한 절터에 꿩소리가 자주 울렸고, 고목 줄기에 구멍을 파서 새끼를 키우는 후투티가 열심히 벌레를 잡아 날아왔다 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늘 한점 없이 햇살 가득한 절터 곳곳엔 한낮의 광자(光子)가 무진장 쏟아졌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려던 일행은 행여 후투티 어미새가 성가셔 할까봐 서둘러 자리를 파했습니다.



<월정사 적광전 앞, 고려 초기 작품인 팔각 구층석탑(국보 48호, 높이 15.2m)을 감상하는 답사팀>


<상원사 문수전(文殊殿) 계단 아래 세운 고양이 석상(石像) 1쌍의 모습>


<천둥소리 요란해지기 전 상원사 마당에서 찍은 단체사진>


<상원사 영산전(靈山殿) 앞, 심하게 파손된 석탑이 고졸한 모습으로 천년을 버티고 있었다>


<탑신에 양각한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불상을 만져볼수록 탑에 얽힌 사연에 궁금증 더했다>


<오대산 계곡을 가로질러 놓은 섶다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는 모습>


<닭치는 농부 김정기(84 사학) 동문이 손수 지은 흙집 연심재(然心齋)>


<연심재 실내. 굽은 소나무를 그대로 살려 기둥을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맡겼다>


<하룻밤 묵고 떠나기 직전, 아쉬움을 달래며 찍은 단체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닭치는 농부 김정기 동문>




<백봉 오골계 계사(鷄舍)와 수많은 병아리>


<영릉 정면 멀리 보이는 북성산(北城山). 이 산에서 흐른 지맥이 왕대리를 지나 영릉 터로 이어지는 덕분에 영릉은 풍수지리상 조선 최고의 명당이 되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를 합장한 무덤인 영릉(英陵)을 배경으로 촬영. 일행 바로 뒤로 장명등이 보이고, 그 뒤로 혼유석 1쌍과 양옆에 세운 망주석 1쌍이 배치됐다. 망주석에는 다람쥐 모양의 세호(細虎)를 새겨놓았는데, 박찬희(84 사학) 동문은 혼(魂)이 떠돌다 무덤을 찾는데 길잡이 노릇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미타삼존상을 모신 신륵사 극락보전과 다층석탑>


<신륵사 내 명부전 시왕상(冥府殿 十王像) 모습. 맨 오른쪽 고서를 머리에 이고 있는 분이 염라대왕이다>


<고려말 승려 나옹의 사리를 모신 부도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남한강변에 인접한 언덕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多層塼塔) 앞에서 박찬희 동문이 설명하는 모습>


<혜목산(慧目山)을 배경으로 자리한 고달사 절터의 고즈넉한 모습>


<덩그러니 남은 석불좌(石佛座). 철불(鐵佛)이 올려 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단한 조각술에 탄성을 부른 원종대사혜진탑비의 귀부와 이수>


<일행은 학창시절 추억을 되살리며 고달사 터 뒤 숲속에 숨어있는 승탑을 애써 찾아갔다>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승탑에는 아름다운 선녀상이 양각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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