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동우회 산행모임, 우이령을 사뿐히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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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9-26 19:33 조회14,8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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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주동문회 산우회(회장 75 철학 이효율)가 9월 산행으로 40년 넘게 출입이 통제되던 비포장 흙길 ‘우이령(牛耳嶺, 쇠귀고개)’을 넘었다. ‘막바지 여름’이 기승을 부리던 9월 4일 오전, 민동 산우회원들은 숲길로 이어진 우이령 고갯길 6.8㎞를 걸으며 ‘친근한 등산대회’를 마쳤다. 참석자는 노재익(77 경제), 장근주(78 화학), 안성철(81 경제), 남중현(82 사회), 이주섭(83 불문), 이창섭(84 국문), 김성화(85 화학), 황종규(85 경제), 이윤미(97 종교) 동문과 이창섭 동문의 자녀인 이재상(중2) 등 10명이었다.
이들은 휴일 아침 구파발역에 모여 버스를 타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에 도착한 뒤 본격적인 걷기에 나섰다. 우이령은 1968년 1·21사태 이후 40년 넘게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다가 2009년 많은 논란 끝에 개방된 곳이다. 현재 탐방객 수를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기에 사전 예약을 거쳐야만 탐방할 수 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울창한 숲과 맨발로 걷을 수 있는 흙길로 이어지는, 비교적 고르고 평탄한 고갯길이다.
산우회원들은 양주시 교현리에서 출발해 쇠귀고개를 넘어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1시간 30분에 걸쳐 천천히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완상했다. 김성화 동문을 비롯한 4명은 아예 맨발로 걸으며 흙길의 감촉을 느꼈다. 고이 보존된 건강한 생태계만큼이나 갖가지 나비가 꽃밭 사이를 날아다녔다. 생강나무, 국수나무, 물오리나무 등은 곳곳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북한산 상장능선이, 왼쪽으로는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오봉능선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난 조붓한 우이령 숲길을 따라 계곡물이 청량한 소리를 냈다.
숲 해설가 장근주 동문은 잠시 쉬는 짬에 떡갈나무 생태를 소개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이 동식물과 공존해 살아가야 하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이유를 씩씩하게 설명해 찬사를 받았다. 중간에 오봉(五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인근 군부대가 사용하는 유격훈련장을 지나 군 작전도로에 설치한 대전차 장애물을 지나니, 곧바로 우이동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송추에서 군 생활을 보낸 안성철, 이창섭 두 동문은 20년 전 힘든 훈련을 받던 바로 그 유격장을 보자마자 전율하다 이내 이성을 되찾고 뼛속까지 힘겨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대개 등산이 산꼭대기에 오르려는 정상 지향적이라면, 이번 산행은 발상을 바꾼 수평 성향의 둘레길이었다. 그래서인지 비 오듯 하는 땀을 흘리지 못한 게 다소 아쉬운 눈치들이었다. 이에 장근주 동문은 우스갯소리로 “산 정상에 못 미치면 등산객이고, 험준한 고봉을 정복하면 산악인인데 우리는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이니 오늘은 산우회가 아니라 향락객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 연장자인 김재익 동문이 제안해 우이동 계곡에 자리 잡은 식당에 들어가 뒤풀이를 거나하게 열었다. 계곡물에 발 담그자 버들치 치어들이 떼로 몰려와 발등과 발가락을 간질였다. 20여 통의 막걸리가 순식간에 동나자, 산객(山客) 본연의 호연지기가 발동했다. 10월 산행을 지리산으로 가자는 제안이 나왔고, 재청(再請)이 이어졌다. 즉석에서 동의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요란했다. 어느덧 뒤풀이는 인근 술집으로 옮겨 2차로 이어졌다. 민주동우회 산우회의 10월 산행은, 우이동 계곡에서 의기투합한 동문들의 호방한 목소리에 섞여 어느덧 지리산으로 기정사실이 됐다.
글·사진=이창섭(84 국문) 사무국장
이들은 휴일 아침 구파발역에 모여 버스를 타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에 도착한 뒤 본격적인 걷기에 나섰다. 우이령은 1968년 1·21사태 이후 40년 넘게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다가 2009년 많은 논란 끝에 개방된 곳이다. 현재 탐방객 수를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기에 사전 예약을 거쳐야만 탐방할 수 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울창한 숲과 맨발로 걷을 수 있는 흙길로 이어지는, 비교적 고르고 평탄한 고갯길이다.
산우회원들은 양주시 교현리에서 출발해 쇠귀고개를 넘어 우이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1시간 30분에 걸쳐 천천히 걸으며 수려한 경관을 완상했다. 김성화 동문을 비롯한 4명은 아예 맨발로 걸으며 흙길의 감촉을 느꼈다. 고이 보존된 건강한 생태계만큼이나 갖가지 나비가 꽃밭 사이를 날아다녔다. 생강나무, 국수나무, 물오리나무 등은 곳곳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북한산 상장능선이, 왼쪽으로는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오봉능선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난 조붓한 우이령 숲길을 따라 계곡물이 청량한 소리를 냈다.
숲 해설가 장근주 동문은 잠시 쉬는 짬에 떡갈나무 생태를 소개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인간이 동식물과 공존해 살아가야 하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이유를 씩씩하게 설명해 찬사를 받았다. 중간에 오봉(五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인근 군부대가 사용하는 유격훈련장을 지나 군 작전도로에 설치한 대전차 장애물을 지나니, 곧바로 우이동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송추에서 군 생활을 보낸 안성철, 이창섭 두 동문은 20년 전 힘든 훈련을 받던 바로 그 유격장을 보자마자 전율하다 이내 이성을 되찾고 뼛속까지 힘겨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대개 등산이 산꼭대기에 오르려는 정상 지향적이라면, 이번 산행은 발상을 바꾼 수평 성향의 둘레길이었다. 그래서인지 비 오듯 하는 땀을 흘리지 못한 게 다소 아쉬운 눈치들이었다. 이에 장근주 동문은 우스갯소리로 “산 정상에 못 미치면 등산객이고, 험준한 고봉을 정복하면 산악인인데 우리는 고개 하나 넘었을 뿐이니 오늘은 산우회가 아니라 향락객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 연장자인 김재익 동문이 제안해 우이동 계곡에 자리 잡은 식당에 들어가 뒤풀이를 거나하게 열었다. 계곡물에 발 담그자 버들치 치어들이 떼로 몰려와 발등과 발가락을 간질였다. 20여 통의 막걸리가 순식간에 동나자, 산객(山客) 본연의 호연지기가 발동했다. 10월 산행을 지리산으로 가자는 제안이 나왔고, 재청(再請)이 이어졌다. 즉석에서 동의를 표시하는 목소리가 요란했다. 어느덧 뒤풀이는 인근 술집으로 옮겨 2차로 이어졌다. 민주동우회 산우회의 10월 산행은, 우이동 계곡에서 의기투합한 동문들의 호방한 목소리에 섞여 어느덧 지리산으로 기정사실이 됐다.
글·사진=이창섭(84 국문)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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