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이지상(78 정외) 서강학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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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범석 작성일11-06-13 16:54 조회26,2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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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학보 581호에 이지상(78 정외) 동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서강학보의 양해를 얻어 인터뷰 기사와 사진을 게재합니다.
사람과 사람 <여행 작가 이지상>
20여 년 동안 여행을 업으로 삼아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여행 작가 이지상 동문. 그는 본교 정치외교학과 87학번 동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활동 중인 몇 안 되는 1세대 여행 작가로 독자들로부터 ‘오래된 여행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지상 동문의 여행, 아니 삶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청년, 언제나 여행처럼 오늘을 살라 아직 온 사회가 어수선하던 80년 대, 빡빡머리 고등학생은 히피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가벼운 옷차림과 마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었다. 오죽하면 수업 도중 일명 ‘땡땡이’를 치고 무작정 “어떻게 하면 외국에 나갈 수 있냐”며 시내에 위치한 여권 담당 공관을 찾아가기까지 했을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고 어느새 넥타이부대의 일원이 된 소년은 타이완 행 비행기에 앉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을 동시에 맛보고 있었다. 1988년, 만 30세 이상 여행 자유화가 선포된 직후였다.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다
“첫 해외 방문이었던 타이완 배낭여행은 저에게 쇼생크탈출과 같았어요. 30년 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다른 세상을 마주한 순간은 마치 달나라에 도착한 느낌이었죠.”
첫 여행에서 느낀 자유로움에 매료된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짐을 싸 다시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을 떠나 고생길로 들어서려는 그를 말렸지만 이미 마음은 현실을 떠나있었다.
“우리 존재를 뛰어넘는 무한한 세계를 만나면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돼요. 거대한 대자연 앞에 서거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이 바로 그 때인데,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죠.”
그로부터 십 년 정도는 그동안 모아두었던 자금과 틈틈이 한국으로 돌아와 번 돈으로 중국, 인도 등 일부러 물가가 싼 지역을 골라 여행을 다녔다. 무조건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시작한 일도 시간이 지나다보니 회의감이 오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장의 섭리에 맞춰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오른 것이 바로 여행 작가라는 직업이에요. 당시에는 생소했던 분야라 두렵기도 했지만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두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더 컸으니까요.”
온 몸으로 느끼고 글로 표현하는 여행
20년 경력의 여행 작가인 그는 단 한 번도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애초에 작가라는 직업과 작품 생산을 목표로 여행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6개월 여정으로 떠난 동남아시아 배낭여행 중에는 간단한 일기도 쓰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던 것이다.
“그 다음 인도 여행을 떠났을 때부터 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매일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순간마다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을 기록해두고 싶었거든요.”
이후 이 작가는 지금까지 매일 두 시간 정도씩 일기 쓰는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8~9개월 일정으로 여행을 떠나면 일기장 다섯 권 정도가 나오는 편. 이와 같은 습관이 별다른 학습 없이도 매끄럽게 여정과 그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몇 년 전에는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졌던 존재론적 질문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본교 대학원에서 다시 사회학 공부를 시작, 학위를 받기도 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주로 구도에 초점을 맞준다. 사진 또한 배워본 적 없다는 그는 “얼마 전부터는 사진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개척해보고 싶은 욕심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나라, 인도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방문한 국가의 수나 방문 횟수를 세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대략 추정한 방문 국가 수는 60여 개 국. 워낙 많은 지역을 여행했고, 그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였냐는 질문에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의 고민 끝에 언급한 곳은 바로 인도. 그는 인도를 ‘잣대를 가지고 바라볼 수 없는, 예측불허의 세계’라고 표현했다. 길거리에는 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갠지스강 한쪽에선 신을 섬기는 종교의식이, 다른 한 쪽에선 시체를 씻는 장례의식이 펼쳐지는 등 한 공간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아직 모든 것을 신과 함께하는 인도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합리성이 한 번에 깨져버려 너무도 고통스러웠어요.”
처음 서너 달은 ‘내가 여기 왜 왔지’라는 생각에 힘이 들기만 했지만, 어느 순간 붙잡아두던 마음을 놓아버리자 자연스레 편한 시각으로 인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첫 번째 인도 여행은 아홉 달 동안이나 이어졌고, 이후 여섯 번이나 더 찾았다고 한다.
“일상에 묶여 삶이 빡빡해질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인도랍니다. 혼돈 속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자꾸 절 그 곳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광화문 한 미술관에서 만난이지상 작가 편한 옷차림 그리고 카메라와 함께 여행을 즐기는 모습 (사진제공 이지상)
Life is journey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배우는 시기이자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 때 자기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여행이죠.”
여행 도중에는 누군가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하고, 숱하게 고생을 겪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의 지평 넓히기’가 실현된다. 이것이 그가 여행에 부여하는 최고의 의미로, 지금 이 순간에 한정짓지 않고 세상을 긴 시간의 범위 안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 작가는 독자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제 도착해 오늘 머물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살라”고 외치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여행이란 삶의 여정에 동참하길 권한다. 아직 인생에 있어 겨우 수학여행에 해당하는 여정만을 겪어본 우리가 ‘오래된 여행자’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상당한 의미에서의 모험일 테니 말이다.
글·사진 이윤서 기자 hannahlee@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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