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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 31주기 추모제, 살아 꽃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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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6-08 09:11 조회10,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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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주기 김의기(76 무역) 열사 추모제 ‘그는 살아서 꽃이 되었네’가 2004학번 주도로 경건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5월 13일 추도식과 이어진 추모문화제에는 동문과 재학생 100여명이 참석해 김의기 열사의 뜻을 기리고 분향, 헌화했습니다.

 

오후 5시 로욜라 동산 옆 ‘의기촌’에서 엄숙하게 거행된 추도식에는, 올해 처음으로 재단이사장 유시찬 신부가 참석해 자리를 함께 했으며, 김의기 열사의 유족으로 김의숙, 김주숙 두 누나가 참석했습니다. 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만륜,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박재민, 민족민주 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박선하 씨가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습니다.

 

추모문화제를 준비한 2004학번을 대표해 문성수(사학) 준비단장은 “두 달 가까이 준비하면서 많은 선배들을 만나 뵈었고, 그때마다 의기 형이 서강인들 마음에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의기 형 이름으로 이 자리에 모인 선후배, 동기 모두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동우회 이훈(84 사학) 회장은 “의기비 앞에 서니 의기 형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다시 묻는 것 같다”며 “살아남은 사람의 소임을 일깨우는 우리 삶의 죽비 같은 외침을 환기하면서, 2011년에 맞는 5.18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는 일을 그 작은 시작으로 삼자”고 말했습니다. 분향, 헌화 시간에는 사회를 맡은 민주동우회 여환걸(92 전자) 사무국장의 주문에 맞춰 학번대별로 일일이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하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이어 청년광장에서 진행한 추모문화제는 무척 다채롭게 꾸며졌습니다. 손영진(04 사학) 동문이 사회를 맡았는데 여느 해보다 많은 재학생들이 참가해 의기정신을 기리고, 힘찬 율동과 멋진 노래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사회과학대와 커뮤니케이션대학의 문예패가 펼친 활발한 율동과 군무(群舞)에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클래식 기타동아리 현우회, 노래동아리 맥박의 공연도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재학생을 대표해서는 김준한 총학생회장과 옥기원 대학원총학생회장이 연설했으며, 새내기 대표로 오경택(11 경영) 동문이 나서 ‘의기 형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오 동문은 “역사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데…, 의기 형의 외침이 점차 잊혀져가 안타깝고, 5월 광주 정신이 흩어지는 듯해 애통하다”면서 “방학을 맞으면 5.18 묘역을 다시 찾아 인사드리겠다. 살아서 꽃이 된 형이, 5월을 맞아 다시 활짝 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동문을 대표해서는 맥박OB팀과 탈반 OB모임인 마구잽이패가 나서 합창과 사물놀이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하보경, 하용부 선생의 개인북춤과 밀양오북춤을 참고로 마구잽이 동문들이 함께 창의적으로 만든 '마구잽이 북춤'을 3명의 마구잽이패가 북을 매고 힘차게 추는 모습은 추모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일일주점을 겸했기에 막걸리와 안주가 준비됐고, 밤늦도록 선후배 간의 진지한 대화가 곳곳에서 이뤄졌습니다. 선배 가운데 박종부(78 화공) 동문은 무대에 올라 김의기 열사에 관해 ‘잘못된 인식’ 하나를 교정해주었습니다. 김의기 열사가 광주학살을 목격했고,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서울로 올라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고 투신한 과정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증언을 소개하면, 광주항쟁에 참여한 윤기현(62, 동화작가) 씨는 최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경북 영주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농민운동을 하면서 연합개혁교회(URC) 농촌부 일을 하던 김의기가 5월 19일 ‘함평 고구마 투쟁 2돌 행사’에 참가하려고 광주에 왔고, 북동성당에서 그를 만났다. 의기는 그때 광주시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 그에게 ‘광주가 고립될 수 있다. 이 고립을 풀어야 한다. 서울이나 다른 쪽으로 확산시켜야 하니 너는 올라가서 그 역할을 맡으라’고 했고 의기는 서울로 갔으나 5월 27일 광주가 진압되자 광주시민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고 기독교회관에서 유인물을 뿌리며 투신한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광주지역 바깥에서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라고 요구한 최초의 희생이었습니다.

 

한편, 추모문화제 준비단은 앞서 △5월 2일 <의기신문>을 만들어 재학생들에게 배포했고 △9일에는 영화 <오월애(愛)>를 상영하고 감독과 대화 자리를 마련했으며 △10일 대형버스와 승합차를 만석으로 채워 재학생들과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김의기 열사 묘소를 찾았습니다. 이 가운데 101분짜리 다큐 영화 <오월애>는 1980년 5월 도청을 지킨 시민군과 시민들에게 주먹밥 싸준 아주머니, 지난날을 반성하며 살고 있는 계엄군 소대장 등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40여명을 일일이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로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돌아보는 역작으로, 개봉 전에 먼저 상영됐습니다.

 

아래는, 의기촌에 세워진 김의기 열사 추모비에 새긴 문구와 80년 5월 뿌린 유인물 전문입니다.


고(故) 김의기 열사의 삶

김의기 열사는 1959년 경북 영주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76년 서강대 무역학과에 입학하였다. 열사는 청년시절 모순된 사회현실을 보면서 농민운동과 학생운동에 헌신하였다.
열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하고 역사의 진실을 온 국민에게 밝히고자 1980년 5월 30일 종로 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투신 산화하였다. 이에 열사의 정의로운 뜻과 애국적 삶을 기리기 위해 여기 의기촌에 추모비를 세운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우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팍과 머리를 짓이기어 놓으려 하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 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년 동안 살벌한 총검 아래 갖은 압제와 만행을 자행하던 박 유신정권은 그 수괴가 피를 뿌리고 쓰러졌으나 그 잔당들에 의해 더욱 가혹한 탄압과 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동안 허위적 통계 숫자와 사이비 경제이론으로 민중의 생활을 도탄에 몰아넣은 결과를 우리는 지금 일부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제외한 온 민중이 받는 생존권의 위협이라는 것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유신잔당들은 이제 그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면서 개처럼, 노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자유시민으로서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살 것인가? 또다시 치욕의 역사를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조상이 될 것인가?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 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동포여, 일어나 유신잔당의 마지막 숨통에 결정적 철퇴를 가하자.


일어나자. 일어나자. 동포여! 내일 정오 서울역 광장에 모여 오늘의 성전에 몸바쳐 싸우자. 동포여!


1980년 5월 30일 오후 4시 35분 김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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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 열사 추도식에서 첫 술을 올리는 민주동우회 이훈(84 사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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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의기 열사의 유족인 두 누나가 6남매 막내였던 동생 영전에 제를 올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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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번대 별로 단체 추념을 하는 모습. 먼저 70년대 동문들이 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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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기 열사 추도식과 추모문화제에 처음으로 참석한 유시찬 이사장이 의기정신을 기리는 말을 하자 참석한 동문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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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들의 힘찬 율동과 군무(群舞)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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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문화제에 참석한 84학번 여자동문들이 재학생들과 의기주점에서 포즈를 취했다. 맨 오른쪽이 박영숙(84 사학) 동문이며, 바로 옆의 딸이 2011학번으로 자연계열에 합격해 모처럼 모녀동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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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0년대 학번들이 의기 형 누님들이 앉은 헤드테이블로 찾아와 인사하고 술잔을 부딪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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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들의 율동은 힘차고 날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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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동아리 현우회가 의기문화제를 위한 축하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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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부(78 화공, 맨 왼쪽) 동문이,5.18 당시 광주에서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는 사명감을 갖고 서울로 올라온 김의기 열사의 80년 5월 행적을 설명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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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진군을 알리는 마구잽이 패의 북춤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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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생 노래동아리 맥박 현역들이 공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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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박 공연에 환호하는 참석자들. 청년광장에 천막을 깔고 의기주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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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박 OB팀들이 나섰다. 멋진 화음과 힘찬 노래소리가 청년광장에 쾅쾅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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