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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에 사제 서품, 나창식(94사학)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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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1-03-25 10:56 조회22,5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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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살웃음 지으며 "새 신부 맞다니까요"

 

“헌 신부 같아도 새 신부 맞습니다.”

 

올해 2월 8일 사제서품을 받고 서울 대림동 성당 보좌신부로 갓 부임한 나창식(94 사학) 신부가 요즘 자주 하는 인사말입니다. 함께 서품을 받은 신부들의 나이가 30대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다 넉살 좋은 웃음까지 갖췄으니 ‘헌 신부’라고 오해할 만도 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2002년 대학 졸업 후 나 신부가 취직했던 곳은 대학로에 위치한 동성고등학교였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학교입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쳤습니다. 중학생 시절 품게 된 역사 선생님의 꿈을 이룬 셈이었습니다.


호주 여행 때 성직자 삶 곁에서 지켜봐

“중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 선생님이었어요. 무척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짝사랑하던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두꺼운 책을 들고 왔습니다. 바로 故 이기백 서강대 명예교수의 <한국사신론>이었다. 아버지를 졸라 한자로 가득한 그 책을 샀습니다. 자전을 찾아 한자 한 자 독음을 달아가며 읽었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역사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말이죠.”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은 희망과 ‘서강학파’를 동경하던 마음 덕분에 1994년 서강대 사학과에 무사히 입학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이 되려면 사범대에 가야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웃음)”

 

청소년 시절 성당에서 복사단원과 성가대원으로 활동한 이력에 더해, 대학생이 되어서도 7년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주일학교는 방학 때 더 바쁘거든요. 그 덕에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갔어요.” 그러다가 ‘이대로 졸업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 2000년 9월 호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수중에 단돈 60만원 밖에 없었기에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틈틈이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호주에서도 주말마다 근처 성당으로 미사를 보러 갔습니다. 한국에서 온 낯선 청년을 피터 그라스비(Peter Grasby)신부는 각별히 보살펴주었고, 매주 서너차례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가까워졌습니다. 그 시간은 성직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런 삶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거죠.”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호주 일주여행에 도전했습니다. 여행이 마무리돼 갈 무렵 아버지와 전화통화한 지 오래됐다고 생각될 즈음 형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좋으셔. 빨리 돌아와.”

부랴부랴 귀국해서 집에 도착했더니 아버지는 전에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알고보니 호주에 있던 도중 아버지는 급성 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큰 마음을 먹고 떠난 아들의 여행을 망칠까 싶어서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귀국하고 열흘 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1년 2월의 일이었습니다.

 

“그 일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차츰 마음 속에 다른 길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이 제 궤도에 접어들었을 때도 다른 길은 희미해지기는커녕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사제나 교사나 가르치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30년 동안 계속하면 행복할까 스스로에게 물었죠. 답은 NO였습니다.”
 
그때부터 신학대 입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이같은 계획을 알리지 않았던 탓에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당시 동성고에도 가톨릭 사제 지망생이 셋이나 있었는데, 시험장에서 그만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자기들 응원하러 온 줄 알더라고요. 시험 잘보라고 격려하고서는 저도 다른 방에서 시험 봤죠.(웃음)” 함께 시험을 치른 제자 가운데 두 명과 2004년 봄 신학대에 같이 입학했습니다.


“기도하려면 체력 뒷받침 필요해요”

7년 간의 신학대 생활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물음에 기도가 제일 힘들었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거 아세요? 기도도 체력이 필요하더라고요.(웃음)”

서품을 받을 때 사제들은 저마다 성구(聖句)를 하나씩 받습니다. 나 신부가 받은 성구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립보서 2장 5절)’였습니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니 좋은 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제들보다 뻔뻔하게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 신부는 “하하하” 크게 웃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제의 길을 택한 나 신부는 모든 것을 가진 듯 여유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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