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타임스-학보 50년을 기록하고 자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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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2-23 16:06 조회13,6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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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8할이 서강학보였다”
개교 50주년을 맞은 2010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뜻 깊은 행사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년사 발간 기념 송년회’가 12월 20일 저녁 동문회관 2층에서 열렸습니다.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는 서길자(72 국문, 서강타임스 13기) 동문은 좋아하는 시인 미당 서정주 시를 원용하며, 서강타임스(서강학보 前身) 창간 50년에 얽힌 소회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강하면, 일단 가슴이 뛰고 그리고 나면 마음이 아프다. 서강타임스 시절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 젊음을 바치며 승부수를 던진 곳이자 첫 여성 편집장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곳이 서강타임스였지만, 나를 키운 건 8할이 신문사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창학 50년 서강사와 한국 현대사를 낱낱이 기록한 서강타임스-서강학보의 50년을 되돌아보고, 개인에게 신문사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갈무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아울러 퇴직기자들이 다시 펜을 들어 50년 동안 들인 헌신과 열정, 분노와 희생을 글로 쓰고 책으로 엮어 펴낸 것을 자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학창시절 기자를 거친 수많은 동인 가운데 60여명이 모였고, 1960년 1기부터 2010년 53기까지 50년 역사, 53기로 이어진 도저하고 유장한 서강필맥(筆脈)의 역사를 느끼며, 모두 감격하고 가슴 벅차했습니다. 창간, 폐간, 복간, 검열, 기자 총사퇴, 배포중지, 몰수, 신문 소각, 주간발행, 매체혁신, 지령 500호, 판형변경 등등 굴곡진 현대사에 맞서 당당하게 진군한 타임스-학보 50년이 각자의 머리속에 주마등처럼 흐르는 듯했습니다.
박주필(83 정외) 서강타임스-서강학보 동인회장은 “젊은 날의 땀과 혼이 서린 편집국과 정든 노고산 언덕을 떠나면서 우리는 모두 원고를 마감했는데, 2006년 50년사를 기록하고자 다시 뭉쳐 지난 4년간 원고지 앞에 앉기를 11번, 일어서기를 10번이나 하며 원고마감 시간과 씨름했다”면서 “여러 차례 포기와 도전을 거듭하면서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년의 역사를 기록한 <그대 흘린 땀이 세상을 이기리라>를 펴내게 돼 무척 감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대 흘린~>은 지난 2006년 이진수(79 영문, 20기), 한종우(81 사회, 22기) 전직 서강타임스-서강학보 동인회장과 박주필, 이창섭(84 국문, 26기), 황호곤(87 철학, 29기), 권경률(90 사학 33기) 동인이 모여 50년사 발간을 모의(?)하고 기획했으며, 약 4년간 우여곡절을 거치다 제작이 늦춰지는 가운데 조광현(88 경제, 30기, 50년사 발간위원장) 동인을 중심으로 2000년대 학번 동인들이 합류해 실무를 도맡으며 연내 발간을 서두를 수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1984년 4월 개교 24주년 기념해 양성우 시인이 쓴 시(아아, 그대 못박힌 두 손 위에) 중 ‘그대가 뿌린 씨앗이 어둠을 뚫고,(…) 그대 흐린 땀이 세상을 이기리라’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50년사가 나오기까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동문들, 1993년 결성한 동인회를 이끌어온 역대 회장들에게 공로패를 수여했습니다. 동인회 초대 회장 권종순(74 경제, 15기) 동문과 이진수, 한종우 전 동인회장이 패를 받았고, 작고한 태양훈(71 물리, 12기) 동문을 대신해 참석한 친동생에게 패를 전달했습니다. 이어 유병렬(64 경영, 5기), 조광현 동문에게도 공로패를 주었습니다. 방미 중인 이한일(60 경제, 1기,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주년 기념사업 회장) 동문은 귀국하는 대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50년사 발간 실무를 도맡아 오랜시간 구슬땀을 흘린 조광현(88 경제, 30기, 50년사 발간위원장, 사진 왼쪽) 동인에게 공로패를 주는 박주필(83 정외) 동인회장>
행사를 축하하고자 친히 참석한 이종욱 총장(66 사학, 7기)은 “대학신문사에 합격해 처음으로 쓴 기사가 교내에 공중전화기 설치를 촉구하는 것이었는데, 학교당국이 바로 공중전화기를 놔줘 놀랐고 ‘야 기자가 대단한 것이구나’ 하고 감격한 기억이 난다”면서 “타임스-학보는 내 고향이자, 서강의 총체성을 탐구하고 서강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진지한 곳이었다. 총장이 된 지금도 서강학보에 거는 기대는 똑같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 체류 중이라 참석하지 못한 기념사업회 회장 이한일 동문은 영상 축하메시지를 보내 남다른 감회를 밝혔습니다. “꼭 참석하고픈 자리였는데 못가서 죄송하다. 60년대 동문들이 서강타임스라는 묘목을 심었다면, 70, 80, 90년대 동문들이 구슬땀을 흘려 거목으로 키웠다. 그러나 50년 역사에 이를 때까지 파란만장했다고 들었다. 외부에서 폭풍이 몰아쳐 가지가 부러지고, 때론 뿌리까지 뽑히는 엄혹한 시절을 거쳤다. 그러면서도 50년 풍상을 견뎌냈다.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훗날 서강타임스-서강학보 창간 100주년 때는 우리 학번들이 없을 것이다. 더 알찬 신문을 만들어 옹골찬 100년사를 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날 행사에서 모든 참석자들의 눈길을 붙잡은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년 동영상을 보는 장면. 정규영(90 경제, 33기) 동문이 만든 영상은 ‘우리에게 서강타임스-서강학보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젊은] [열정] [사랑] [우정] [동지] [눈물] [기쁨] [환희] [고향] [술]이었고 [미래]’라는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1기로 훗날 서강학보 주간교수를 맡았던 엄정식(60 철학, 철학과 명예교수) 동문은 “기자, 데스크, 주간교수, 편집인까지 다 해봤는데 발행인만 못했다. 그러나 소원인 서강학보 발행인을 맡더라도 총장까진 하고 싶지 않다”며 구수한 입말로 행사장에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면서 “<그대 흘린 땀이 세상을 이기리라>는 책 제목에는 지난 시절 우리들의 영광과 동시에 고뇌가 담겨 있는 만큼 영원히 지속될 서강타임스-서강학보의 영광을 축원하고, 동시에 우리들과 함께 한 고뇌를 기억하자”는 철학적인 건배사를 외쳤습니다.
유병렬, 김호언(67 무역, 8기) 동문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고(故) 정붕조(66 경제, 7기), 김윤(71 영문, 12기), 태양훈 동문을 추억하며 그들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했습니다. 김준우(68 영문, 9기) 동문은 “어젯밤을 잠을 설쳤다. 졸업한 지 40년이 됐는데…, 세상을 부수면서 살고자 했는데…, 어느덧 회갑이 됐다. 오늘 이 자리에 오려고 한 까닭은 40년 전, 뜨겁게 살았던 그 시절 그 당시의 열정적인 가슴을 기억하고 싶어서다”고 술회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이승현(69 경영, 10기) 동문은 “31년째 경영학을 강의하는데 서강타임스 탓에 여태껏 돈을 벌지 못하는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그러나 행복하다. 못 벌어도 자~알 산다”고 말해 후배들의 동감을 얻었습니다.
이어 72학번부터 2010학번(53기)까지, 참석한 동문 모두가 일일이 자기소개를 하고 회한과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이진수(79 영문, 20기) 동문은 “군대는 자신이 복무했을 때가 가장 힘들고, 학보는 자신이 기자로 뛰었을 때가 제일 힘든 법”이라며 “서강타임스에 입사해 신구부에 의해 폐간 당하고, 나중에 서강학보로 제호를 바꿔 복간하면서 첫 편집장이 됐다가 1981년 총사퇴를 결의하고 80, 81학번들과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책에 실렸는데…, 당시를 회상하니 또다시 가슴이 아리다”고 말했습니다.
<참석자 소개 시간에 단체로 일어난 인사하는 81학번 동인들의 모습. 왼쪽부터 구춘권(정외), 한종우(사회), 이상철(정외), 이병하(국문) 동문>
이상철(81 정외, 22기) 동문은 “나와 서강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학보였다”면서 “졸업 뒤 학보사 행사 때만 학교를 찾았는데, 학보가 없다면 나의 대학생활은 없었다. 나는 정치외교학과였기보다 학보과(科) 소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창섭(84 국문, 26기) 동문은 “어찌보면 서강학보 50년 역사는 방패이자 창(槍)이었다. 정론을 지키는 방패였고, 곡필을 찌르는 창이고자 했다”면서 “정론직필을 지키려 헌신한 모든 동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행사가 열린 곳에서 한 달 전 결혼한 황호곤(87 철학, 29기) 동문은 “어서 2세를 낳아 20년 뒤 서강학보 기자를 시키겠다”고 말해 격려박수를 받았습니다. 김은하(90 국문, 33기) 동문은 수난의 시기 1992년, 기자들은 배척 당하고 학교와 주간교수 주도로 신문을 내는, 당시 편집국장이 21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대항하던 처절한 싸움의 현장에서 자신은 비겁하게 그만두었다는 그래서 미안하다는 회한을 고백하고, 끝내 말을 잇지 못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투지 넘치고 생기발랄한 2000년대 학번 동문 중에선 복학해 재학 중인 백재우(06 화공생명, 49기) 동문이 발언했습니다. “아버지가 서강 76학번이신데, 부친보다 16년 더 선배인 60학번 대선배님을 뵙게 돼 무한한 영광”이라면서 “서강학보 100주년이 되는 2060년에 엄정식 선배님처럼 자랑스럽게 이 자리에 다시 오겠다”고 말해, 참석한 동문들 얼굴에 한가득 함박웃음이 피어났습니다. 가장 막내인 한수연(10 사학, 53기) 동문은 “서강학보에 입사한 지 이제 한 달됐다”면서 “선배들처럼 좋은 기사 많이 써서 학보 창간 100주년 행사에 훌륭한 선배로 참석하겠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행사를 마무리하기 전 60학번부터 2010학번까지 참석한 모든 동문들이 일어섰다. 신문사 노래 즉, 신문사가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이날 발간한 50년사에는 신문사가1, 2를 비롯해 수습의 노래, 기자의 노래가 수록됐다.>
행사의 대미는 신문사가(新聞社歌)로 마무리했습니다. 참석한 모든 동문이 일어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사가를 불렀습니다. 서강타임스-서강학보사 기자들의 애환이 절절이 담긴 노랫말이 재학시절 겪은 추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신문사가 노랫말은 시대에 따라 기자들이 자주 들르는 술집이 달라지고, 감시 비판하는 대상(출입처)이 시대별로 조금씩 바뀌는 까닭에 1988년 본(本)을 정본으로 삼았습니다.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놀아라 놀아라 놀아라
놀아라 놀아라 놀아라
우리 신문사원 축구 선수다
우리 신문사원 축구 선수다
오늘도 때린다 학생처
내일도 때린다 총장실
우리 신문사원 권투 선수다
우리 신문사원 권투 선수다
오늘도 때린다 청와대
내일도 때린다 남산
우리 신문사원 막걸리 선수다
우리 신문사원 막걸리 선수다
오늘도 들린다 물레야
내일도 들린다 육교집
우리 신문사원 연애 선수다
우리 신문사원 연애 선수다
오늘도 꼬신다 이대생
내일도 꼬신다 숙대생
한편, 이날 행사에는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년 역사가 멋진 동영상으로 제작돼 선보였습니다. 모두의 눈길을 붙잡은 영상물은 정규영(90 경제, 33기) 동문이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서강타임스-서강학보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젊은] [열정] [사랑] [우정] [동지] [눈물] [기쁨] [환희] [고향] [술]이었고 [미래]다’는 것을 절제되고 압축된 영상미로 표현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쓰고 안치환 씨가 노래한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1960~2000년대까지 50년간의 동인들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펼쳐 보인 수작이었습니다. 영상을 보는 5분 15초 동안 참석한 동문들은 진한 감동과 벅차오르는 감격에 곳곳에서탄성을 질렀습니다. <우리가~> 노랫말을 옮깁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애타게 그리워 하는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했기에
이토록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나
꽃은 시들고 해마저 지는데
저문 바닷가에 홀로 어둠 밝히는 그대
그대와 나,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밤마다 별빛으로 빛나는가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흔들어 새벽을 깨우는가
꽃은 시들고 해마저 지는데
저문 바닷가에 홀로 어둠 밝히는 그대
그대와 나, 그대와 나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해뜨기 전에 새벽을 열지니…
공식 행사가 끝나고는 학교 근처 술집에서 새벽까지 통음하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박2일 간 이어진 뒷풀이는 새벽 5시쯤 파장을 선언했고, 그런데도 술 고픈 몇몇 주당 동문들은 오전 10시 30분까지 차수를 변경하며 서강타임스-서강학보 50년 영광에 정성 가득 담긴 술잔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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