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소식] 모든 후배에게 장학금 주고 싶습니다 - 영문과 23년 정성 모은 이태규 (81 영문) 한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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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0-14 01:32 조회13,0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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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장학금’으로 후배 사랑을 실천하는 동문 모임 ‘한결회’는 1984년 9월 결성됐다. 당시 영문과 재학생 13명이 X관(인문관) 301호에 모여 ‘앞으로도 한결같이 지내자’라는 뜻의 ‘한결회’를 창립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연을 맺은 ‘도원결의(桃園結義)’에 버금가는 한결회 ‘X관 결의’였다. 이태규(81 영문) 한결회장은 이들이 뭉칠 수 있었던 비결로 ‘비슷함’을 손꼽았다. “군 전역 후 복학한 81학번 동문들은 물론, 직장 생활을 하다가늦게 입학한 동문들도 함께 어울렸습니다. 비슷한 나이끼리 모인데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는 공통점도 있었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26년 동안 ‘한결회’가 끈끈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목표 설정과 회비 정책이었다. 이태규 동문은 “좋은 일을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해내기 위해 회비를 모으기 시작한 게 효과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984년 당시 한 달 회비가 2000원이었습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00원하던 시절이었으니 꽤 큰돈이었습니다. 그래도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모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2만원씩 모으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모은 돈이 어느덧 목돈에 이르자 한결회는 2007년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영문과 후배들을 돕는 장학금으로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장학금 수혜 자격은 독특하게도 ‘총 학점 평균이 B학점 이하인 재학생’으로 정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배려에서였다. ‘한결회’의 뜻은 서강동문장학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동문장학회는 장학생을 모집했고, 故 장영희(71 영문) 교수가 장학생 선발을 도왔다. 2007년 3월, 장학생 2명에게 각각 100만원이 등록금으로 건네졌다. ‘한결 장학금’의 시작이었다.
2010년 2학기까지 배출한 한결장학생은 총 8명이고 지원된 장학금은 800만원에 달한다. 누가 봐도 가슴 뭉클한 성과다. 그렇지만 ‘한결회’ 구성원들은 아쉬움이 더욱 크다. 장학금을 받고자 하는 후배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 동문은 동문장학회에 더욱 분발해줄 것을 요청했다.
“각종 동문 모임에 동문장학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하면 좋겠습니다. 직접 만나서 장학금 조성을 권하기 바랍니다. 모금에 발 벗고 나설 한 사람만 설득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입니다.”
덧붙여 이 동문은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이 선배를 많이 활용(?)하지 않는 상황도 아쉬워 했다. “지금까지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축하인사도 건네고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도 담아 이메일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자연스레 뜸해지는 게 안타깝습니다.장학생들이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고 연락했으면 좋겠습니다. 장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친목도 쌓고, 받은 만큼 돌려 줄 수 있는 마음도 되새기길 바랍니다.”
글·사진=김성중(01 신방) 기자
<한결회 명단>
김경언(81) 신형재(81) 이창우(81) 이태규(81) 이현묵(81) 장 성(81) 조남규(81) 최원섭(81) 최원호(81) 최재홍(81) 임재호(82) 최병일(82) 유연식(84) 채천석(84)
이후 26년 동안 ‘한결회’가 끈끈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목표 설정과 회비 정책이었다. 이태규 동문은 “좋은 일을 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해내기 위해 회비를 모으기 시작한 게 효과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1984년 당시 한 달 회비가 2000원이었습니다. 자장면 한 그릇이 300원하던 시절이었으니 꽤 큰돈이었습니다. 그래도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모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2만원씩 모으고 있습니다.”
차곡차곡 모은 돈이 어느덧 목돈에 이르자 한결회는 2007년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운 영문과 후배들을 돕는 장학금으로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장학금 수혜 자격은 독특하게도 ‘총 학점 평균이 B학점 이하인 재학생’으로 정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배려에서였다. ‘한결회’의 뜻은 서강동문장학회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동문장학회는 장학생을 모집했고, 故 장영희(71 영문) 교수가 장학생 선발을 도왔다. 2007년 3월, 장학생 2명에게 각각 100만원이 등록금으로 건네졌다. ‘한결 장학금’의 시작이었다.
2010년 2학기까지 배출한 한결장학생은 총 8명이고 지원된 장학금은 800만원에 달한다. 누가 봐도 가슴 뭉클한 성과다. 그렇지만 ‘한결회’ 구성원들은 아쉬움이 더욱 크다. 장학금을 받고자 하는 후배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 동문은 동문장학회에 더욱 분발해줄 것을 요청했다.
“각종 동문 모임에 동문장학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하면 좋겠습니다. 직접 만나서 장학금 조성을 권하기 바랍니다. 모금에 발 벗고 나설 한 사람만 설득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입니다.”
덧붙여 이 동문은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이 선배를 많이 활용(?)하지 않는 상황도 아쉬워 했다. “지금까지 선발된 장학생들에게 축하인사도 건네고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도 담아 이메일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연락이 자연스레 뜸해지는 게 안타깝습니다.장학생들이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고 연락했으면 좋겠습니다. 장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친목도 쌓고, 받은 만큼 돌려 줄 수 있는 마음도 되새기길 바랍니다.”
글·사진=김성중(01 신방) 기자
<한결회 명단>
김경언(81) 신형재(81) 이창우(81) 이태규(81) 이현묵(81) 장 성(81) 조남규(81) 최원섭(81) 최원호(81) 최재홍(81) 임재호(82) 최병일(82) 유연식(84) 채천석(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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