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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스승 故고정섭 교수(경영학) 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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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5-31 17:01 조회16,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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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저희에게 큰 배움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요즘 좋은 막걸리가 많이 나왔습니다. 한 잔 올립니다. 드셔보세요.”

 

작고한 옛 스승을 추모하며 23년째 성묘를 오는 동문들이 있습니다. 5월 29일 일요일,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산 53번지, 조선시대 집현전 학자 출신으로 좌의정을 지낸 신숙주 묘소 인근. 경영학과 출신 전웅수(70), 김순기(71), 한윤구(73), 이재권, 송기신(74), 정경만(75), 박성환(79), 양준선(85) 동문과 회계학과 김상주(76) 동문을 비롯한 14명의 후학들이 고(故) 고정섭 교수의 산소에 모여 잔을 올리고, 스승께 문안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랫동안 스승을 모신 전웅수(70 경영, 단국대 경영학 교수) 동문이 첫 술잔을 올리는 모습>

고정섭 교수(경영학)는 서강대에 회계학 토대를 세우고, 회계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육성한 교육자. 1971년 서울지역 대학 가운데 최초로 회계학과를 만들어 후학을 길렀으며, 65년 서강에 와 87년 5월 17일 돌아가실 때까지 22년간 봉직했습니다. 회계연수원장, 경영대학원장을 역임했고, 70년대 서강대를 ‘회계학 메카’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송기신(백석대 경영학 교수) 동문은 “당시 회계연수원이 정부 지정 회계전문 연수기관으로 뽑혀 위탁교육을 맡았다”면서 “여름방학 때면 메리홀이 전국에서 모인 공인회계사들로 엄청 붐볐다”고 회상했습니다.

 

회계학 전공 1회이자 조교를 맡아 스승을 오랫동안 시봉(侍奉)한 애제자, 전웅수(단국대 경영학 교수) 동문의 감회는 새로웠습니다. “학자로서 지극히 엄격하고, 완벽한 연구를 추구하는 분이었다. 점심시간까지 아껴가며 연구에 몰두했는데, 회계학 원칙을 정립하고 해외 연구동향을 파악하는 등 한평생 학문연구에 매진한 분”이라고 스승을 회고했습니다. “85년 위암이 발병해 치료했는데 재발했고, 안타깝게 작고하신 까닭도 고집스런 학문열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故 고정섭 교수의 묘. 비석 앞면에 부인 최진경 씨가 쓴 글이, 뒷면엔 고인의 약력과 비 건립 과정이 새겨 있다. 추도글 마지막 귀절엔 '내생(來生)에 다시 큰 스승 되소서'라는 소망이 음각됐다.>

이재권(안진회계법인 부대표) 동문은 “교수님이 마지막에 관심을 기울인 분야는 회계사(史)였다”며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이 작성한 개성부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13세기 서양의 복식부기(베니스 부기)보다 200년 이상 앞선 점에 주목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스승을 기억하면서 다들 동의하는 대목은 ‘엄격한 학점’이었습니다. “1학년 1학기 때 <회계학 원론>을 들었는데 비명이 쏟아졌다. 30명 중 18명이나 F학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회계학 필수 과목은 재수강 비율이 높았다. 최고 기록은? 무려 5번 재수강 끝에 통과한 친구가 있었다” “서강답게, 당시엔 학문적으로 무척 엄격했다”.

 

전 동문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언젠가 선생님께 학점이 짠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난 학생 개개인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할만한 학생인지 아닌지 먼저 살핀 뒤, 재도전하라는 뜻에서 F학점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답변하셨다. 70년대 서강은 소수정예였기에 제자들의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자신을 채찍질하라는 뜻의 ‘의미 있는 학점’을 준 것이다”.

 

스승에 대한 추모를 마친 제자들은,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는 송현경(00 경영) 동문에게 장학금을 주고 격려했습니다. 지난 89년부터 ‘고 고정섭 교수 추모장학회’를 만들어 매년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故 고정섭 교수 추모장학회를 대표해 전웅수 동문이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는 송현경(00 경영) 동문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스승의 뜻을 이어 서강에서 경영학 교수로 재직하는 김순기 동문은 “모금활동을 더 벌여 장학기금을 확충한 뒤 학교에 넘겨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윤구 동문은 “학교발전기금으로 약정한 500만원의 용도를 고 교수 장학금으로 쓰도록 하겠다”며 힘을 보탰습니다.

 

한 동문과 고 교수는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 동문의 부친이 덕수상고 교사였고 고 교수는 덕수상고 학생으로 사제지간을 이뤘는데, 서강에 와선 고 교수와 한 동문이 스승과 제자로 연(緣)을 이은 것입니다. 당시 고 교수는 한 동문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였습니다. 장학금 모금에 참여할 동문은 김순기 교수에게 연락하면 됩니다.


<추도식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드는 참석자들. 마주보이는 줄 오른쪽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박성환(79 경영), 김상주(76 회계), 송기신(74 경영), 이재권(경영 74), 양준석(85 경영) 동문.>

이날 추도식에는 고 교수의 부인 최진경 여사가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척추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2~3년을 제외하곤 늘 제자들과 함께 산소를 찾았고, 정초에는 세배를 받고 연말 송년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날도 참석자들은 가양동에 거주하는 사모님께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 사모님의 연로하신 모친이 편찮다는 전갈을 듣고 방문을 미뤘습니다.

 

김 동문은 “재학시절 새해 세배를 드리려 여섯 분의 경영학과 교수님 댁을 방문할 때 고정섭 선생님 댁은 늘 마지막 방문지였다. 이유는, 엄격하신 교수님도 이날만큼은 제자들과 약주를 하면서 격의 없이 대하셨고, 또한 사모님이 차려주신 아주 푸짐한 상차림이 기대됐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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