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인이 꼭 알아야 할 50가지 ━ 27. 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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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6-07 00:33 조회16,1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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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 배구부가 있었다?”
모교에 정식 운동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문들도 배구부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1981년 서강에는 정식 운동부로서 배구부가 있었다. 비록 1985년 들어 돌연 해체되면서 ‘전설’로만 남아버렸지만, 당시 서강배구부는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뽐내며 서강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총장이었던 스킬링 스태드 신부는 재학생들의 애교심과 자부심을 고취하고 서강인의 단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배구부 창단을 결심했다. 그 해 3월 28일 배구부 창단식을 열고 감독에 이근삼 신문방송학과교수를, 코치에 이용관(前 국가대표) 씨를 임명했다. 창단 당시 일부 학생들은 서강에 운동부가 창단됨으로써 기존 대학 스포츠에서 볼 수 있는 병폐가 서강에도 전염돼 서강의 학문 전통에 누를 끼칠까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거액을 들여 선수를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교칙에 의한 예외 조항을 제외하고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학사규정을 지켜야 했다. 덕분에 선수들은 합숙훈련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재학중인 선배들로부터 공부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만큼 배구부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기는 쉽지 않았지만 대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서강 배구부 출신인 박주점(84 경영, 前 한국도로공사 여자배구부 감독) 동문은 서강옛집 352호 인터뷰에서 “당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고 회상하며 “팀을 운영하고 선수들은 지도하면서 그 당시 경영학을 공부한 덕을 보고있다. 모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오늘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발편이 됐다”고 덧붙였다. 서강배구부는 창단 첫해부터 좋은 성적을 올렸다. 제 36회 전국 종별 배구선수권 대회 대학부 3위 수상을 시작으로, 1983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전국남녀종별 배구연맹전에서 다시 3위를 차지했다. 서울대 배구부와의 친선경기는 학생들의 열띤 성원 속에서 치러졌고, 해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기량은 향상됐다.
마침내 배구부는 창단 3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12월 16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 11회 체육부장관기쟁탈 전국대학배구선수권대회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지적 활동과 스포츠 활동을 조화시켜 대학스포츠의 새로운 풍토를 조성한다는 취지 아래 창단된 서강대 배구부의 우승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값진 성과였다.
개교 50주년을 맞는 올해, 서강의 교정에서 배구부 해체 이후 사라졌던 타 대학과의 정기 교류전이 부활한다. 11월 둘째 주로 예정된 일본 소피아 대학과의 정기교류전이 그것이다. 비록 이번 교류전에 배구 종목은 없지만, 서강대 대표 선수 모두가 추억 속 서강배구부처럼 선전해 서강인의 긍지를 드높여 주길 기대한다.
글=이선비(05 경제) 학생기자
모교에 정식 운동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문들도 배구부 존재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1981년 서강에는 정식 운동부로서 배구부가 있었다. 비록 1985년 들어 돌연 해체되면서 ‘전설’로만 남아버렸지만, 당시 서강배구부는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우수한 기량을 뽐내며 서강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총장이었던 스킬링 스태드 신부는 재학생들의 애교심과 자부심을 고취하고 서강인의 단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배구부 창단을 결심했다. 그 해 3월 28일 배구부 창단식을 열고 감독에 이근삼 신문방송학과교수를, 코치에 이용관(前 국가대표) 씨를 임명했다. 창단 당시 일부 학생들은 서강에 운동부가 창단됨으로써 기존 대학 스포츠에서 볼 수 있는 병폐가 서강에도 전염돼 서강의 학문 전통에 누를 끼칠까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는 거액을 들여 선수를 스카우트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교칙에 의한 예외 조항을 제외하고는 일반 학생들과 똑같은 학사규정을 지켜야 했다. 덕분에 선수들은 합숙훈련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재학중인 선배들로부터 공부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만큼 배구부 학생들이 졸업장을 받기는 쉽지 않았지만 대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은 남달랐다.
서강 배구부 출신인 박주점(84 경영, 前 한국도로공사 여자배구부 감독) 동문은 서강옛집 352호 인터뷰에서 “당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고 회상하며 “팀을 운영하고 선수들은 지도하면서 그 당시 경영학을 공부한 덕을 보고있다. 모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오늘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발편이 됐다”고 덧붙였다. 서강배구부는 창단 첫해부터 좋은 성적을 올렸다. 제 36회 전국 종별 배구선수권 대회 대학부 3위 수상을 시작으로, 1983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전국남녀종별 배구연맹전에서 다시 3위를 차지했다. 서울대 배구부와의 친선경기는 학생들의 열띤 성원 속에서 치러졌고, 해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기량은 향상됐다.
마침내 배구부는 창단 3년 만에 전국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12월 16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제 11회 체육부장관기쟁탈 전국대학배구선수권대회에서 4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지적 활동과 스포츠 활동을 조화시켜 대학스포츠의 새로운 풍토를 조성한다는 취지 아래 창단된 서강대 배구부의 우승은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값진 성과였다.
개교 50주년을 맞는 올해, 서강의 교정에서 배구부 해체 이후 사라졌던 타 대학과의 정기 교류전이 부활한다. 11월 둘째 주로 예정된 일본 소피아 대학과의 정기교류전이 그것이다. 비록 이번 교류전에 배구 종목은 없지만, 서강대 대표 선수 모두가 추억 속 서강배구부처럼 선전해 서강인의 긍지를 드높여 주길 기대한다.
글=이선비(05 경제)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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