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50년(6)-교정,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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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9 13:55 조회17,778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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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개교 이래 교정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건물이 생겼고, 익숙했던 풍경이 사라지기도 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과거 교정의 모습을 비슷한 장소에서 촬영한 현재의 전경과 비교한다. 변화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및 정리=김성중(01 신방) 기자
1. 본관전경(1960년대 / 현재)
본관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 본관 앞 광경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녹색 언덕에 둘러싸인 농구장은,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선 '청년광장'으로 탈바꿈했고 잔디밭과 벤치로 정돈됐다.
2. 굴뚝(1960년대 / 현재)
본관 굴뚝은 1960년 겨울 완공된 이후 오랫동안 서강의 상징 역할을 했다. 굴뚝은 안전상의 문제로 1994년 10월 철거됐다.
3. 청년광장(1980년대 / 현재, 1990년대 / 현재)
본관 앞에 자리했던 농구장을 1990년 들어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하고, 아래쪽에 알바트로스 탑을 세웠다. 청년광장 주변에도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4. 메리홀(1970년대 / 현재)
외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메리홀 주위로 이냐시오 성당, 가브리엘관, 마태오관이 지어졌다. 메리홀 뒤 왼쪽에 현재 제 2경영관이 지어지고 있다.
5. 개집(1980년대 / 현재)
저렴한 가격으로 자장면 등을 판매해 인기가 높았던 개집(과거 사진 흰색 단층 건물)은 현재 찾아 볼 수 없다. 개집이 있던 자리에 1999년 12월 창업보육센터가 들어섰다.
6. X관 잔디밭(1980년대 / 현재)
과거에는 둘러앉아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지금은 많이 좁아졌다. 뒤로 1008년 준공된 곤자가 국제학사가 보인다.
7. 삼민광장(1990년대 / 현재)
청년광장과 함께 집회장소이자 서강인의 쉼터로 많은 동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삼민광장은 현재 서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 곤자가 플라자로 변했다.
8. 농구시합(1960년대 / 현재)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농구는 체육대회에 빠질 수 없는 종목이다. 1960년대 본관 앞 흙바닥 농구장과는 달리, 지금은 체육관 앞에 우레탄 농구 코트에서 시합이 열린다.
<농구 사진 : 서강학보사>
사진 및 정리=김성중(01 신방) 기자
1. 본관전경(1960년대 / 현재)
본관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 본관 앞 광경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녹색 언덕에 둘러싸인 농구장은, 지하에 주차장이 들어선 '청년광장'으로 탈바꿈했고 잔디밭과 벤치로 정돈됐다.
2. 굴뚝(1960년대 / 현재)
본관 굴뚝은 1960년 겨울 완공된 이후 오랫동안 서강의 상징 역할을 했다. 굴뚝은 안전상의 문제로 1994년 10월 철거됐다.
3. 청년광장(1980년대 / 현재, 1990년대 / 현재)
본관 앞에 자리했던 농구장을 1990년 들어 넓은 잔디밭으로 조성하고, 아래쪽에 알바트로스 탑을 세웠다. 청년광장 주변에도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4. 메리홀(1970년대 / 현재)
외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메리홀 주위로 이냐시오 성당, 가브리엘관, 마태오관이 지어졌다. 메리홀 뒤 왼쪽에 현재 제 2경영관이 지어지고 있다.
5. 개집(1980년대 / 현재)
저렴한 가격으로 자장면 등을 판매해 인기가 높았던 개집(과거 사진 흰색 단층 건물)은 현재 찾아 볼 수 없다. 개집이 있던 자리에 1999년 12월 창업보육센터가 들어섰다.
6. X관 잔디밭(1980년대 / 현재)
과거에는 둘러앉아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지금은 많이 좁아졌다. 뒤로 1008년 준공된 곤자가 국제학사가 보인다.
7. 삼민광장(1990년대 / 현재)
청년광장과 함께 집회장소이자 서강인의 쉼터로 많은 동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삼민광장은 현재 서점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 곤자가 플라자로 변했다.
8. 농구시합(1960년대 / 현재)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농구는 체육대회에 빠질 수 없는 종목이다. 1960년대 본관 앞 흙바닥 농구장과는 달리, 지금은 체육관 앞에 우레탄 농구 코트에서 시합이 열린다.
<농구 사진 : 서강학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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