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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주년 진단 5]서강 영어교육 전설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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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09 13:52 조회11,9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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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 영어교육의 전설과 미래

초창기 유리한 영어환경은 지나간 전설… 이제부터 어떻게?



사실상‘영어 특구’였던 지난날의 서강

서강에 관한 오랜 전설(?)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서강 학생들은 영어를 잘한다’는 것, ‘서강의 영어교육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SLP(Sogang Language Program) 홈페이지의 다음과 같은 소개가 전설의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영어 잘하기로 소문난 서강대학교의 역사는 50여년 전 이 땅에 대학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자 서강대학교를 설립하신미국 예수회 신부님들의 영어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어로 말씀하시는 신부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려면, 단순히 읽고 암기하는 학문으로서의 영어교육이 아니라 생활영어로서의 영어교육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 서강대학교 학생들은 영어로 자신있게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을 한참 돌아다녀도 외국인 한 사람 만나기 힘들던 시절, 외국 한 번 나가려면‘한 말 분량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는 그 시절, 수학공식처럼 영문법을 달달 외워야 했던 그 시절, 서강은 사실상‘영어 특구’였다. 그러나 오늘날 원어민 영어교육은 일반화되었다. 대학생, 아니 초등학생 때부터 해외영어연수를 떠나는 일이 흔해졌다. 회화 위주 영어교육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요컨대 초기 서강의 유리한 영어환경은 지나간 전설이다.

그럼에도 초기의 영어 환경이 전통으로자리 잡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80년대 후반에 입학한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비교적 소수의 수강 인원이 원어민 또는 원어민에 준하는 실력을 갖춘 강사들에게 수준높은 회화 위주 영어교육을 받았다. 다른 대학 재학생들은 누릴 수 없는 교육이었다. 설령 그런 수업을 통해 실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감만큼은 분명하게 갖추었다 고백하는 동문들이 적지 않다.

유행 추수(追隨) 아닌, 서강 색깔 찾아야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길을 놓고 누가 더 앞서느냐 경쟁하는 것보다는 서강만의 길과 색깔을 찾아가는 것, 요컨대 남들보다 앞서는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견임을 전제로 몇 가지 생각해보면 이렇다.

첫째, 목표를 분명히 하자. 예컨대 대학 학부 교육의 목적이 수준 높은 교양과 전공 지식 함양이라면, 영어교육도 그러한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학부에서 중국현대철학에 관한 원서를 분량을 나누어 읽고 번역해서 발표하고 토론했던 것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요컨대 학문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영어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일상적 의사소통은 영어학원의 목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대학의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둘째, 영어 전공 강의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전공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데 열심이다. 학부 시절부터 학문의 세계적, 보편적 경쟁력을 지향한다는 게 근본 취지라 하겠으나, 구체적 실익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전공과 영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제도의 허울에 갇힐 수 있다. 정말로 필요하고 구체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경우에 국한시키는 게 좋다. 전공 강의의 몇 퍼센트가 영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하는 일률적인 양적 기준이 족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셋째, 이른바 회화위주 영어교육이 능사는 아니다. 듣고 말하는 것 못지않게 글을 이해하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영어 강의보다 전공과목 에세이 또는 리포트를 영어로 작성하는 것, 전공과목 원서를 정확하게 독해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물론 회화 위주 교육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지 회화 그 자체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며, 치우침 없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넷째, 국제교류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내실화가 중요하다. 많은 해외 대학들과 교류협정을 맺는 것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러한 협정을 통해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서강의 새로운 전설을 그려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서강에 입학한다는 것은 곧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이다.’


표정훈(88 철학)
서강옛집 편집위원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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