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제 13대 총장과 서강옛집 편집위원회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8-03 14:03 조회28,98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종욱 제 13대 총장과 서강옛집 편집위원회 인터뷰
“후배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선사하겠습니다”
서강옛집 편집위원회가 이종욱 신임 총장과 7월 15일 오후 2시 본관 2층 총장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는 송영만(74 정외) 편집인,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정명숙(83 불문) 편집위원, 서동욱(90 철학) 편집위원, 이창섭(84 국문) 사무국장, 정범석(96 국문) 편집팀장 등이 참가했다. 2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는 마치 세대를 아우르는 동문 모임인 듯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4년 임기 동안 달성할 성과를 넘어, 더 큰 비전을 갖고 있는 이 총장의 혜안에서 역사학자로서 갈고 닦았던 통찰력을 엿볼 수 있었다. <편집자>
총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자랑스런 동문들께 먼저 감사드린다. 서강은 제게 큰 은혜를 줬다. 서강에서 학사, 석사, 박사까지 마쳤고, 학계에서의 첫 직장도 모교 석사 학위 덕분에 가능했다. 1985년부터는 모교에서 강의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다. 햇수로 44년 동안 신세를 지고 있다. 이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총장에 출마했다. 감사한 마음이 없었다면 공부가 더 좋기 때문에 총장에 나설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총장후보대상자 시절부터 ‘특별한 서강’을 강조했습니다. 서강의 특별함은 무엇입니까.
서강다움, 서강의 전통이 서강의 특별함이다. 먼저‘, 자유로움’이 그것이다. FA제도가 있었지만, 입학 이후 속박을 받은 게 없었다. 학과목 선택이 자유로웠고 전과 제도도 있었다. 요즘도 서울 유명 대학 가운데 학생들 시간표가 다 짜여서 나오는 곳이 많다. 교양과목으로 고급 영작문, 철학 과목 등을 들을 수 있는 서강이 대단하다.
‘학문의 수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학창시절 사학과였지만,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의 폭넓은 지식이 자연스레 녹아든 강의 덕분이었다. 당시 수업이 몸속에 잠재적으로 남아 있다. 예컨대 자연과학부 이희명 교수님의‘생의 기원’과 같은 수업이 그러했다. 수업의 영향력을 비유하자면, 해당 수업을 들은 학생이 삼성물산에 입사해서 갑자기 생명공학 사업을 맡더라도 누구보다 빨리 관련 사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특별했다. 교수는 수업 시간을 항상 지키고 빼먹지 않았으며 교직원들은 정확하고 친절했다.
<서동욱(90 철학) 편집위원>
교수 출신 총장으로서 학생 교육에 대한 관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2009학년도 1학기의 경우 모교에 개설된 1567개 과목 가운데 교양이 387개 정도다. 이 가운데 29개만 전임교수가 강의하고, 나머지는 시간강사나 박사학위를 갓 취득한 분들이 맡는 실정이다. 교양과목 강의라는 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교수님들이 책임을 갖고 가르쳐야 학생들이 전인교육의 충실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강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개선되어야 한다.
교양교육이 전인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시는지요?
보직교수에게 임명장을 드리면서 세가지 주안점을 당부했다. 제대로 된 전인교육을 기반으로, 학과가 중심이 되어 운용하고, 산학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초창기 서강은 졸업학점 160점 가운데 76점 정도가 교양과목이었다. 서강이 서울대나 카이스트와 구별되는 것은, 전인교육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어학, 철학, 신학, 교양, 경제학 원론, 자연과학, 전인교육 프로그램 등을 배워서 졸업하면, 인간사회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모르면 CEO가 되어서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 힘들다.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강대는 처음부터 교양교육을 전인교육으로 삼았다.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공채로 들어가서 사장까지 오를 수 있는 까닭은 세상을 다원적이고 다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사회에 진출해 어떤 문제라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 전인교육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교양 교육이 필요하다.
열정적인 강의로 유명하십니다. 표정훈 편집 위원장이 1989년 총장님의 ‘한국고대사’강의 노트를 보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간단한 강의 자료를 토대로 쉼 없이 강의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다른 교수들보다 20~30%는 강의 분량이 많다. 1977년 3월부터 강단에 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강의가 충분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해 그 당시 수업을 들었던 제자들에게 미안하다. 1988년경부터 신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신라 역사를 한국 역사와의 관계에서 생각 못했다. 올해 1학기 선택 과목으로 ‘한국, 한국인을 만든 역사’를 강의했다. 33년 경험이 이제야 자신 있는 수업으로 나타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은사이셨던 이기백 교수의 견해와 다른 연구를 해오셨습니다. 이에 대해 이기백 교수님께서 생전에 별 다른 언급이 없으셨는지요.
이기백 교수님은 남다르고 대단한 분이셨다. 학문뿐만 아니라 제자를 양성하는데도 따라갈 수 있는 분이 없었다. 석사 논문을 심사하던 중, 다른 교수님이 이기백 교수님께 “스승의 견해와 다르다”고 지적하자 이 교수님은 “지금까지 나온 연구 중에 가장 합리적이다”라고 인정해주셨고, 덕분에 역사학회지에도 게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논문은 오늘의 연구결과에까지 닿았다. 박사 학위 논문도 이기백 교수님의 견해와 달랐지만, 교수님은 이를 인정해주셨고 책으로도 출간돼 1982년 한국일보로부터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았다. 이기백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TV 드라마 ‘선덕여왕’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총장님의 ‘화랑세기’연구가 대중적인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드라마는 역사보다 소설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적인 내용이 중심이다. 미실, 문노, 칠숙 등은 선덕여왕 즉위 시점과 관련 없는 인물이다. 화랑 문노는 606년 죽었다. 드라마 속 배경은 632년 선덕여왕 즉위 몇 해 전이다. 진짜 내용으로 작업했어도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신간 '춘추'>
총장 취임과 더불어 신간 <춘추>를 출간하셨습니다. 비주류 역사학자로 알려졌는데 갑자기 주목을 받는 느낌입니다.
<춘추>는 한국 역사의 개념을 바꾼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조가 단군이라고 교육 받아 왔으나, 한국인 대부분은 신라 사람의 뒤를 이었다. 단군 신화라는 민족사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만들어진 역사다. 1906년경 일제에 맞서기 위해 ‘민족’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제 시대 살았던 사람들은 단군을 배우지도 않았다. 해방 후 초중고를 다닌 사람들이 알 뿐이다. 역사는 혈연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를 다루는 것이다. 김춘추가 삼국통일을 이룸으로써 신라와 신라인이 남긴 역사적 유산이 통일신라->고려->조선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고구려와 백제는 정치적으로 소멸됐다.
식민사학을 벗어나기 위해 민족사학을 완성한 분이 은사이신 이기백 교수님이다. 이 교수님은 ‘한국사 신론’을 통해 구석기를 쓰던 사람부터 한민족이라 규정하셨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바꿔보고자 했다. 사실,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는 서로 민족공존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죽고 죽이고 정복하고 정복당하던 시기다.
덧붙여, <춘추>는 ‘아트 테크놀로지’의 대상으로 삼아볼 만하다. 영화로 만들 수 있고, 100회 분량의 드라마도 가능하다. 학생이 인턴으로 참여하고 동문 감독이 만들고 시나리오 작업까지 갖춰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기금 모금에 관한 복안이 있는지요?
서강에 기금을 줄 수 있도록 사람과 기업을 감동시켜야 한다. 서강다움을 강조해야 한다. 기업이 사람을 쓸 때, 서강출신은 정말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사람을 서로 쓰려고 할 정도가 되면 기업이 학교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명숙(83 불문) 편집위원>
부족한 공간 문제 해결이 시급합니다.
서강에 공간이 없다보니 교수님을 모셔오려 해도 연구실을 제공할 수 없기에 스카우트를 못한다. 이는 서강대 전체 연구역량을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1만평 정도 여유가 있다면 5년이나 10년 동안 공간 부족 없이 운영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40평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학교에는 노벨상에 근접한 연구를 하시는 분도 있어서 연구 공간을 1000평 정도는 마련해 드리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다른 학교에 인적자원을 빼앗길 수도 있어서 다급한 문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학교 자체적으로 건물을 짓는 노력을 하겠다.
재단이 매월 1만원씩 서강대학교에 후원해줄 10만 명을 모으고 있습니다.
4월 28일 총장에 선임된 이후 답답하고 막막했던 것은 재정 부족 때문이었다. 현재 학교 기금이 800억 원인데 대부분 목적기금이다. 따라서 총장이 교수 연구비를 지급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 결과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재단이 모은 돈은 총동문회의 장학기금이나 학교의 발전기금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재단이 모금한 돈은 새로운 사업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굉장히 필요하다. 재단이 기금을 많이 모아서 학교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서강 전체 발전에 아주 유용할 것이다. 학교도 BK21 등을 통해 금년 400억 원 이상 연구비를 모금할 전망이다. 4년 뒤에는 이 같은 연구비가 1000억 원 이상이 될 것 같다.
부총장이 2명으로 늘었습니다. 정관을 변경해서 산학부총장직도 신설했습니다.
학교 구조를 실질적인 산학체제로 만드는 최적임자가 유기풍 산학 부총장이다. 이미 총장 선출 과정에서 총장이 되면 산학부총장으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비를 가장 많이 가져오시는 분이다. 조긍호 교학부총장도 독창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하신 학자임으로 학교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하실 것이다. 두 분을 비롯해 모든 보직교수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 성과를 내시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공부 못하게 했으니, 학교 전체 연구 업적이 떨어질까 걱정이다. 그렇지만 학교와 학생을 위해 보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7월중 학교가 설립한 기술지주주식회사에 의해 1호 기업이 창업한다. CNN이 보도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했다. 코스닥 상장하면 시가총액이 수천 억 원 될 수도 있다. 학교 지분이 45%이니, 수백 억 원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이다. 대학교수가 창업해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건은 성공 확률이 높다. 코스닥은 물론, 나스닥까지 직상장할 생각이다. 대학이 기업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면 교수 연구비도 줄 수 있고 공간도 마련할 수 있다. 동문들에게 기금 모금 고지서를 안 보낼 수 있다. 산학연구와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연구소와 연계해서 교수는 연구하고 학생은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창섭(84 국문) 사무국장>
총장님을 비롯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창섭, 표정훈, 서동욱 동문 모두가 동문 부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내(73 사학 김귀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았다. 대학원에 다닐 때 아내는 서강에 입학했다. 1977년 영남대학교에 취직하던 해, 아내는 졸업하고 대구의 모 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했다. 당시 반공교육이 있었는데, 가기 싫은 자리인 만큼 각 학교의 신임 선생님들이 참석하는 분위기였다. 교육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게 인연이 되어 33년 동안 화목한 가정을 일궈왔다.
아들이 2명 있다. 1978년생인 큰 아이는 한국에서 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서 금융공학을 공부해 현재 맨하탄에서 은행가로일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15만 명이 쫓겨날 때 오히려 스카우트됐다. 1981년생인 둘째는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사진 작업도 하면서 패션모델로도 활동한다. GQ잡지 등에 모델 사진이 실렸고 서울컬렉션 무대에도 올랐다. 예술 관련 그룹을 결성해 여러 차례 공식적인 자리에서 퍼포먼스도 했다. 가수 윤도현의 ‘사랑했나봐’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아들들을 통해 예술, 패션, 금융, 공학 등을 풍월로 익히고 있다.
동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으신지요?
서강 동문만큼 자기 일 당당하게 해 나가고 있는 동문을 찾기 힘들다. 열심히 사시는 분들께 무슨 당부를 하겠는가. 당부보다 4년 동안 총장에 있으면서 전인 교육을 정말 제대로 시키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
<송영만(74 정외) 편집인>
끝으로 총장으로서 포부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교육을 하겠다. 이를 위해 교수역량 강화가 가장 중요하다. 연구 업적도 출중하고 가르치는 능력도 탁월해야 한다. 현재 서강의 교수님 372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217명 정도가 정년을 보장받고 있다. 열심히 하시는 분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이럴 경우 한두 해 만에 업적 평가를 해서 성적을 올리라고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총장으로 있는 한, 앞으로 휴화산이 아니라 항상 활화산이 될 수 있는 교수님을 모시겠다. 훌륭한 교수를 한분 두분 모셔서 25년이 지나면, 학교가 나빠지려 해도 나빠질 수가 없다.
직원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현재 계신 교직원분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겠지만, 신임 교직원들을 대상으로는 연봉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능력에 따른 대우를 하다보면, 25년 뒤에 훨씬 나아질 것이다. 얼마 전 모 신문이 모교가 졸업생 평판도 2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서강의 전통과 서강다움이 우리 졸업생을 최고의 평판으로 만든 셈이다. 사실, 한국에서 평판도는 정상적인 평판도가 아니다. 고정관념으로 어느 학교가 1등인지, 2등인지 등이 정해져 있다. 학교 줄세우기다. 각인되어 있는 것을 깨는 게 쉽지 않다. 임기 4년 동안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계속 노력하면 가능하리라 본다.
정리=정범석(96 국문) 기자
사진=김성중(01 신방) 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