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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보이'가 문화한국 다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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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29 조회15,9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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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희(91.철학) 월간 DVD2.0 편집장

최근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은 영화배우 장동건을 표지인물로 내세우면서 한국발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발맞춰 준비한 기사이긴 하지만, 이 특집은 타임의 그간 행보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국내 대중 스타를 표지로 내세운 것도 처음이려니와, 중국과 일본의 최신 동향에는 늘 관대했던 타임이 한국의 과학과 경제, 대중문화 분야의 성과를 크게 다룬 것도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Breaking Through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필자가 읽기에 다소 오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찬사 일색이었다.

물론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브랜드가 과거와는 다른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타임이 보도한 대로 자동차와 반도체, 철강과 조선이라는 전통적인 산업 분야를 넘어서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 세포 연구나 삼성의 휴대폰, LG의 디스플레이 기기 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영화와 TV, 대중음악과 인터넷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의 위상이 전혀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본 열도를 장악한 욘사마 열풍이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마저 팬임을 자처한 <대장금>의 위력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리 대중가수와 TV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하고 있으며,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넘어 미국 시장에서도 호평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문화 상품의 한류 열풍을 이끌어낸 일등 공신은 한국영화다.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세계 무대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낳았다. 올해로 열 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전진 기지로서 이제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등극했다. 영화배우 전지현을 스타로 만든 <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어권 국가는 물론 일본과 호주에서도 거의 컬트가 된 작품이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과 홍상수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에 연달아 초청받으면서 유럽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시아 작가로 각광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뒤 전세계 수십 개국에 개봉했고, 후속작인 <친절한 금자씨> 역시 기대와 화제를 모았다.

특히 박찬욱 감독에 대한 전세계 영화인과 관객들의 환호는 놀라울 정도다. 그의 영화는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서 북미 대륙의 두터운 관문을 뚫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전통적으로 미국 영화 관객들은 자막 읽기를 싫어해서 다른 나라의 영화에 폐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과 일본의 액션영화와 유럽의 예술영화만이 소수 애호가 집단을 만들어냈다. 한데 최근 이런 미국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우수성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는 박찬욱 감독의 전작인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쓰리, 몬스터> 등이 연달아 미국에 개봉했다.

뉴욕 타임스 같은 유력 언론이 연일 이 영화들을 자세히 다루며 호평했음은 물론이다. 뉴욕이 어떤 곳인가. 현재 전세계 문화와 예술의 수도이자 심장과도 같은 곳 아닌가. 영미권에서는 지금 아시안 익스트림 무브먼트(Asian Extreme Movement)라는 이름 아래 몇몇 독창적인 아시아 영화가 엘리트 관객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있다. 한국영화와 영화감독이 이토록 세계 속에 저변을 넓힌 것은 사상 처음이다.

우리가 이런 현상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하는 이유는, 문화 상품이야말로 수많은 보통 사람과 직접 소통하는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 그들의 감각 기관을 자극하고 의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파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 관심도 없던 세계인들이 한국영화와 TV 드라마를 보면서 하나의 상(像)을 형성해가고 있다. 그 문화적 영향력은 단순한 경제적 지표로 환원할 수 없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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