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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불명의 직역체'에 멍드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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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29 조회12,8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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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종(91·경영) 일본어 번역 프리랜서


안녕하세요? 경영학과 91학번 김영종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일본어 번역 프리랜서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마징가 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원제: 마에다 건설 환타지 영업부)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뜻밖에 <서강옛집>의 연락을 받고 이렇게 칼럼을 쓰게 되었습니다. 별로 글재주는 없지만 번역에 대한 저의 생각을 글로 적어볼까 합니다.
번역이란 어느 정도 문법에 대한 지식과 사전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 능력을 따짐에 있어서 외국어 능력을 우선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번역 문학의 대가이신 안정효 씨는 ‘우리는 주변에서 “나는 영어를 잘 하니까 번역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말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그것은 우리말을 잘 하니까 모든 한국인이 소설을 써서 인기작가가 되겠다고 나서는 격이다.’(「번역의 공격과 수비」. 안정효 지음)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즉 외국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우리말에 대한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올바른 ‘번역’은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해석’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요.
원서를 번역해보신 분이라면 자신이 원서를 그대로 읽을 때와, 그 원서를 번역해서 글로 남길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혼자서 읽는 경우라면 자신만 뜻을 이해하면 되므로 우리말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만, 번역의 경우는 자신이 글로써 남긴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외국어를 우리말로 변환하는 것에만 급급해서 우리말에 대한 것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국적 불명의 문법과 단어가 남발되는, 이른바 직역의 폐해가 생기는 것이지요.
번역을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변환작업’이 아니라 ‘우리말에 의한 새로운 창조’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그 인식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올바른 번역’에 한발짝 더 접근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인식을 가지지 못 한 아마추어 번역가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그런 번역은 빠른 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런 번역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그 국적불명의 번역을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 말과 구조가 비슷한 일본어에서 그 경향이 심한데, 만화나 게임 등의 문화 컨텐츠와 함께 묻어온 일본어는 일부 매니아층과 결합하여 ‘원문의 어감’이라는 구실 아래 ‘국적불명의 직역체’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히려 밀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직업 번역가는 물론이지만, 아마추어라도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면 번역의 중점을 어디에 둘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번역하는 문장은 외국어지만 번역된 문장은 우리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사람은 외국 사람이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당연히 번역의 중점은 우리말에 두어야 합니다. 외국어의 내용을 소화해서 우리말을 만들어내야지, 외국어에 맞추어 우리말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번역가를 지망하시거나, 아마추어로라도 번역을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그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듣기엔 쉬운 일이지만 실천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그런 개념을 잊지 않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말 파괴는 많이 없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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