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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25 17:20 조회13,8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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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온다 - 선택된 자의 시련, 요나처럼, 오이디푸스처럼
심영섭(85.생명, 영화평론가)

일찍이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스타워즈>를 ‘인간의 행동을 통해 성취되거나 부서지거나 억압되는 포스’, 생명의 힘을 다루는 신화로 보았다. 신화가 현대에 숨쉬고 있기는 영화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이다. 반지를 낄까 말까 고뇌하는 주인공들은 바로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받아들일까 말까를 고뇌하는 존재론적 피조물이 되고, 동시에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톨킨의 강력한 주술에 사로잡힌 가엾은 넋들로 산화한다. 그렇다면 대체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그것 자체로 충분한 하나의 우주이며 거대한 세계이다. 신화는 삶을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공포와 염원에 대한 깊이 있는 표현이며, 인생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의 소산이다. 그러기에 신화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자 의미이다.

그러한 면에서 최근 개봉된 <스파이더 맨 2> 역시 외면은 블락버스터이지만, 이 영화 역시 암암리에 어떤 영웅 신화의 면모를 띠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일 예로 스파이더 맨은 가면을 썼을 때는 하늘을 나는 초인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그 가면을 벗었을 때는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대개 영웅은 ‘특별한 출생과 소명에의 거부’로 시작되는데, 스파이더 맨을 수행하는 찰리 파커 (토비 맥과이어 분)는 수퍼맨처럼 외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조실부모한 상태에서 숙부와 숙모의 보호 아래서 자라난다. 당연히 영웅은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많은 정체성의 고민을 한다. 때론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 들어가듯, 오디세이가 사이렌의 유혹에 이끌려 난파당하듯, 많은 유혹과 시련의 관문을 뚫고 온갖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 스파이더 맨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청년으로서 자립해야 하는 성인식의 관문과 스파이더 맨의 정의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스파이더 맨의 전능한 거미줄과 활강 기술외에는 아무 것도 현실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그는 연인 M.J (커스던 던스트 분)가 우주 비행사와 사귀는데도 이를 지켜봐야만 한다.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할수록 그의 스파이더맨으로서의 능력은 점점 사라져 간다. 결국 그는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이 스파이더 맨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것. 기실 스파이더 맨의 마스크는 그의 페르조나 (겉으로 내보이는 인격)처럼 보인다.

더 이상 스파이더 맨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영화 속에서 신화는 살아 숨쉰다. 매트릭스 역시 어떤 면에서는 눈먼 메시아와 오이디푸스의 신화, 혹은 우파니샤드의 철학이 배인 불교의 설화가 혼합된 신화의 진경산수화일 것이다. 이렇듯 블락버스터들은 결국 현대의 신전은 극장이며, 배우들은 혹 신화의 세계 속에서 현현하는 신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그러니 다시 한번 신화여 오라. 이 모든 정신적인 것이 풍화되어가는 사이비 시대에 기꺼이 다시 한번 간달프의 현명함과 매트릭스의 인간 의지로 채워다오. 스파이더 맨 2에서 찰리 파커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다시 한번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이 찰리 파커라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물론 언제나 그러하듯 용을 처치하고 공주를 구할 수 있는 결정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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