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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책 남겨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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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6-17 22:18 조회13,6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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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책 남겨줘 고맙습니다”

아직도 인문관 현관을 들어서면 어디선가 장영희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칠 것 같다. 그만큼 선생님이 떠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대체 떠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 이상 선생님과 대화할 수 없고, 선생님의 생각을 들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선생님은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 많은 책들을 남겼으니 말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작가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작가가 죽던 날 그가 쓴 책들이 서점의 진열장에 경야(經夜)하는 이들처럼 나란히 앉아있었다고 표현했다. 장영희 선생님의 책들도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가시던 그날 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선생님의 생생한 말소리를 들려주고 있었을 것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샘터)을 들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유작이 된 이 책을 통해 선생님의 투병 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록 속에서 진정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고귀하게 자신의 생명과 이 세상을 존중하고 있는 한 인간의 감동적인 모습이다. 선생님은 고통을 타인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바꾸는 기적을 만들어 낼 줄 아시는 분이었다. 우리는 다음 구절에서 그 기적을 목격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문학의 숲을 거닐다’(샘터)는 세계적인 고전 문학 작품들에 관한 선생님의 생각을 적어놓은 책이다. 선생님은 자신의 일상적 체험을 통해 그 감동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는 선생님의 소소한 일상들이 어떻게 그 자체로 감동적인 작품일 수 있는지 체험하게 된다.


축복’과 ‘생일’
(비채)은 영시를 선별하여 소개하고 시들마다 짧은 산문을 달아놓은 책이다. 선생님의 산문이 시 이상으로 주옥같고 따뜻하다. 상처를 주기위한 무기처럼 ‘날카로움’으로 무장한 우리 사회의 담론들 한 가운데서, 선생님의 책들은 기적처럼 부는 감미로운 바람과도 같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어느 책의 한 페이지에 쓴 다음 문장에 이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차례다“. 내가 죽고 난 후 장영희가 지상에 왔다 간 흔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는 환하고 따뜻한 빛이 가득 합니다. 천사들이 달고 다니는 커다란 날개처럼 그 빛이 우리를 평화 속에 감싸고 있어요. 사랑의 책들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서동욱(90 철학) 서강옛집 편집위원, 모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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