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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주보에 밝힌 남정률(85철학) 동문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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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5-29 14:38 조회11,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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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률(85 철학) 평화신문 기자가 서강주보 제563호(2009년 5월 24일자)에 기고했습니다.

남 동문의 소원이 드러나 있는 따뜻한 글입니다.




제목 : 나의 소원

제 나이가 올해로 마흔 네 살입니다. 철학과 85학번으로 서강대에 입학할 당시 모교 1회 졸업생들의 나이가 지금의 저와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하늘같은 선배들이었죠. 그런데 벌써 제가 그 나이가 되었다니 믿어지질 않습니다. 정신 연령은 이십대 초반이라며 자부(?)하고 사는데 말입니다. 물론 육체 나이는 40대라는 것을 매일매일 절감하면서 삽니다.

서강에서 가톨릭과 인연을 맺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상과는 담 쌓고 살려고 작정을 했던지, 먹고사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종교학을 부전공했습니다. 철학과 종교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그리고 가톨릭이라는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해준 서강은 제게 둘도 없는 은인입니다.

졸업 후 잠시 다녔던 대기업을 그만 두고 지금의 회사로 옮긴 지 15년이 됐습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평화방송․평화신문은 가톨릭이 운영하는 언론기관입니다. 직업적으로 하느님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직장이죠. 직업과 신앙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신문 기자라는 일이 제게는 천직처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평탄한 삶인 것 같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배우자를 만났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살아오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기야 했을까요.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가 쓴 책 제목처럼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습니다.

얼마 전 모교의 장영희(마리아)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끝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그분이 마지막으로 남긴 책 제목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입니다. 그분은 지나온 하루하루의 삶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겠다던 그분은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하느님께 돌아갔습니다.

장 교수님은 그런 기적을 일으켜주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눈을 감았을까요?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신 모든 것이 결국은 기적이었음을 확신하지 않았을까요? 그분을 천형처럼 따라다닌 장애도, 지독했던 삶도, 그리고 처절했던 암과의 싸움 모두를 하느님의 뜻, 곧 기적으로 받아들여 매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살지 않았을까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상살이가 마냥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는 그야말로 하느님만 아시는 일입니다. 저는 평온했던 지금까지의 삶이 혹시라도 깨어질까 두렵습니다. 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다면, 병원에서 앞으로 살 날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제게 요즘 가장 와 닿는 성경말씀은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의 세계를 인정하기에 ‘하느님은 사랑’임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임을 믿는다면, 그래서 하느님이 이 모든 것을 결국 선(善)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만사 모두가 결국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기적’이 아닐까요? 

내가 내일 당장 병원에서 말기 암이라는 판정을 받더라도 그 또한 하느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기적’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런 신앙을 갖는 것이 요즘 ‘나의 소원’입니다.

남정률 사도 요한, 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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