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도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목멘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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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5-13 14:15 조회18,9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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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故 장영희(71 영문, 세례명 마리아) 모교 영문과 교수의 장례미사는 고인의 모교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13일 오전 9시 이냐시오 성당에서 유시찬 이사장 및 공동사제단 주례로 열린 미사에서 동문, 교직원, 학생 등 세대와 성별은 물론, 국적을 뛰어 넘은 500여 명의 조문객들이 미사에 참석해 고인의 가는 길을 아쉬워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장 교수의 영정사진을 접한 조문객들은 죄다 매운 연기라도 쐰 양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 하루 안경 쓰는 것을 포기하고 한 손에 안경을 쥔 채, 다른 손으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장 교수를 기리는 조사와 이해인 수녀의 애도시는 장례미사에 참석한 모든 조문객들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손병두 총장은 조사를 통해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 발전을 위한 기금 모금 행사에 열성을 다했던 장 교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손 총장은 “고인은 ‘서강과 나’라는 주제로 한 말씀을 통해 동문들의 잠자는 애교심을 깨워 모금에 동참하도록 했습니다. 서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았던 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손 총장은 또, 9년이라는 긴 암 투병 시간동안 미소를 잃지 않았던 교수님의 숨겨진 고통을 떠올리며 “교수로서 강의하던 힘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이 아니었습니까?”라고 고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의 시간 줄일 것을 조언했을 때, 교수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신체적 장애는 물론, 세 번 씩이나 암 투병을 하게 했던 것을 우리 머리로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며 돌아가신 것은 그만큼 했으면 됐다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끝으로 손 총장은 “마지막 가는 길에 여동생처럼 ‘영희야’라고 부르고 싶다”며 “영희야 수고했다, 잘 가거라. 천국에서 아버지 만나라. 고운 말과 글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라. 영희야 안녕!”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손 총장의 흐느낌은 겨우 참고 있었던 조문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렸습니다.
생전 고인과 각별했던 신숙원 명예교수는 “그토록 사랑했던 서강을 두고 어떻게 발을 뗄 수 있는지요. 장영희 교수님은 서강의 자랑스런 롤(role) 모델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생은 열정과 사랑의 삶이었습니다”라고 조사를 했습니다. 신 명예교수는 동문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 장 교수를 기억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영문과 동문회 모임을 기어코 만들어내시더니, 지난해 동문 모임에는 산소 호흡기까지 준비해가며 축사를 하러 나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선생은 언제나 학생과 서강이 먼저였지요. 나중에 다시 만날 때 하늘나라 이야기와 옛날 정겨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야 합니다. 하느님 품안에서 편안히 하시길 빕니다”라고 말하며 신동엽 시인의 ‘산에 언덕에’를 차용해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서강 언덕에 피어날지어이”라고 말했습니다.
뒤이어 장 교수가 장례미사에서 학생을 대표해 조사를 읽어줄 것을 생전에 부탁했던 제자 이경순 씨가 조사를 맡았습니다. 이 씨는 “선생님과 알고 지낸 8년은 지독한 짝사랑의 기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걷고 싶었지만, 목발 때문에 한 걸음 떨어져야 했고, 행여 선생님께서 넘어지실까 계단은 한 칸 아래에서 걸어야 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너무나 좋아하셨던 선생님이기에 그냥 떠날 분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똥파리의 똥구멍이 너무 파랗다’고 신기해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분이셨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 많은 고통 속에서도 힘들지 않으시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말하셨던 선생님입니다. 아마 힘겨워하던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 하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이제 주님께 보내드립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마무리지었습니다.
끝으로 이해인 수녀님이 장영희 교수를 애도하며 지은 시를 성바오로딸수도회의 김애란 마리데레사 수녀님이 대독했습니다.
내게 축시 받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해야겠다고 말했던 영희,
많은 이에게 희망 전하는
명랑소녀로 살자고
나와 다짐했던 영희,
그렇게 먼저 가면 어쩌느냐고 항의하니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미안해요!”하며 웃고 있네요.
꽃을 든 천사여
편히 쉬소서!
지상에 두고 간 글의 향기 속에
슬품 중에도 위로 받으며
그리움을 달랩니다.
“영희야 잘 가.
그리고 사랑해.”
-부산 광안리 민들레의 영토에서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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