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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정예 참뜻을 되새길 때[50주년 진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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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9-03-20 14:02 조회15,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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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2월 8일 열린 제 1회 졸업식 사진이다. 이날 60명이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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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마련된 2009학번 입학식 장면이다. 1881명이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2010년 개교 50주년을 맞이하는 모교는 명문사학으로서의 전통을 쌓아왔기에 동문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각별하다. 새로운 50년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시점은 서강의 전통과 유무형의 자산을 재음미할 때다. 이에 서강옛집은 서강 전통을 재성찰해보는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모교는 1960년 4월 18일 영어영문학과,사학과,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경제학과를 개설하고 입학생 166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2009년. 입학식 참가 신입생이 1881명이었으니 50년 세월 동안 입학 정원이 10배이상 증가했다. 

 

모교의 입학정원 변천사를 돌이켜보면 몇 차례의 고비 길과 만날 수 있다. 먼저 1969년 12월 종합대학 인가를 받고인문대학 6개학과, 이공대학 5개학과, 경상대학 3개학과 체제를 갖춘 일이다. 69년에 처음으로 입학정원 400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1981년. 이른바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입학정원이 처음으로 세 자리 숫자가되어 1,360명으로 늘어났다. 70년대에도 입학정원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1970년부터 1980년까지 425명에서 660명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1980-81년 한 해만에 입학정원이 두 배 늘어났던 것이다. 80년대는 이른바 ‘6천 서강’의 시대였다. 입학정원 기준으로 학부생 전체 숫자가 6천 명 정도였던것. 이후 1993년부터 입학정원은 1700명 안팎을 유지했으니‘7천 서강’이 된 셈이다.

1980년대 이후에도 모교가 소수정예?
모교를 형용할 때 자주 회자되는 표현으로 ‘소수정예’가 있다. 과연 어느 정도 학생숫자 규모까지를 ‘소수’라 할 수 있는지 기준 자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졸업정원제 시행이전, 즉 980까지는 ‘소수’라는 말이 적합할 듯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모교를 ‘소수’로 규정하는 게 적합할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물론 다른 많은 대학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학생 숫자가 많지않은 편이다. 예컨대 연세대학교 2009학년도 신입생 모집인원은 3,404명, 고려대학교 2008학년도 신입생 모집인원은 3,875명, 서울대학교도 한 학년 정원 3,000명 수준이다. 이렇게 정원 규모가 대체로 주요 대학의 절반 정도지만, 학부생 7천 명 규모라는 규모 자체도 그렇고 개설 학과와 학사행정 및전반적인 학교 운영 등 여러 측면에서 이미소수라 하긴 힘들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소수정예’라는 표현이 “옹기종기 오순도순하던 지나간 시절에 대한 낭만적 추억에 불과하지 않느냐”(89학번 어느 동문의 말)는 의견,“ 정예를 내세워야지 소수를 내세울 건 없으며, 소수라는 말에서 규모가 작은 것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 머리 숫자 콤플렉스의 느낌마저 없지 않다”(91학번 어느 동문의말)는 의견, 심지어“소수정예는 신화에 불과하다”(95학번 어느 동문의 말)는 의견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소수정예에 대한 의견에서 6, 70년대 학번 동문들과 그 이후 학번 동문들이 다소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6, 70년대 학번 동문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재학했던 시절을 ‘소수정예의 시대’로 기억하고 자부한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그런 시대가 저물어갔다고 보는 동문들이 많다. 이에 비해 80년대 이후 학번 동문들은 소수라는 숫자 규모 자체가 중요한 것인지에 의문을 표하는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야말로 향수일 뿐”이라는 어느 동문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사실, 소수다 아니다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닐지 모른다. 중요한 건 현재의 학생 숫자 규모에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실천하는 일이며, 위의 어느 동문의 말처럼 ‘정예’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 비교의 위험을 감수하고 일단 학부 신입생 숫자만 놓고 본다면 프린스턴대 1,242명, 하버드대 1,688명, 예일대 1,318명, 컬럼비아대 1,333명, 시카고대 1,300명, 스텐포드대 1,721명 등(2009학년도 신입생 숫자 규모)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대학들 대부분이 2천 명을 넘지 않는다. 역시 단순 비교지만 적어도 입학정원만 놓고 보면 대체로 모교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더 적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물론 이것은 미국의 대학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입학생을 받아들이는 주립대학을 고려하지 않은 현실이기는 하다. 또한 미국 명문대의 경우 대학원생 숫자가 더 많은경우도 드물지 않다. 요컨대 사립명문대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학부 신입생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주립대학은 대규모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과정이 없는 명문 칼리지들의 입학정원은 그야말로 소수다.) 
 
한편 일본 대학의 현실을 보면 사립명문으로 꼽히는 와세다대의 2008학년도 입학생은 1만 명 수준이고 게이오대는 7천 명수준이다. 예수회 대학인 조치대학은 2,500명 수준, 교토대학은 2,800명 수준이다. 학교의 지향점이나 전통, 특성에 따라 큰 편차를 보여주는 셈이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야, 바보야!"
이런 해외 사례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구호를(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약간 바꿔 말하면, “문제는 숫자가 아니야, 바보야!”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8년 세계경쟁력 연차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제사회요구 부합도는 조사 대상 55개국 중 53위였다. 같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31위였으니, 대학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을 떠받치기는커녕 갉아먹고 있는 형편이라는 질타가 나올 만도 하다. (물론 IMD 보고서가 절대적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며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보기도 힘들겠지만, 일리가 있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전반적인 국제 경쟁력의 현실이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숫자와 규모를 놓고 이래저래 따져보고 갑론을박하는 것은 차라리 속 편한 행태가 아닐지.

우리나라 대학들을 보면 별다른 특색 없이 백화점식 망라주의나 외형주의에 빠지거나, 구체적인 전략은 설정하지 못하고 세계화니 세계 100위권 진입이니 하는 막연하게 수량적인 구호성 목표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그 많은 대학들의 비전이나 목표가 대동소이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 없다는 것을뜻한다.

과거 서강의 소수정예란 차별화를 뜻했다. 단지 숫자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특색, 교육과정과 내용, 학사행정과 제도, 교수진 등이 다른 대학들과 차별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야말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서강은 어떤 측면에서 어떻게 차별화되어있을까? 서강이 현재 지닌 유무형의 자원은 물론 전통과 정신까지도 종합적으로 토털리뷰(total review) 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별화의 지점들을 키워나가는 노력. 서강의 50주년은 바로 그런 노력의 기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차별화인 것이다.

표정훈(88 철학), 편집위원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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