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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김근상(71 화학)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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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05-02 15:38 조회16,5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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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에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김근상 신부를 만났다. 김 신부는 5월 22일 주교 서품을 받고, 내년 1월까지 주교 수업을 받는다.)


“힘들고 지친 이들을 품는 교회를 만들겠습니다”

 

성공회의 교구장 선출은 후보도 정견발표도 없이 무기명 반복투표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늘 화제가 된다. 올해 1월 25일 무려 4시간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투표한 끝에 성공회를 대표하는 차기 서울교구장으로 김근상 신부가 뽑혔다. 주교로 선출된 소감에 대해 김 신부는 “누가 나를 뽑아준다는 건 믿음과 기대가 실려 있기 때문에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쁜 것은 딱 닷새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부담감 때문에 가슴이 짓눌려 왔습니다” 라고 말했다. 

 

화장품 만들기 위해 화학과 선택

김 신부는 외조부(이원창)와 선친(김태순)에 이어 3대째 성공회 사제로 서품됐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모교 화학과에 입학하고, 이후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게 된 배경이 예사롭지 않다. 김 신부는 “중학교 2학년 때 쯤 부모님께 신부가 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반대가 심했다”고 말했다. 2대에 걸쳐 성직자의 가족으로 살면서 가난으로 곤욕을 치렀으니, 이제는 돈을 벌어서 교회에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설득에 넘어갔던 셈이다.

돈을 벌기로 결심한 김 신부는 마침 통굽 구두와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하던 시기였기에 ‘앞으로 화장품이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 고 판단했다. 화장품을 만들어서 팔겠다는 생각으로 택한 전공이 화학과였고, 그렇게 모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모교 재학 시절 김 신부의 무용담은 꽤 들어줄만 했다. 여학생들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닌 일화는 기본이었다. 흔치 않았던 밴드의 보컬도 맡았다. “서강합창단에서 활동했다”고 자랑할 때는 마치 발성연습을 하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팝송을 좋아하던 여학생의 마음을 얻으려고 시작했던 팝송 공부는, 학교 옆에 자리했던 유성다방의 DJ가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김 신부는 “역사학개론 수업 시간에 이기백 교수님께 ‘선생님의 강의엔 사관이 없다’고 대들기도 했고, 철학개론 시간에는 ‘소피스트야말로 진정한 철학자’라는 주장의 리포트를 써서 A+를 받았다” 고 고백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통해 서강에서의 하루하루는 젊은 객기와 무모함이 버무려져서 열정이 넘쳤던 시절이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돈은 김 신부와 인연이 깊지 않았다. 모교 2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대형 트럭 세 대 분량의 배추를 샀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배추를 운반하다가 폭설이 내렸고, 결국 경매시장 마감시간에 늦어서 돈을 몽땅 날렸다. 김 신부는 “그때 돈을 벌 팔자가 아님을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신앙에 따른 삶을 살기로 마음먹다

이 사건이 있은 뒤 김 신부는‘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신학에 눈을 돌렸다. 가톨릭대 신학과로 편입한 것이 출발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신부의 관심은 신앙 보다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을 알아가면서 신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제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에 입학했고 1980년 사제로 서품됐다. 


김 신부는 첫 미사를 드리던 날을 잊지 못했다. 긴장한 나머지 준비한 설교 원고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김 신부는 “훌륭한 신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인간 하나 만들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제대로 된 사람이 되기 위해 사제의 길을 택했습니다”고 설교했다. 사제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28년. 김신부는 인터뷰를 마칠 무렵 지갑에서 카드를 한 장 꺼내 보였다. 서울교구장에 선출된 후 큰딸 김제인(96·경영) 동문에게 선물받은 현금카드였다. 로만칼라를 한 성직자의 모습 뒤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비친 순간이었다.

 

글·사진 = 이미현(96·사학) 월간 샘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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