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선도(仙道)의 맥 잇는 박태섭(85.종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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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진아 작성일07-07-18 17:31 조회13,04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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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선도(仙道)의 맥 잇는 박태섭(85.종교) 동문
중학교때부터 선도 수련의 세계에 본격 입문
해탈과 득도는 우리 일상 가운데 있어
서울 역삼동 주택가 어느 다세대 주택에 대승회(02-538-7108)라는 공부 모임이 자리잡고 있다. 유불선 삼교를 두루 공부하며 수행을 겸하는 이곳에서 이둔(理屯) 박태섭(85·종교) 동문이 강의하고 있다. 방으로 들어서니 박 동문을 만나기 전 가졌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도사연하며 권위를 내세우거나 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유쾌하고 거리낌이 없다. 선이 가늘고 다소 야윈 도사풍(?) 외모를 떠올렸지만, 직접 만나본 박 동문의 인상은 넉넉하면서도 단단한 무골에 가깝다.
박 동문은 얼마 전 명나라 지욱 선사가 쓴 <주역선해>(도서출판 한강수)를 역주하여 화제를 모았다. 붓다의 눈으로 주역의 도를 읽고, 주역의 눈으로 붓다의 마음을 들여다본 수작으로 꼽히는 이 문헌의 역주작업에 7년 세월이 소요됐다. 꼼꼼한 주석과 깔끔한 번역 문장이 돋보이는 이 역주본에 대해 탄허 스님의 제자인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은“진짜 우담바라 꽃이 핀 것과 다름없는 경사”라 평했다.
박 동문이 수행의 길로 들어 선 것은 우연과 운명이었다. 중학교 때 길을 가다가 소림내공을 전수한다는 전단이 붙어 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끌려 삼각산 아래 남곡산(南谷山) 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추당(金秋堂) 선생에게 단법(丹法)을 전해 받았다. 이로써 박 동문은 서화담, 이토정, 송화산, 송을산, 김추당으로 이어지는 도맥을 이어받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 도교 수련에 빠져 지낸 박 동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전교 꼴지를 도맡았습니다. 경전을 공부하고 수련에 힘쓰느라 학과 공부는 손을 놓아버린 겁니다. 집안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아버님이 워낙 심한 낭만주의자(?)여서 어머님이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고, 단칸방 생활이 이어졌으니까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군대를 갔다 온 박동문은 세상을 등지려 했다. “태백산,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련하다가 종생하려 했지만 운명이라는 게 또 저를 세상으로 내몰더군요. 학자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공부를 더 해야겠다 마음먹고 뒤늦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도교, 불교, 유교경전 공부만 한 탓에 서양의 종교, 철학 전통에는 밝지 못한 편이었어요.”
박 동문은 서강대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서강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신학, 철학, 종교학 강의를 수강하면서, 막연하게 호기심을 갖고 있던 분야의 지식을 마음껏 흡수하고 사색할 수 있었으니까요. 종교학과의 길희성, 김승혜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양모 선생님의 성서강의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터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실천했습니다. 꼼꼼하게 원전 강독을 하며 독일어 공부에 힘썼던 기억도 각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문은 물론 영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산스크리트 등에 두루 밝은 박 동문이 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을 표하는 주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도철학을 공부하러 옥스퍼드에유학할 기회도 없지 않았지만, 학자의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불교와 공맹(孔孟)의 가르침과 도교 수행의 길을 솥발같이 겸비하면서 경전 공부와 수행에 정진하는 게 저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학문 없는 수행과 수행 없는 학문은 날개 한 쪽이 없는 새라 하겠지요. 제가 열심히 공부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해탈과 득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박 동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스스로 득도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우문현답이 이어진다. “이제는 아무 거리끼는 것 없이 하루하루 마음이 편안해요.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할까요.경전 공부와 수행에 매진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 깨달은 것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는 지금의 삶이 행복합니다. 일상 외의 어떤 별다른 곳에 대단한 도가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지요.”박동문은 뒤늦게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기도 하다.
중학교때부터 선도 수련의 세계에 본격 입문
해탈과 득도는 우리 일상 가운데 있어
서울 역삼동 주택가 어느 다세대 주택에 대승회(02-538-7108)라는 공부 모임이 자리잡고 있다. 유불선 삼교를 두루 공부하며 수행을 겸하는 이곳에서 이둔(理屯) 박태섭(85·종교) 동문이 강의하고 있다. 방으로 들어서니 박 동문을 만나기 전 가졌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도사연하며 권위를 내세우거나 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유쾌하고 거리낌이 없다. 선이 가늘고 다소 야윈 도사풍(?) 외모를 떠올렸지만, 직접 만나본 박 동문의 인상은 넉넉하면서도 단단한 무골에 가깝다.
박 동문은 얼마 전 명나라 지욱 선사가 쓴 <주역선해>(도서출판 한강수)를 역주하여 화제를 모았다. 붓다의 눈으로 주역의 도를 읽고, 주역의 눈으로 붓다의 마음을 들여다본 수작으로 꼽히는 이 문헌의 역주작업에 7년 세월이 소요됐다. 꼼꼼한 주석과 깔끔한 번역 문장이 돋보이는 이 역주본에 대해 탄허 스님의 제자인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은“진짜 우담바라 꽃이 핀 것과 다름없는 경사”라 평했다.
박 동문이 수행의 길로 들어 선 것은 우연과 운명이었다. 중학교 때 길을 가다가 소림내공을 전수한다는 전단이 붙어 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끌려 삼각산 아래 남곡산(南谷山) 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추당(金秋堂) 선생에게 단법(丹法)을 전해 받았다. 이로써 박 동문은 서화담, 이토정, 송화산, 송을산, 김추당으로 이어지는 도맥을 이어받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 도교 수련에 빠져 지낸 박 동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전교 꼴지를 도맡았습니다. 경전을 공부하고 수련에 힘쓰느라 학과 공부는 손을 놓아버린 겁니다. 집안도 무척 어려웠습니다. 아버님이 워낙 심한 낭만주의자(?)여서 어머님이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고, 단칸방 생활이 이어졌으니까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군대를 갔다 온 박동문은 세상을 등지려 했다. “태백산, 소백산으로 들어가 수련하다가 종생하려 했지만 운명이라는 게 또 저를 세상으로 내몰더군요. 학자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공부를 더 해야겠다 마음먹고 뒤늦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도교, 불교, 유교경전 공부만 한 탓에 서양의 종교, 철학 전통에는 밝지 못한 편이었어요.”
박 동문은 서강대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서강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신학, 철학, 종교학 강의를 수강하면서, 막연하게 호기심을 갖고 있던 분야의 지식을 마음껏 흡수하고 사색할 수 있었으니까요. 종교학과의 길희성, 김승혜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양모 선생님의 성서강의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터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실천했습니다. 꼼꼼하게 원전 강독을 하며 독일어 공부에 힘썼던 기억도 각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문은 물론 영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산스크리트 등에 두루 밝은 박 동문이 학자로 대성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을 표하는 주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도철학을 공부하러 옥스퍼드에유학할 기회도 없지 않았지만, 학자의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불교와 공맹(孔孟)의 가르침과 도교 수행의 길을 솥발같이 겸비하면서 경전 공부와 수행에 정진하는 게 저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학문 없는 수행과 수행 없는 학문은 날개 한 쪽이 없는 새라 하겠지요. 제가 열심히 공부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해탈과 득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박 동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스스로 득도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우문현답이 이어진다. “이제는 아무 거리끼는 것 없이 하루하루 마음이 편안해요. 괴로움이 사라졌다고 할까요.경전 공부와 수행에 매진하면서 제가 알고 있는 것, 깨달은 것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는 지금의 삶이 행복합니다. 일상 외의 어떤 별다른 곳에 대단한 도가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지요.”박동문은 뒤늦게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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