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 -권선호(64.생명)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원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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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4-24 08:39 조회15,0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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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 신길동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건물에 들어서자, 한 무리의 소녀들이 쪼르르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활짝 핀 봄꽃처럼 생기발랄한 그들에게서 그늘을 찾기란 어렵다. 소외 계층 청소년에게 기술을 연마시켜 사회 진출을 돕는 돈보스코 청소년센터. 이곳에 머무는 청소년 중 ‘마음이 불우한’ 아이들은 없다.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에게 이렇듯 활기를 불어넣어준 장본인은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의 원장신부 권선호(64․생명) 동문이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사실 푸른 눈의 미국인. 권 동문은 모교에 진학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후 40년 넘게 ‘청소년 교육의 대부’로 살아왔다. 2003년 돈보스코 청소년센터에 부임한 그는 방황하던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12세 이상으로 고아원 출신이거나 편부․편모 슬하의 소외 계층 아이들이 이곳에 옵니다. 그 학생들이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마치도록 돕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저희 센터의 역할이지요. 이곳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꼼꼼히 챙기고 따뜻한 사랑을 베푼 덕분에 아이들이 얼마나 밝은지 몰라요.”
살레시오회 소속 신부인 권 동문이 한국에 온 것은 “새로운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홍콩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그에게 마침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찾아왔다. 1965년 서강대에 64학번으로 편입한 그는 작지만 변화무쌍한 한국에 매력을 느꼈다.
“서강대를 졸업한 뒤 미국 대학에서 교육학․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국에 친구가 더 많기도 했고, 한국이 급격히 발전하는 과정에 저도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발전을 이룬 미국이 가을 같다면, 막 생동하기 시작한 한국은 봄 같았어요.”
권 동문은 1974년 한국에 돌아온 뒤 광주 살레시오 고교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생물․윤리․영어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89년부터 6년간은 이 학교의 교장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문제아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성교육에 앞장서기도 했다.
권 동문의 관심은 비단 한국의 소외계층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95년 살레시오 교육회와 중국 연길시가 합작으로 설립한 연길국제합작기술학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학교 운영을 위한 후원금 모금을 담당했다. 가난한 농촌출신 조선족 및 소수의 중국인 청소년에게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연길국제합작기술학교는 현지에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2003년까지 중국에 머물렀던 그는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화를 들려줬다.
“중국에서는 미사를 드리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죠. 게다가 중국어로 미사를 드리는 것은 더욱 어려워 학생들에게 ‘하느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딱 한 마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이 말을 기억하는 거예요. 극도의 빈곤에서 거칠게 자란 아이들이 저희와 1년간 함께 지낸 뒤 성실하게 변모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
“신부는 은퇴가 없어 행복하다”는 권선호 동문은 “봉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때론 그들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
“늘 아이들과 함께 해서 마음이 늙지 않는 것 같아요. ‘나눔의 삶’은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선물해줍니다.”
이남희 (98·영문) 주간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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