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김시준(16 아텍)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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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광현 작성일22-02-22 16:31 조회28,3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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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글 : 서포터즈 1기 천강현(21 신방)
서강대 ‘아텍’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를까? 저마다 답은 다를 것이고 하나의 답변이 아텍을 전부 대표하지 않겠지만, 창작하는 데는 아주 중요한 힘이 하나 있다.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이다.
김시준 동문은 2021 신영균 졸업 작품 지원작에 선정된 ‘Touch Art Archive’를 통해 여러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들었다. 그는 평면 상의 미술 작품을 3D프린팅한 파일을 집대성하여 시각 장애인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각 장애인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비장애인에게는 자칫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장애인의 고충을 바라본 힘, 그리고 상상을 실현하는 힘. 그런 힘들의 원천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고민 많은 창작자들에게 혜안이 될 수 있는 김시준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시준 동문이 졸업 전에 제작한 ‘Touch Art Archive’가 Creative Capstone Project(이하 CCP) 수업에서 우수 작품으로 뽑혀 2021년 신영균 졸업 작품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다.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갓 졸업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서강대학교 아트&테크놀로지 학과 16학번 김시준이라고 합니다.
Q. 2021 신영균 졸업 작품 지원작에 선정된 ‘Touch Art Archive’는 어떤 작품인가요? (간단한 소개, 제작 동기, 제작 방식, 작동(활용) 방식 등)
▲ Touch Art Archive 로고
Touch Art Archive는 현재 맹학교에서 사용중인 교과서 4종의 회화 작품 107점을 3D프린팅 가능한 STL파일로 변환하여 보관중인 저장소입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전, 미술대학에 진학한 한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를 보게 되었어요. 비슷한 사례를 해외 기사에서는 몇번 접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더라구요.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막연하게 질문들이 떠올랐어요. 시각장애인은 어떤 미술 교육을 받고, 어떻게 미술에 대해 생각하는지, 또 그들이 원한다면 미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열려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이요.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해 관련 논문도 찾아 보고, 시각장애를 가진 학우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알게 된 것은, 공교육 내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미술 교육이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2015년도 개정 미술 교육과정을 보면, 크게 미술 교육은 체험, 표현, 감상이라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시각장애인이 받는 맹학교의 미술 수업에서 체험과 표현 영역의 경우 촉감을 활용한 수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감상 영역에 대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인프라와 방법론은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던 거에요. 말 그대로 시각장애인에게 회화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거죠. 맹학교를 졸업한 학우와의 인터뷰에서, 전맹이었던 자신의 경우 미술 감상시간은 단순히 작가명과 사조, 그림의 내용을 외우는 암기과목이었고, 그 시간이 참 고역이었다고 대답했어요. 그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어떤 기술을 활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해외 사례의 경우 조각과 같은 부피가 있는 미술 작품을 3D프린팅을 통해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제작해 교육에 사용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평면 회화 작품도 부피값을 준다면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잔존감각을 활용해 만지며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미술 '감상'의 영역까지 나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이전보다는 미술 감상 시간이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Touch Art Archive 웹사이트
사실, 3D프린팅을 활용해 시각 장애인의 교육을 시도했던 것은 제가 처음이 아니에요. 해외 사례의 경우, SEE 3D와 같은 교육 단체가 조각 작품 혹은 일상 속 사물 등과 같은 것들을 3D파일로 제작해 교육에 활용하고 있어요. 제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아카이빙입니다.
과거의 시도들이 아직까지 맹학교의 교육 환경 속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까닭은, 3D프린팅에 대한 선생님들의 접근성이 낮기 때문이었어요.
3D로 모델링된 명화 그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기 편한 방식으로 아카이빙하는 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작정 전국의 모든 맹학교에 전화를 돌려 어떤 교과서를 사용하시는지 여쭤봤어요. 그렇게 교과서별로 명화를 정리했고, 그 중에서 미술사적으로 주로 다루어지는 작품 107점을 정리해 3D로 변환해 아카이빙했습니다.
그 아카이빙 웹사이트가 바로 Touch Art Archive이구요. www.touchartarchive.com에서 아카이빙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 웹사이트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아 3D로 출력하실 수 있습니다.
Q. ‘Touch Art Archive’를 제작한 동기와 작품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가 정말 놀라운데요! 실제로 작품을 손으로 만지고 느낀 이용자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리고 그 반응을 들은 동문님께서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느끼셨나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이 느껴지셨나요?
위에 언급했던 시각장애인 학우와 고흐의 <별 헤는 밤>을 3D로 출력해 플레이테스트를 진행했어요. 10분동안 그 출력물을 만지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만지고 있는 행위를 미술 감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그림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는 것이에요.' '밤하늘이 단순히 제가 맨날 보는 암흑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찬란하게 표현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왜 미술에 빠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프로젝트에는 명확한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장애인이 시각을 활용해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와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시각장애인 학우와 대화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시각장애인에게 그림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 그곳에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에요. 그 질문을 통해 비장애인과 대화하며 궁금증을 충족할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는 그림에 따라 촉각적 경험만으로 만족스러운 감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이 프로젝트가 이전까지 시각장애인에게 전혀 열려 있지 않던 미술감상이라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열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에요. 보이지 않던 이 프로젝트의 진짜 의미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주어 너무 감사했던 순간이었어요.
▲ 3D명화 출력물
Q. ‘Touch Art Archive’ 제작 과정 전반에 걸쳐 특별히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만약 있었다면, 어떻게 해결하고 어디에서 도움을 얻으셨나요?
프로젝트 초기에, 맹학교에서 어떤 미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어떤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내야 했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과거의 데이터 뿐이더라구요. 현재 어떤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비장애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과거의 데이터로 논리를 만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지금 이 프로젝트에서 적확한 포인트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전국의 모든 맹학교에 전화를 무작정 걸었던 날의 기억이 나요. 어떤 선생님은 친절하게, 어떤 분은 경계하시면서 전화를 받으시더라구요. 차근차근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드리자 많은 선생님들께서 제 프로젝트에 공감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 선생님들 중 한분, 충주 맹학교의 김융경 선생님께서는 후에 플레잉테스트를 도와주시면서 저에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Q. 인터뷰 제목이기도 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능력인 것 같습니다. ‘Touch Art Archive’의 핵심 아이디어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아이디어의 원천에는 무엇이 있나요? 즉, 훌륭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동문님만의 비결이 있다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면 그래도 그곳을 계속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요. 지금 보이는 것들을 걷어내다 보면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더라구요. 그래서 저만의 방법은 아이디어를 낼 때 충분한 시간을 들여 특정 상황을 관찰하는 것이에요.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정해진 시간 내에 아이디어를 짜내는 방법은 저와 잘 맞지 않는 방법인거죠.
Q. 졸업을 앞두고 계신 동문님께서는 그간 서강대에서의 일들을 회상해볼 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Art & Technology 라는 학과명에서도 드러나듯, 저는 항상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경계선에서 벗어나 확실한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아직까지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경계선 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경계선의 폭을 넓혀 나가려 노력했던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Q. 현재 동문님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트리를 만들 때, 어떤 나무를 키워야 할지부터 고민하곤 했었어요. 그리고, 트리의 장식품들도 하나하나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더라구요. 장식품을 만드는 사람의 수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이미 만들어진 나무와 장식품을 활용해서 조합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제가 하고 싶어요. Art&Technology 학과에서 배운 것은, '이런 것도 트리가 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놀랍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앞으로도 그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트리의 요소를 조합하고 그 트리가 가장 잘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민과 행동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서강대 후배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부터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 원칙을 잘 지키지 못했어요. 아트 & 테크놀로지 학과에 처음 입학하고, 저는 4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방황의 시기를 거쳤는데요.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이 쏟아졌기 때문이었어요. 코딩을 못하는데 코딩을 해야 했고, 디자인을 해 본적 없이 꾸역꾸역 결과물을 내야 했어요. 여러 가지에 재능이 특출난 학우들을 보면서, 나는 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뽑혀 학과생이 되었는지를 의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제가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방법은, 선택을 하기 전에 저에게 주어진 어떤 것이든 일단 집중하는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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