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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편지 - 열정 넘치던 싸움닭 조, 자주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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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12-26 03:46 조회16,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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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87철학) 에게

 

누군가 시간이란 녀석은 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처럼 흘러간다고하던데, 처음에는 거의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빨리 없어져 가는...

 

그러니까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정확히는 87년이었으니까 18 년쯤 되려나? 신학기 수강 신청을 하는 날이었지. 나는 입학하고 2년 만에 학교를 간 거고, 막 입학한 새내기 학번들이 모여서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강 신청을 하고 있었지. 강의실을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는 거야.  장석봉! 살아있었네?” 놀라워라. 날 아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데 개그맨 최양락처럼 생긴 저 인간은 누구지. 누군데 내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하는 걸까. 난처하게 시리. 난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구만.

 

신입생 환영회 때 본 사람일 거는 같은 데, 선배일까? 아님 동기폼새로 봐서는 선배일 것 같지는 않고, 모르겠다. 옆자리쯤에 앉았던 동기겠지 뭐. 나도 말을 놓아야겠군. 잘 지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오갔을 거고, 수강 신청을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왔지. 난 입학하자마자 군대에 갔고 그래서 아는 사람이라고는없었으니까... 

 

아무튼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사실 기억력 제로인 내가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를 선명히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너만은 아닌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수강 신청 때 만났을 때니까 두 번째겠군. 그렇담 첫 번째 만남은 어땠었지. 신입생 환영회 때 보았을 테니까. 아마 물레야 쯤 되었을 터이고, 그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역시 기억력 제로가 맞긴 맞나 보다.

 

학교 다닐 때 너와 난 아주 친했다고는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이 그렇게 지냈지. 넌 과 학생회장도 하고 운동도 하느라 바빴고 나는 이리저리 그 언저리에서 지냈고, 도서관 공부족은 아니었지만 도서관 아르바이트를하느라 바빴고... 

 

그 사이 넌 이리저리한 전설을 남겼지. 시위 때 냄비깡통 모자를 쓰고 나와 한바탕 사람들을 뒤집어 지게 하기도 하고, 아침에 깨어보니 지하철 계단이었는데 돈이 쌓여 있어서 그걸로 해장술을 했다는 일까지. 암튼 넌 정말 에너제틱 한 사람이었지. 지금도 기억나는 건 좌중을 휘어 잡아가며 부르던 불나비란 노래야. 한번은 탁자 위에 올라가 부르다가 천장을 뚫을 정도로 열정 넘치게 부르던 그 노래.

 

그리고 기억 나냐? 졸업하고 한동안 사업이란 걸 구상한답시고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자료를 찾던 일. 요즘의 IT 사업에 해당할 컴퓨터 통신 사업을 계획했던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조금만 잘 풀렸다면 우리도 젊은 벤처 기업가가 되었을 지도. . .


아무튼 그러던 어느 날 넌 갑자기 공무원이 되겠다며 시험공부에 몰두했지. 결국 교육부로 들어간 널,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의아해 했던지... 천하의 조진웅이 공무원을 한다고, 정말안 어울리는 조합인 걸 하고.


역시나 얼마 뒤 네 공무원 동기라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 친구가 그랬지. 상사들을 얼마나 치받는지 네 별명이 ‘싸움닭 조’ 라고.


그런데 네 이마가 점점 넓어져 가는 만큼 어딘지 모르게 네 열정도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지. 언젠가 불렀던 불나비도 예전의 그 다이내믹한 힘도 없었고. 

 

아무튼 비록 물리적 거리가 멀긴 하지만 가끔씩은 보도록 합시다. 이따위 대화는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장석봉이! 잘 지내나보지. 전화 한 통화하지 않는 걸 보니. . .”“그러는 넌 . . .”

 

장석봉(87·철학) 동문은 출판기획일과 번역일을 하고 있다. 베어스 팀의 오랜 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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