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 - 수선화의 집 김기혜(공공정책대학원 22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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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10-01 16:59 조회15,9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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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의 집 김기혜(공공정책대학원 22기) 원장
여성노숙자센터 '수선화의 집'의 김기혜 원장(61세, 공공정책대학원 22기)과 함께 지내는 20여 명의 여성들 중 몸과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없다. 대부분 불행한 가정환경과 신체장애로 버려져 길거리에서 지내던 여성들이다. 그 여성들에게 따뜻한 쉼터를 제공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김기혜 원장이 하고 있다.
"여성 노숙자들은 남성노숙자들과 달리 90%가 정신질환자예요. 그런 여성들이 길에서 생활하게 되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죠. 성폭행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임신을 하게 되기도 해요."
98년도에 용산역의 무료급식소에 가서 여성 노숙자들에게 같이 살자고 권유하기 시작한 게 '수선화의 집'의 시작이었다. 김 원장이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 9천만 원으로 전셋집을 얻었고 청량리역과 용산역의 여성 노숙자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주위에서는 간혹 나이 들어서 편하게 살지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묻기도 한다.
"처음에 만날 때는 참 더럽죠.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쉰 냄새도 많이 나고. 사실 밖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성폭행도 빈번하게 당하다보니 갖가지 질병에 걸려있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나 김 원장은 그런 것들이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과 손을 잡고 같이 숟가락을 섞어 밥을 먹는 일이 전혀 역겹거나 하지 않았다. 김 원장은 스스로 ‘체질적으로 타고났다’고 말한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성당 사목회장 일을 하면서 성당의 고아원 일을 도우셨어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했던 일을 보아왔던지라 자연스럽게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내가 무슨 일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김 원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와 은행 등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되자 더 이상 회사에 다니고 싶지가 않아져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서강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1983년부터 서강대 평생교육원에 다녔어요. 공공정책대학원도 졸업했구요. 이대에서 보낸 시간보다 서강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 겁니다. 고모가 수녀님이라 워낙에 서강대에 가라고 권유를 많이 하셨어요. 뒤늦게 서강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죠.”
김 원장의 서강과의 인연은 꽤 깊다. 서강대 철학과를 나와 현재 본교에서 불문학 강사를 하고 있는 최영주(철학 91) 동문이 바로 김 원장의 딸이다.
“서강대에는 제가 빚진 게 많습니다. 서강대 나눔터에서 지난 7월까지 후원금을 받았거든요. 당시제가 영문과 신숙원 교수님에게 편지를 썼더니 교수님이 흔쾌히 도와주셨지요.”
쉼터의 여성들은 모두 부업을 한다. 집에서 하는 간단한 작업들, 종이 접기나 오리기 등의 일이다. 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회적 성취감을 느낄 수도 있고, 훗날 사회에 복귀할 자금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부업을 해서 버는 돈은 미미하다. 하루 종일 종이를 접어야 몇 천원 벌기도 만만치 않다. 부업을 해서 버는 돈은 전부 본인이 가지고 김 원장이 받는 돈은 그들의 기초생활수당 30만원 중 20만원. 그돈을 가지고 쉼터의 여성들이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데 쓴다.
“저번에는 인천에 가서 같이 지내는 여성들과 배를 탔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여성들이 말해요. 누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주겠냐고. 너무 고맙다고 말이지요. 이럴 때 정말 보람이 느껴지죠. 후원금이 많으면 이런 문화적인 혜택도 자주 누릴 수 있게 해 줄 텐데….”
경미한 질환을 가졌던 이들은 좋아져서 취업을 해 쉼터를 떠난다. 김 원장은‘ 수선화의 집’이 그런 이들에게 든든한 친정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혼자 피어있는 것보다 여러 송이가 함께 피어있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처럼, 혼자서 살아가기 쉽지 않은 여성들이 모여 군락을 이루어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방인화(91 사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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