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_내 삶의 2막은 즐거운 택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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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10-01 15:26 조회16,2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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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김기선(최고경영자과정 STEP 2기) 동문
삶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눈다면 후반의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야구는 9회 말부터' '축구는 후반전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젊음의 패기와 생채기가 지나간 자리는 이전의 것보다는 더욱 희망차고 온화하며 값진 것이 되어야한다.
내 나이 57세에 나는 금융계에서 39년 동안 쌓은 경험과 명예를 뒤로한 채 택시 핸들을 잡았다. 모 상호저축은행 사장으로서 임기 1년을 남기고 사직서를 낸 것이다. 의사도 나이 60이 되면 손이 떨려 수술을 못하고, 세계적인 석학도 나이 60이 되면 명예교수로 물러나 강단을 떠나기 마련이다. 슬프지만, 어찌 생각하면 변한 나의 모습에 어울리는 새로운 일을 찾아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것도 가슴 벅차고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20년 전부터 뜻을 뒀던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잘 나가던 영풍상호저축은행 사장에서 할당된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고생하는 택시 기사로. 그렇게 내 인생의 2막은 시작됐다.
“어떻게 택시 운전까지 하게 됐느냐?” 고 묻는 사람이 많다. 택시 회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 선배들은 나를 이렇게 환영해주었고, 택시 기사와 손님으로서 다시 만난 동료, 친구들도 이렇게 묻곤 했다. ‘왜 일부러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느냐?’ 는 의미다. 그렇게 묻는 사람과 나의 차이는 삶의 가치를 어느 곳에 두느냐에 있을 것이다.
택시 기사는 노년에 가질만한 직업으로는 최고다. 우선 정년이 없어 좋고, 여기저기 구경하며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좋다. 또한 예전처럼 라이벌 회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퇴근 후에도 업무에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어서 좋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훨훨 돌아다니는 사장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난생 처음 하는 택시 운전이 생각보다 만만치는 않았다. 긴장한 탓에 미터기를 내리지 않은 채 시내를 주행하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을 태우지 못한 적도 있다. 어떤 손님은 지리를 몰라 헤매다가 그냥 큰 거리에 내려준 적도 있다. 법인 택시 기사의 숙명인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 손해를 본 적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택시 운전의 매력과 성취감은 이를 뛰어 넘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얻는 배움과 즐거움, 요기를 하기 위해 찾은 호떡집에서 열린 즉석 파티, 처음에는 못마땅해 하던 아들이 나의 선택을 이해해줄 때, 그리고 택시 운전 4년 만에 갖게 된 개인택시까지. 택시 운전을 하며 항상 꿈꿨던 개인택시 제복을 입고 조심스레 내 애마를 운전하던 날, ‘과연 얼마나 갈까?’라며 의심한 내 자신을 이겼다는 생각에,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을 맛봤다.
잘 다니던 상호신용금고의 사장직을 박차고 나온 것에 후회는 없다. 게다가 택시운전을 하며 몇 차례 TV에 나온 바람에 제법 유명한 택시기사가 됐다. 아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던 홍세화씨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택시기사일 것이다. 내가 계속 신용금고의 사장을 했다면, 누가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하겠는가? 나에게 "왜 택시운전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오히려 난 "왜 이 좋은 걸 안하세요?" 라며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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