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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재선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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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02 10:07 조회15,9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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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년 가을, 이재선 모교 명예교수의 저서가 2권 나왔다. 기존 연구 자료를 모은 논문집이거나 기발간한 책의 개정판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596쪽에 달하는 ‘테마틱스 한국문학 : 모티프의 순환과 변형을 찾아서’와 438쪽 분량의 ‘고양이 한국 문학 : 한국 문학을 종단(縱斷)하는 고양이들’ 신간이었다. 당장 3학점짜리 전공 수업을 개설해서 주교재로 삼아도 되는 학술서이자 연구서였다. 가왕이라 불리는 가수 조용필 씨가 몇 해 전 신곡으로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던 장면이 연상됐다.

 

평소 일상이 궁금합니다.

교수로서 일생을 보내다보니 책 읽고 연구하는 게 몸에 배었습니다. 아침 6시면 기상해서 집 근처인 서울교대 운동장과 주변을 산책합니다. 걸으면서 연구 주제를 되새깁니다. 5000보 정도 걸으면 귀가해서 식사하죠. 특별한 활동이라면 매주 목요일마다 대학 친구인 동료 교수 세 명과 과천 나들이를 다녀오지요. 아직 직접 운전하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을 애마인 쏘나타에 태우고 과천 산림욕장까지 이동해서 산책하며 담소하고 같이 점심 먹어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이(83세)에 비해 건강한 편입니다. 아직 책을 볼 수 있는 눈과 글 쓸 수 있는 손이 성하니 다행입니다.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라고 고약한 병이 낫지가 않네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건인데, 1992년 집에서 자다가 화재가 났어요. 얼굴 부위를 제외하고 온몸에 화상을 입었어요. 평소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재 이후 칼같이 금연했죠. 사고 직후 한강성심병원에 3개월 동안 입원했는데, 박홍 총장 신부께서 오셔서 ‘베드로’라고 영세를 주셨더군요. 나는 개신교인데…. 퇴원해서 연유를 물어보니 오래 못 살 것이라 참담히 생각하셨대요. 거의 죽을 뻔했죠. 한국 문학의 바다에서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을 건져 올리는 어부가 되라는 뜻에서 ‘베드로’를 받아들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평소 로욜라도서관을 자주 찾으십니다.

매주 한 번은 로욜라도서관에 가서 새로 들어온 책 보고 복사합니다. 최근 3개월 동안은 허리 디스크 때문에 꼼짝을 못해서 못 갔어요. 목마를 때 갈증을 해소하는 샘터와 지적 갈망을 충족하는 도서관은 지상에서 축복 받은 공간입니다. 1969년 서강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도서관이 본관에 있었어요. 이후 R관 지하로 이동했다가 1974년 지금의 로욜라도서관이 준공됐죠. R관 지하 도서관 시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을 다니면서 이책 저책을 살피고 펴보다가, 지금까지 알고 있지 못한 세계와 만나는 즐거움이 대단합니다. 나는 이를 도서관 지적 산책이라 불러요.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제비가 왕자 동상 곁을 떠나지 않고 있듯이 나도 로욜라도서관을 끝내 떠날 수 없습니다.

 

신간을 2권이나 내셨습니다. 특히 ‘고양이 한국 문학’은 교정에서 야생 토끼와 고양이를 마주쳤을 때처럼 의외성을 띈 신선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고양이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웃음)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죠. 매번 거대 담론만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한국 문학에 대한 단일 테마로 처음 펴낸 책이 ‘고양이 한국 문학’입니다. 보들레르의 시 ‘고양이’를 두고 1960년대에 당대 문학 비평의 세계 정상들이 이른바 ‘고양이 논쟁’에 나섰던 장면을 접했던 충격이 잔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로만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미셸 리파테르의 문체론, 뤼시앙 골드만의 문학 사회학 등이 서로 다른 비평적 시각과 방법으로 치밀하게 논쟁했었죠. 그래서 고려시대 이규보와 이색의 글에서부터 21세기 현대 문학의 구효서·박덕규·편혜영의 소설과 황인숙·황병승의 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뒤져서 고양이 관련 작품 93편을 찾아내어 연구했습니다. 조선 전기 한학자인 서거정 선생이 유독 고양이 작품을 많이 다뤘더군요. 이번에 이른바 고양이 문학 사전을 만든 셈인데, 훗날 후학들이 한국 문학 속 고양이를 연구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봅니다. 한국 사람들 심성과 의식 속에 고양이가 어떻게 이미지와 상징으로 각인되어 왔는가를 문학 작품으로 살핀 연구입니다.

 

같은 날 발간한 ‘테마틱스 한국문학’은 신발, 스커톨로지(분변·똥), 부름, 바리데기, 바보, 감금 등 6가지를 다원적 테마로 삼았습니다. 특히, ‘감금’ 주제는 교지 ‘서강’의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에 3개월 정도 수감되었을때 겪은 ‘감금’ 경험이 현대 한국 감옥 문학의 성격적 차원을 공간의 시학 내지 공간의 정치학으로 살피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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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은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요?

화상 이후 손가락이 굽는 바람에 컴퓨터 자판을 쓰기가 불편하고 어려워서 1000자 원고지에 직접 적습니다. 

 

신간을 故김열규 교수께 헌정한다고 머리글에 밝혔습니다.

김열규 선생님은 대학 선배이자 교수로서 나의 롤 모델이셨어요. 대구에 자리한 영남대학교에서 7년째 강의하고 있던 어느 날 불쑥 찾아 오셨어요. 같이 서강대학교에 가자고 그러시더군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사이지만 외경의 롤 모델이 같이 가자는 데 안 갈 수가 있나요. 자랑스러운 서강에 스카우트 된 셈이지요. 그리고 같이 ‘서강학파 국어국문학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영남대에서는 시를 많이 가르쳤는데, 서강에 와서 소설을 가르치는 교수로 전향해서 한국 소설사·서사학·테마틱스 등을 주로 다뤘습니다.

 

창작보다 비평에 강한 게 서강 국어국문학과입니다. 창작의 기대를 안고 입학했다가 간혹 실망하는 학생들이 제법 있습니다.

저도 문학소년이었습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문예부장으로 경북예술제에서 시 장원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대 문리대에 지원했는데, 면접 볼 때 속된 말로 ‘야코’가 죽었습니다. 면접 교수님들이 서울대는 작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 오는 학교가 아니고 학자가 되기 위해 오는 곳이라고 엄포를 내렸죠. 그래도 학창 시절 2~3학년 때 까지 소설도 습작했지만 신춘문예에 번번이 실패했어요. 제게 있어 창작에 대한 애착은 첫사랑에 대한 애착과 같아요. 한국 소설을 다루는 제 저작 가운데 제 소설도 한 권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마음은 쓰고 싶은 데 잘 안 되는 거죠.

 

서강 국어국문학과를 이끌어 갈 때도 서강은 창작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학풍을 옛 스승들처럼 강조했습니다. 이 점이 사실 제자들에게 조금 미안해요. 창작 욕구를 억누른 것 같아서 말이죠. 서강이 예술 영역에서 ‘박토(薄土)’였지만 그래도 김승희(70 영문), 최시한(71 국문), 최현무(72 국문) 같은 걸출한 시인·작가를 배출했으니 ‘서강 문단’ 형성에 조금은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찬제(81 경제)·김경수(81 국문)·양진오(85 국문)·장일구(87 국문) 등 서강 출신 평론가들은 훨씬 많이 배출됐죠.

 

문학을 연구하고 비평하는 게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요?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작가 이상으로 친절하게 독자께 전달하는 것이 비평가의 본래 역할입니다. 비평가는 문학 해석을 위한 이른바 ‘armed vision’을 가져야 합니다. 비평 덕분에 잊힌 작품이 다시 읽혀지기도 합니다. 다시 읽고 싶은 가독성을 지닌 게 좋은 작품이자 고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이 관점을 만들기도 하지만 ‘관점이 대상을 만든다’라는 게 학자적 비평가로서의 제 신조입니다.

 

서강은 교수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서강은 정말 좋은 학교입니다. 내가 강의할 당시에 일반 대학의 경우 교수들이 체면 차린다고 수업 시작하고 10분 뒤에 들어갔다가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나오곤 했어요. 서강에서는 학생들 출석 체크는 물론 지각까지 철저하게 체크해야하니 교수들도 고역이긴 고역이었죠. 대학생이 수업에 지각하는 것까지 체크한다니 ‘IHS(예수)’가 ‘International High School’ 줄임말인가라는 말도 있었지요. 한 학기 끝나고 보고할 때, 출석 자료를 안냈더니 트레이시 교무처장께서 출석 관련 자료가 빠졌으니 얼른 제출하라고 하더군요. 학생들도 어찌나 적극적인지 1년 동안 가르칠 게 한 학기면 끝났어요. 일정 기간 강의한 교수들에게 쉬면서 연구할 에너지를 보충하라는 취지의 안식년 제도도 서강이 유일하게 운영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가 집필의 기회지요. 1980년 힘든 학생처장을 맡은 뒤, 1981년 서강배구부를 만들어서 운영해본 기억과 같은 해에 신입생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캠프를 전국에서 처음 실시해봤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서강은 자랑스러운 대학입니다.

 

독후감 제도를 국어국문학과에서 관장했습니다.

독후감은 서강의 교양 교육에 크게 일조한 프로그램입니다. 읽고 쓰는 훈련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힘썼습니다. 전교생에게 소설을 주로 읽혔죠. 내가 서강에 오기 전부터 김완진 교수님과 김열규 교수님께서는 공저한 ‘대학국어교정’으로 독후감과 문장론을 접목한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이후 서강대 국어국문학과가 ‘대학국어교정’을 펴냈죠. 내가 영남대 재직 시절 크리안스 브룩스와 로버트 펜 워런이 펴낸 ‘모던 레토릭’의 각 장을 요약한 ‘국어 문장론’이 대구 지역 5개 대학 합동교재로 쓰였는데, 내용이 서강의 ‘대학국어교정’과 유사했어요.

 

독후감 제도를 위해 국어국문학과에 조교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독후감과 글쓰기 교육을 중요하게 여겨서 가능한 일이었죠. 내가 하버드 대학으로 객원교수로서 연구하러 가게 되었을 때 당시 존D.메이스 총장께서 하버드 등 미주 대학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composition(구성)’과 ‘rhetoric(수사)’ 교육에 대해 연구해서 서강에 접목해볼 것을 따로 요청하셨죠. 한 학기 수업이 끝나면 중고책 판매점에서 관련 자료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잔뜩 사다가 서강국어교육과 독후감 교육에 활용하려고 연구했습니다. 다시 서강에 돌아와보니 메이스 총장은 그 사이 학교를 떠나셨더군요.

 

2001년 가을, 정년퇴임을 앞두고 개최한 고별 강의에서 연구를 위한 소설 읽기가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으로 무릎을 치며) 맞아요. 그랬습니다. 남들은 소설 읽으면서 편하게 연구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연구를 목적으로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읽는 게 쉬울 리가 있나요. 요즘 소설은 분량이 길다보니 읽어내는 것도 어렵고, 며칠 지나면 내용을 잊어먹어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할 때도 있죠. 제 독서는 ‘사냥꾼의 독서’이다보니 연구를 위해 찾아내야하니까 소설 읽기가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쓰디쓴 고통’이 아니라 ‘즐거운 고통’이나 ‘달콤한 고통’의 읽기 정도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연구를 위한 읽기는 고통스럽고 재미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꼭 써야할 책이 있습니다. 현재 구상 중인 ‘한국 고(古)소설사’입니다. 한국 소설사를 완성하는 게 제 남은 생의 과제입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살피는 소설의 고고학을 다루고 일반사와는 다른 특수사로서의 한국소설사를 쓰려고 합니다. 20세기 근대 소설 이전까지의 ‘고소설사’를 완결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의 한국 소설 통사가 완성되겠네요. 그것이 마지막 저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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