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이웃 - 김노보(64.물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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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9-02 15:46 조회15,2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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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회장 김노보(64.물리) 동문
김노보(64.물리) 동문의 이력은 참 특이하다. 졸업 후 서울식품, 미주산업, 한국네슬레 등 일반 기업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 왔다. 사회봉사활동과는 별 연관이 없는 평범한 직장생활이었다. 그러다 일선에서 은퇴한 후 우연한 기회에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2년 전의 일이다. 시작할 때는 거창하게 봉사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가졌던 것도,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대단한 야심을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달라졌다.
"여기 들어와서부터는 골프를 안쳐요. 못 치겠더라구요. 골프를 치는 돈이 너무 아깝거든요. 그 돈이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에서 하는 일은 실로 다양하다. 선천성 기형, 희귀질환 치료비를 지원하고 결손빈곤가정을 지원하며 해외아동 교육지원과 의료지원 등을 펼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법인명 그대로 '아이들을 구하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것이다.
1953년 설립된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사업, 1970년대에는 지역사회개발사업, 2000년대에는 아동권리증진을 위한 사업들을 펼쳤다. 그리고 2004년, 어린이 선천성 심장병 수술과 아동학대예방사업을 하던 사회복지법인 한국어린이보호재단과 합병 후 세계적인 NGO인 국제세이브더칠드런 연맹 회원국이 되었다. 그 후 세이브더칠드런의 행보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한국어린이보호재단이 가진 한국적 기반에 세이브더칠드런이 가진 국제적 네트워크가 결합해 아이들을 위한 전문기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심장병 수술하러 들어오기 전에는 병든 닭처럼 시들었던 아이들이 수술을 마친 후에는 펄쩍펄쩍 뛰어나갑니다. 이런게 눈에 보이면 그 다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더 열심히 돈을 모아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생각뿐이에요.”
특히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에서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동의 권리. 자기 주장을 말할 권리, 교육받을권리, 보호받을 권리 등이 있음을 아이들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후원과 캠페인 외에도 각 기업들에게 다양한 봉사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기업체의 직원들을 데려다가 사회봉사활동에 관한 교육을 시켜주고, 직접몸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관을 연계해주는 일이다.
서강 땅에서 지내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참 아득하다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이야기이다.
“공부를 별로 잘하지는 못했어요. 당시 서강대는 워낙 공부를 많이 시켰거든요. 그렇다고 신나게 놀았던 것도 아니면서 성적은 중간쯤 되었던 것 같아요. 낙제 안한 게 어디예요. 그 당시는 낙제하는 학생들도 많았거든요.”
뒤늦게 걷게 된 사회봉사의 길이지만, 김 동문은 여전히 이것이 대단하거나, 거창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 동문 스스로가 평범하게 삶의 궤적을 그려 온 것처럼 봉사도 그저 생활의 일부이자 삶의 일부라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내어 준다면 세상이 변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돈을 많이 내야 큰 도움이 될 것 같죠?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적은돈이라도 여러 명이 내면 큰돈이 되잖아요.”
돈에 크기에 상관없이 마음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봉사의 마음이라고 김 동문은 전한다.
방인화(93·사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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