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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 간수연(89.불문, 95.화학) 프리랜서 조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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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9-02 13:59 조회15,3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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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그 매혹에 듬뿍 빠지다
 

간수연(89.불문, 95.화학)
프리랜서 조향사


 인간의 역사를 살펴볼 때, 청각과 시각은 예술적 감각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후각은 하등하게 취급된 관심 밖의 감각이었다.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적 행동과 물체에 코를 대고 개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도 큰 차이가 있는 듯 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냄새는 기억과 욕망의 감각이라고 하였다. 후각의 세계는 과학적으로도 모두 밝혀지지 않은 모호하고 베일에 쌓인 세계이다. 우리는 어떤 냄새를 맡은 후, 적합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언어능력이 탁월하고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후각의 언어표현에는 다섯 살짜리와 별 차이 없는 무능력함을 보인다. 그 이유는 진화론적으로 오래된 후각 뇌는, 언어중추와 거의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모호하고 신비로운 후각의 세계를 다루는 조향사이다. 조향사란 수백에서 수천 가지에 이르는 수 많은 천연향료와 합성향료, 베이스 등을 조합하여 전혀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직업이다.

 신촌의 에스쁘아 플레이 향수샾에는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자신의 향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약 한 시간 동안, 이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수십 가지의 향들을 맡게 하면서 잠들어 있던 후각을 일깨워주고, 직접 자신이 원하는 향수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조향사란 약간 고독한 직업이다.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향을 맡고, 포뮬러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주된 일이고, 프랑스와 미국의 향료회사에서는 그렇게 일하였다. 그런데 에스쁘아 플레이에서 강의를 하면서 나만의 향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기의 세계에 초대하고, 향기에 열정을 가진 순수한 영혼들을 만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새로운 향기의 세계에 놀라워하고, 손수 조향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향수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

 향기란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 함께 머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더해주면서 이미지를 창출해주는 보이지 않는 마력이다. 93년 우연히 접한 독일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나에게 신비하고 매혹적인 향기의 세계를 알게 하였고, 조향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하였다. 그 당시 나는 최고의 향기를 소유하기 위하여 25명의 소녀들을 살해했던 향수의 주인공 장 그루누이처럼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혔던 같다. 이러한 마력에 끌려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여 화장품회사의 교육팀에 근무했던 내가, 다시 화학과에 편입하여 공부를 시작하고 프랑스 국제 향수학교 이집카(ISIPCA)를 졸업하여 조향사가 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걸었나 보다.

 한국에서의 또 좋은 점은, 분당에 작지만 나만의 향연구실을 갖게 되어 원하는 향을 마음껏 조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주니어 조향사로서 많이 미숙하고 향료도 많이 부족하지만, 향료회사에 소속되어 회사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이 나만의 향기의 공간에 매주 토요일 향기의 워크샾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향기로운 기억의 여정을 더듬어보고 신비로운 향수의 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또한 각자의 기억 속에 소중히 잠자고 있는 향기를 재현하면서,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하고 독특한 주제의 향수의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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