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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레터 - 달콤 쌉싸름한 기억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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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6-30 13:16 조회16,7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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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기억의 창고

 

후배는 회심의 역작으로 김치스파게티를 내놓았습니다. 이미 적잖은 손님들의 상찬을 거친 요리는, 더하고 덜할 것도 없이 날렵한 모양새로 접시에 담겨 나왔습니다. 김치와 토마토가 어우러져 매콤 새콤한 그 맛이 제 입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먹구름이 어둑어둑하던 지난 주말 오후, 생일을 빙자해 찾은 후배 집에서 받은 대접입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솜씨이기에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요란스럽지 않게 국수를 삶고 꾸미를 갖추는 손놀림은 경쾌하면서도 순조로웠습니다. 1년에 한두 번 겨우 만나는 군색함을 떠올리며 어정쩡하게 식탁 앞에 앉아있던 저는 이내 후배의 일상에 편안히 스며들었습니다.

 

달콤 쌉싸름한 케이크를 후식으로 놓고 마주 앉아, 간혹 부딪칠 일이 생기곤 하는 직장생활을 이야기했습니다. 억울했던 일을 서로 일러바쳤습니다. 후배가 선물로 건넨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를 펴니, 시인은 (돌아가신 엄마에게)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했지만, 우리들 대화는 꽤 수다스러웠습니다.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요리에 빗대 사랑의 곡절을 풀어놓은 소설입니다. 제목처럼 초콜릿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음식들마다 사람들의 애틋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뜨거운 열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서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의 밀어조차 나눌 수 없는 연인들에게 불타는 메신저가 됩니다.

 

며칠이 지나서도 여전히 김치스파게티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신다고, 머리가 아닌 입이 기억을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적어보낸 메일에 후배가 답했습니다.

 

“몰랐어요? 감각이란 온갖 기억의 창고라는 걸. "


오랜 감각을 깨워내고, 맹렬한 속도로 학창시절을 끄집어낸 게 바로 함께 먹던 음식 맛이구나. 그동안 기억의 몫을 이성의 영역에 부러 꽁꽁 묶어둔 것 아닌지 되물었습니다. 학생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나와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고, 이내 각자의 강의실로 흩어지던 편린들은 그대로 달콤한 것이지만, 다시 주워삼키기엔 어딘지 쌉싸래한 데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기억은 이내 생기를 불어넣어, 밥벌이가 갑갑하든 사람 대하기가 껄끄럽든 다시 길을 나서게 합니다.


이번 호 <서강옛집>은 특집으로 영화판에서 종횡무진 활약중인 서강 영화인들을 다뤘습니다. 극장이 단골 데이트 장소인 걸 보면, 영화는 요리만큼이나 매력적인 메신저입니다. 우리들 기억 창고 어딘가에 점점이 흩어져 있을 달콤 쌉싸름한 추억들이 동문 영화인들의 작품 속에 은근슬쩍 담겨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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