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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만 신부님은 자랑스런 서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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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유진 작성일08-09-04 19:26 조회9,8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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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서 첫 예수회 사제이자 모교 설립 주역 가운데 마지막 남은 예수회원이었던 진성만 신부가 93년의 생을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늘 순수한 소년 같은 얼굴에 오토바이 타기를 즐겼던 진 신부는, 하늘로 돌아가던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진 신부는 모교 설립자 중 한 명이지만 한켠으로 물러나 조용히 서강 50여년 역사를 지켜 봤기에,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진 신부는 서강의 뿌리이자 산 증인이었다. 진 신부의 선종으로 한국예수회에는 이제 서강의 설립 당시를 기억할 예수회원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게 됐다. 

 

1940년 5월 15일 일본 예수회에 입회한 진 신부는 ‘한국예수회의 설립과 한국에서의 고등교육기관 설립’이라는 사명을 띠고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한국 예수회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발간한 ‘예수의 벗’에는 진 신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게페르트 신부가 한국에 설립한 최초의 예수회 공동체에 진성만 신부가 첫 번째 회원으로 합류했다. 레오 번즈 신부(서강 설립에 관계하고 있던 미국 위스콘신 관구장)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머무르다가 진 신부를 만나 그의 한국 귀국일정에 대하여 논의했다. 이후 진 신부는 1955년 6월 20일 일본을 떠나 한국에 도착했다.


일제시대인 1915년 태어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8년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진 신부는 사제의 꿈을 품었다. 하지만 그당시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제의 꿈을 이룰 수없었기에 벨기에로 건너갔다. 그곳의 홀토렌시 고등학교에서 다시 고등학교 과정을 수학했지만, 전쟁 상황은 그를 다시 일본으로 귀환하게 만들었다.이윽고 자신의 성소가 예수회에 있음을 발견한 진 신
부는 1940년 5월 15일 일본예수회 수련원에 입회했고, 그 당시 수련장이었던 아루페 신부로부터 수련을 받았다.

 

1942년 5월 16일 첫 서원을 발한 그는, 동경에서 철학 공부를 했다. 1947년에는 다시 벨기에로 건너가 앵기엔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49년 7월 24일 마침내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진 신부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예수회 사제가 됐다. 이후 프랑스에서 제3수련을 받고 1951년 일본으로 돌아와 1952년 예수회 안에서 최종서원을 발했다. 사제 성소의 꿈을 안고 한국을 떠나 일본과 유럽에서 연학을 하며 양성을 마친 그의 한국 귀국은 거의 23년 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 해, 진 신부는 피정을 주재하는 등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중략) 진 신부는 수녀들을 위해 강의하고 세미나를 주재했으며 골롬반 신부들의 관할 하에 있는 두 개의 본당에서 활동했다. 진 신부는 샬트르 바오로 수녀회의 영성지도를 계속했으며,(중략) 서강대학교 설립 준비와 함께 영성사도직 분야에 있어서도 교회의 필요에 부응했다’

 

진 신부는 게페르트 신부와 함께 서강대학교를 설립할 부지를 매입하는데 나섰다. 발로 뛴 덕분에 한국예수회는 1957년 1월, 서울 마포구 신수동 소재의 토지 6만 7075평을 매입한 뒤 측량·설계·건축 등을 시작했다. 1960년 모교 개교 후 진 신부는 학교법인 서강대학의 초대 이사 4명중 한 명이 되어 게페르트 신부와 헙스트 신부의 뒤를 이어 1962년 3대 이사장, 1964년 4대 이사장을 지냈다.


이후 서강이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이후에도 이사로 지내며 서강의 교육 방향을 이끌었다. 이러한 서강 설립의 공로를 기려 서강대학교 총동문회는 1998년 1월 진성만 신부를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와 함께 제 5회 ‘자랑스런 서강인’으로 선정했다. 진 신부는 수상식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서강을 설립한 게페르트 신부님을 제대로 지켜드리지도 못했고, 서강을 위해 한 일이 없습니다. 모두 다 제가 못난 탓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눈물을 흘려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50년 동안 서강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은 진 신부는 이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 평안한 안식을 얻었지만, 서강은 소중한 보물 하나를 영영 잃게 됐다.

 

글=정명숙(83 불문) 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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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만 신부 하관식에서 유시찬 재단이사장이 봉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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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설립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진성만 신부, 헙스트 신부, 길로런 신부, 게페르트 신부, 데슬렙스 수사, 프라이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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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2월 진성만 신부가 서강대학교 건물 신축을 위한 첫 삽을 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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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예수회 야유회에서 나란히 앉은 진성만 신부와 계종인(Robert J. Kelly) 신부. 두 신부 모두 2008년 8월에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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