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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_고규홍(79.국문)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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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6-01 13:14 조회29,7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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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나무들 곁에 서다
                                                                                  
                                                               고규홍(79.국문) 나무칼럼니스트

하늘이 투명하게 코발트빛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아침, 몇 가지 밀린 일거리에 매달려 컴퓨터를 켜지만,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쉽게 만나지지 않는 파란 하늘 아래 작업실이라는 작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게 '죄(罪)'처럼 느껴지는 때문이다.

 

예정이 없었다 하더라도, 하늘이 맑게 열리면, 길을 나서야 하는 게 내 일이다. 떠미는 이 하나 없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찾아 나서야 한다.

 

때로는 햇살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의 다양한 표정을 읽어내기 위해 늙은 나무 앞에서 온 종일을 머물러야 하는 일도 있다. 또 개화(開花)기를 놓쳐 이듬해 봄까지 내내 한 그루의 나무를 그리워하며 가슴을 설레는 것도 다반사다. 순백의 눈송이가 얹혀진 독야청청 푸르른 소나무의 안부가 궁금해 눈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때도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대가가 확실히 보장된 일도 아니건만, 이제는 맑은 날 길을 나서지 않는 걸 죄로 느껴야 할 만큼 나무를 찾아 떠도는 일은 내 일이 되고 말았다.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무와 사람살이의 관계를 찾아내, 글과 사진으로 엮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 마음먹은 것은 99년 중앙일보의 기자직을 내던진 무모함과 다르지 않았다. 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식물에 대한 청맹과니였으니 말이다.

 

무모함을 부추긴 아름다운 사람 하나 있다. 나무를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지말고, 그 안에 빠져 들어보라는 알듯 말듯한 이야기. 나는 더 깊은 무모함에 빠져들었고, 마침내 다시 돌아나가기 힘들만큼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이는 지금 내 대신 가정의 생계를 도맡아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아내다.

 

7년 동안 책도 여러 권 냈다. 올해는 두 권이나 더 나올 예정이다. 또 버려지다시피 한 나무 한 그루를 찾아내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한 일도 있다. 그 나무는 지난 4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개인이 한 일로는 흔치 않다며 여러 매스컴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올 봄에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 유난히 나를 찾는 미디어가 많았다. 몇몇 라디오 방송에 고정으로 나가기도 한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나무를 찾은 것이겠다. 나무에 대해 크게 늘어난 관심을 나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뜻임에 틀림없다. 즐겁다. 내가 찾아다니는 나무들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깊숙이 자리잡는다는 것, 그것이 내가 7년 전 처음 이 일을 하게 된 뜻이었음을 잊지 않는 까닭이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큰 나무, 그가 아름답게 잘 살 수 있는 그곳이야말로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버릴 수 없는 나의 소중하고도 자랑스러운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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